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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클 Sep 17. 2021

Fall in Trailer OST

낙엽 이불 덮고 차에서 하룻밤




"헬로우 월클, 나 오늘 집에 들어가기 싫어..."



"그렇다면 차박은 어때요? 바람, 흰 천... 아, 아니 음악과 차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어요."


 

선선한 바람에 왠지 나이브해지는 계절, 가을입니다. 어느 계절을 좋아하느냐는 물음에 십중팔구는 봄과 가을이라고 답할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은 가을이 되면 훌쩍 캠핑을 떠나는 것 같아요. 꽃구경도 아니고,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도 아닌, 그저 가을이라는 계절에 푹 빠지기 위해서요. 청명한 하늘빛 아래 발그스름한 단풍이 물들고, 촉촉이 내린 가을비 사이로 낙엽 내음이 퍼지는 동안 바쁘게 돌아가던 세상도 조금 한적해졌죠.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도 늦더위와 이른 한파에 가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고 해요. 이런 추세라면 후손들에게 '가을이라는 계절이 있었단다…'라고 말하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우리, 이 계절이 사라지기 전에 가을 속으로 더 깊이 떠나보면 어떨까요? 가을 숲에 차를 세우고 하룻밤을 보내는 건 어때요? 속세로부터, 그리고 사람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자연의 근사한 풍경과 마주 앉아 휴식을 취해보는 거예요. 야외 취침마저 낭만적인 계절이잖아요. 차를 세우는 곳 어디든 숙소가 되는 '차박'은 아무도 없는 고요한 곳에서 누군가와 부대끼지 않고 나만의 명소를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죠. 촘촘히 계획을 짜거나, 힘들게 텐트를 치거나, 짐을 많이 챙기지 않아도 괜찮아요. 도심을 떠나 한적한 드라이브를 즐기다가 문득 마주친 노을 곁에서 잠시 쉬어가기도 하고,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마음껏 도로를 내달리다 멈춘 곳에서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멍 때려도 좋고요.


이토록 아름다운 가을을 사는 당신을 위해, 오늘은 차박의 캠핑 무드를 더해줄 플레이리스트를 준비했어요. 오늘만큼은 자극적인 영상과 효과음으로 가득한 'NETFLIX & CHILL' 말고 'CLASSIC & CHILL'은 어떨까요? 풍성하고 입체적인 곡들로만 엄선해 차 안에서도 서라운드 오케스트라 음향을 즐길 수 있을 거예요. 


첫 곡은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3악장입니다. 라흐마니노프는 교향곡 1번의 초연에 실패하고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는데 무려 10년 만에 교향곡 2번에 도전해 러시아를 대표하는 교향곡 작곡가로서 성공을 거뒀어요. 이 곡은 바이올린에 이어 목관악기가 리드하는 선율이 평화롭고 고즈넉한 운치를 자아내죠. 혹시나 가을을 탄다면,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을 다독이는 듯한 라흐마니노프의 음악 세계에서 잠시 쉬어봐요. 다음 곡은 브람스 교향곡 1번 2악장입니다. 라흐마니노프의 선율이 자연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물씬 느끼게 해줬다면 이 곡은 그 마음을 공명해줄 수 있는 다정한 음악이죠. 곡 중간에 들려오는 초연한 바이올린 솔로는 우리의 시야가 더욱 넓어지는 듯한 감각을 선사할 거예요. 이어지는 차이콥스키 교향곡 6번 2악장은 '비창'이라는 제목처럼 마냥 밝진 않지만, 넘치지 않는 묵직한 음색으로 몸과 마음을 부드럽게 만져 줄 거예요. 마지막은 말러 교향곡 2번 2악장입니다. '부활'이라는 부제를 지닌 이 교향곡의 2악장은 자연 속에서 호젓한 시간을 보낸 후 우리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에너지를 북돋아 줄 거예요. 우아하고 나긋한 음악들과 함께 낭만적인 가을을 만끽하시길 바랄게요.


PLAYLIST


라흐마니노프 - 교향곡 2번 3악장(연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지휘: 정치용)

브람스 - 교향곡 1번 2악장(연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지휘: 다비드 레일랑)

차이콥스키 - 교향곡 6번 2악장(연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지휘: 홍석원)

말러 - 교향곡 2번 2악장(연주: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지휘: 정치용)



글쓴이 오스트

모국어는 서양음악. 출신지는 서울. 플레이리스트를 생성하는 음악 프로세서입니다. 

모든 음악을 평등하게 처리하지만 그래도 서양음악을 가장 좋아합니다. 

가끔 서양음악을 너무 많이 들어서 고장이 나면 테크노로 자가치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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