라라라라라라라~ 날 좋아한다고~
그건 바로 여름이기 때문이에요.
입에서 "덥다"라는 말이 자꾸만 흘러나옵니다. 자꾸 말한다고 누가 어떻게 해주는 것도 아닌데, 계속 덥다고 말하게 되는 건 그냥 진짜 진심으로 덥기 때문이죠. 정신이 아득해지고 자꾸 생각이 먼 곳으로 날아갑니다. 한가롭고 시원한 바람이 머무는 휴양지 풍경을 떠올려봅니다. 숲에서 불어오는 피톤치드 가득한 바람, 바다가 들려주는 파도 소리, 시골길 사이로 보이는 작은 오두막,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홀로 즐기는 수평선 위의 노을까지. 그런 정경을 떠올리다 보면 열 일 제쳐두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집니다.
'피서(避暑)'는 더위를 피해 시원한 곳으로 옮겨간다는 뜻입니다. 사실 우리의 휴가는 더위 말고도 많은 피할 것들에서 벗어나는 시간이죠. 우리는 휴가를 통해 평소에 들여다볼 수 없었던 삶을 돌아보고,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하며 마음의 열기를 식히는 거죠. 일상과는 다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쉽게 잊히지 않던 것들도 잊게 되고, 쉽게 얻지 못했던 영감도 얻을 수 있고요.
어떤 작곡가들은 여름휴가 때 많은 양의 곡을 써내기도 했습니다. 클래식 음악의 작곡 배경들을 하나둘 살펴보면, "작곡가 OOO가 휴양지 OOO에서 그해 여름에 작곡됐다." 같은 말을 은근히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익숙한 풍경, 반복된 일상 속에서는 능률이 오르지 않았던 걸까요? 혹은 '일상으로부터의 도피'가 주는 영감이 너무도 컸던 것인지도 모르겠어요. 오늘은 작곡가들이 여름 휴양지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음악들을 소개합니다.
첫 곡은 브람스의 교향곡 2번입니다. 많이 알려져 있듯 브람스는 긴 시간 동안 교향곡 1번을 공들여 다듬었고, 이 곡에 처음으로 착수한 후로 거의 20년이 지나서야 곡을 완성했습니다. 반면 교향곡 2번은 이에 비하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짧은 기간 안에 작곡됐습니다. 오스트리아 남부 휴양지인 '푀르차흐'라는 곳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며 이 곡의 아이디어를 구상했고, 그해 9월에 완성했다고 하니 거의 4개월 만에 곡을 완성한 것이죠. 곡의 분위기도 여름날 휴양지의 정경을 닮은 듯 유려하면서도 평화로운 선율이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빠르게 써 내려간 곡인 만큼 4악장까지 매끈하게 이어지는 흐름이 매력적인 곡이니 특별히 교향곡 전곡을 함께 들어봐요.
다음 곡은 멘델스존의 교향곡 3번입니다. 이 곡은 멘델스존이 스코틀랜드 여행 중에 작곡하기 시작한 곡으로 아예 '스코틀랜드'라는 부제까지 붙어 있습니다. 그곳에서의 기억이 각별했던 것일까요? 멘델스존은 스코틀랜드의 전설과 역사에서 받은 인상들, 그곳의 민속음악, 그리고 희뿌연 안개에 둘러싸인 스코틀랜드의 정경을 이 교향곡에 담았습니다. 이번 오스트에서는 이 곡 중에서도 빠른 호흡으로 시작되는 2악장부터 4악장까지를 준비해봤어요.
몸도 마음도 집과 회사에 묶여있는 신세일지라도 이 음악들과 함께 잠시나마 '여름 휴양지.st'를 느껴보시죠. 새로운 영감이 필요한가요?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필요한가요? 혹은 그저 편안한 휴식이 필요한가요? 어쩌면 우리는 음악을 통해 그런 것들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정말 우리가 피하고 싶은 것은 더위가 아닐지도 모르니 너무 더위를 미워하지 말자고요. 어차피 금방 이 더위가 그리운 계절이 찾아올 테니 말이에요.
PLAY LIST
브람스 교향곡 2번 (지휘: 테오 월터스, 연주: 코리안심포니)
멘델스존 교향곡 3번 ‘스코틀랜드' 2-4악장 (지휘: 정치용, 연주: 코리안심포니)
글쓴이 오스트
모국어는 서양음악. 출신지는 서울. 플레이리스트를 생성하는 음악 프로세서입니다.
모든 음악을 평등하게 처리하지만 그래도 서양음악을 가장 좋아합니다.
가끔 서양음악을 너무 많이 들어서 고장이 나면 테크노로 자가치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