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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클 Sep 08. 2021

Sleepless in the City OST

모두 잠든 후에도 난 당신을 생각해요





"헬로우 월클, 그 사람... 자고 있을까?"



여름을 끝마친 어느 가을밤, 코끝을 스치는 찬 밤공기에 잠이 저만치 달아나버렸어요. 공기가 차가워졌을 뿐인데 들뜬 마음은 어느새 조용히 가라앉고, 어느덧 절반을 훌쩍 지난 올해가 벌써 떠날 채비를 하는 것만 같아 어쩐지 싱숭생숭해지죠. 환절기라 그런 걸까요. 아니면 식은 줄 알았던 그 여름의 열기가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어서일까요. 어쩐지 오늘은 쉽게 잠이 올 것 같지 않네요.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 밤이 깊도록 타는 모닥불,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 백색소음을 유발하는 불면증 치료 영상들은 우리에게 모든 잡념을 지우고 긴장을 풀어보라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어둠 속에서도 감각은 더 예민하게 되살아나요. 백색소음에 집중해 두 눈을 감고 잠을 청해보지만, 생각은 그리 쉽게 사라지지 않죠.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들을 모른 척하고 꼭 잠들어야만 할까요? 때로 우리는 그런 잠 못 이루는 밤에 지금의 마음을 차분히 들여다보고, 의미를 재발견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어린 시절의 짝사랑이든, 용기 내지 못해 썸으로 끝난 관계든, 충분히 위로하지 못한 채 잊으려고만 애쓰던 이별이든, 그 무엇이든요.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는 불현듯 떠오른 기억으로 긴 불면의 밤을 보낼 당신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첫 곡은 라벨의 피아노 트리오의 우아한 선율로 시작할게요. 피아노와 바이올린, 첼로 소리가 장조와 단조 사이에서 미묘하게 유영하며 정교한 움직임을 만들어내는 이 곡을 들으면서 복잡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차근히 들여다봐요. 두 번째 곡은 시벨리우스의 슬픈 왈츠입니다. 마음이 슬프거나 울적할 때 오히려 슬픈 음악이 더 우리의 마음을 위로해줄 때가 있죠. 이 왈츠는 그 어떤 말보다 완벽한 공감으로 당신을 위로해줄 거예요. 이어지는 세 번째 곡은 마스네의 타이스 명상곡이에요. 이 곡은 마스네의 오페라 <타이스>에서 방탕한 생활에 하던 타이스가 수도승 아나티엘을 만나 자신을 돌아보는 장면에서 흐르는 곡입니다. 오페라 속 두 주인공의 사랑은 운명의 장난처럼 어긋났지만, 아쉬워 말아요. 운명이라면 꼭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요.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속 샘과 애니처럼요. 서정적인 하프와 아름다운 첼로 선율로 당신의 남은 밤을 채워봐요. 마지막 곡은 말러의 교향곡 6번 '비극적' 중 2악장입니다. 어지럽게 흩어진 마음을 지그시 눌러주는 듯한 말러의 따뜻한 선율과 함께라면 정처 없이 떠돌던 감정들도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갈 거예요. 


우리는 종종 그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뒤늦게 깨달아요. 그 순간이 얼마나 마법 같았는지를. 오늘 달빛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누군가를 그리며 잠 못 이루던 당신이 얼마나 예뻤는지 같은 것 말이에요. 거기, 잠 못 이루는 시애틀 씨, 오늘 밤새 나랑 같이 있을래요?



PLAYLIST


라벨 - 피아노 트리오 1악장(연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피아노: 최한결, 바이올린: 김정, 첼로: 이경진) 

라벨 - 피아노 트리오 2악장(연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피아노: 최한결, 바이올린: 김정, 첼로: 이경진) 

라벨 - 피아노 트리오 3악장(연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피아노: 최한결, 바이올린: 김정, 첼로: 이경진) 

시벨리우스 - 슬픈 왈츠(연주: 김다솔, 2017년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교향악 축제 앙코르)

마스네 - 타이스 명상곡(하프: 윤혜순, 첼로: 홍서현) 

말러 - 교향곡 6번 '비극적' 2악장(지휘: 최희준, 연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글쓴이 오스트

모국어는 서양음악. 출신지는 서울. 플레이리스트를 생성하는 음악 프로세서입니다. 

모든 음악을 평등하게 처리하지만 그래도 서양음악을 가장 좋아합니다. 

가끔 서양음악을 너무 많이 들어서 고장이 나면 테크노로 자가치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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