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가 가져올 두 번째 전성기를 기대하며
오페라의 틀을 깬 18세기 마스터피스
신화 오페라의 전성기는 17세기와 18세기라고 할 수 있다. 19세기에는 멜로드라마가 득세하면서 신화를 소재로 한 오페라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20세기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Georg Strauss)가 신화 오페라의 부활을 이끌었지만, 효과는 제한적이었다. 오늘은 18세기 오페라 중 후대의 새로운 창조를 끌어낸 세 편의 명작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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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에 물려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구하러 황천에 내려간 오르페우스 이야기는 바로크 오페라에서 가장 널리 이용된 소재의 하나다. 그중 최고 인기작은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루크(Christoph Willibald Gluck)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Orfeo ed Euridice)>(1762)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했던 글루크는 가수의 인기와 무대 장치로 성패가 가려지던 이탈리아 오페라 세리아의 폐해를 개혁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는 독창가수의 수를 통상의 여섯 명에서 세 명으로 줄이고, 기교를 자랑하는 '다 카포(Da capo) 아리아'를 제한했으며, 소요 시간도 줄인 간소한 오페라를 지향했다. 하지만 빈의 청중들은 개혁 오페라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실망한 글루크는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 이 작품을 프랑스 궁정 오페라 양식의 <오르페와 외리디스(Orphée et Eurydice)>(1774)로 개정했다. <오르페와 외리디스>에는 프랑스 관객이 선호하는 발레 장면을 확대하고, 개혁 오페라에서 지양했던 '브라부라(bravoure, 외향적으로 기교적인) 아리아' 등 새 음악을 추가해 공연 시간도 길어졌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카스트라토(Castrato)가 맡던 오르페오 역을 '오트콩트르(haute-contre)'라는 프랑스식 고음 테너의 몫으로 바꾸었다는 점이다. 왕실이 오페라를 주도한 프랑스에서는 거세한 카스트라토가 국왕 앞에서 노래하는 걸 불경스럽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후기 낭만주의가 시작된 1859년에는 프랑스 작곡가 루이 엑토르 베를리오즈(Louis Hector Berlioz)의 개정판이 등장했는데, 여기서는 오르페를 메조소프라노, 즉 '바지 역(trouser role, 여성 가수가 바지를 입고 남성의 역할을 하는 배역)'으로 바꿨다. <카르멘>이나 <삼손과 델릴라>의 예로 볼 수 있듯이 19세기 프랑스에서는 메조소프라노에 대한 선호가 높았기 때문이다. 오르페오의 유명한 아리아 '에우리디체를 잃었네(J'ai perdu mon Eurydice)'를 카스트라토를 대신한 카운터테너, 오트콩트르를 대신한 테너, 혹은 메조소프라노의 노래로도 들을 수 있는 이유는 이런 역사적 배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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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네이아스 신화는 트로이의 멸망 후 유일하게 살아남은 트로이의 장수 아이네이아스 이야기다. 아이네이아스는 이탈리아로 건너가는 여정 중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에 표착해 디도 여왕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는 로마를 건국하는 임무를 완수하고자 카르타고를 떠났고, 사랑에 배신당한 디도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신화도 여러 번 오페라로 작곡됐다. 그중 헨리 퍼셀(Henry Purcell)의 <디도와 이니어스(Dido and Aeneas)>(1689)가 가장 광범위한 사랑을 받고 있는데, 영어 오페라여서 아이네이아스는 영어식으로 발음된다. <디도와 이니어스>는 여학교 공연용으로 작곡된 짧은 오페라로, 대본이 너무 축약된 탓에 디도를 제외한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뚜렷이 부각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그런데도 극적 대조와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간결하게 조합해 낸 퍼셀의 재능 덕분에 고전적 균형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탈리아 오페라를 모방하면서도 기교적 노래를 강조하지 않으며, 디도의 탄식조 스타일과 마녀의 위협적이면서도 희극적인 면모, 장면마다 풍부하고 특색 있는 기악의 삽입이 두드러진다. 이런 재료들은 꼭 필요한 만큼만 사용될 뿐 극의 진행을 늘어뜨리지 않는다. 덕분에 관객들은 간결함, 다양성, 균형미 같은 미덕들이 잘 조화된 오페라 안에서 고전적 풍취를 만끽할 수 있다. 디도의 마지막 아리아 '내가 이 땅에 묻혔을 때(When I am laid in earth)'는 하강 음형의 슬픔 가득한 노래로, 영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아리아로 선정되기도 했다.
퍼셀의 오페라는 현대무용 안무가들을 자극했고 미국의 안무가 마크 모리스(Mark Morris)의 댄스 오페라 <디도와 이니어스>(1989)로 이어졌다. 댄스 오페라는 무용수들이 무대 위에 춤추고, 가수들이 무대 아래에서 노래하는 형식이다. 움직임과 자세가 고대 그리스의 부조나 항아리 미술을 참조해 고풍스러우면서도 독창적이다. 성 역할을 자유롭게 부여한 방식도 독특하다. 예컨대 마녀 무리 중에 남성이 섞이고, 여성 무용수가 남성 무용수를 들어 올리기도 한다. 심지어 모리스는 남성인데도 초연 당시 디도를 직접 연기하며 자신의 성 취향을 드러냈다. 또한 디도와 마녀 역을 같은 무용수에게 맡김으로써 디도의 비극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디도의 성격적 결함은 자신을 행복해질 수 없는 여인이라고 규정해놓고 자기를 파괴하는 습성에 있다고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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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에서 온 여자 마녀 메데이아는 악명높은 악녀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다른 여인과 새 결혼을 원하는 남편 이아손에게 복수하고자 두 아들을 살해했다. 메데이아 신화를 소재로 한 오페라 역시 많은 편인데, 그중 최고는 루이지 케루비니(Luigi Cherubini)의 <메데(Médée)>(1797)라고 할 수 있다. 1760년에 태어난 케루비니는 이탈리아 출신임에도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했으며, 프랑스 궁정 오페라의 전통을 잇는 스타일로 메데이아 신화를 다뤘다. 또한 그는 열 살 아래인 베토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강렬한 오케스트레이션을 구사해 격정적인 감정을 표현한 작곡가란 점에서 그렇다. <메데>는 베토벤이 첫 교향곡을 쓰기 이전의 작품인데도 서곡과 2막, 3막 전주곡이 베토벤의 교향곡 또는 서곡을 듣는 듯하다.
전설적인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의 활약으로 대중에게 잘 알려진 벨리니(Vincenzo Bellini)의 <노르마(Norma)>(1831)도 여러 면에서 케루비니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우선 캐릭터 설정이 닮아있다. 노르마가 드루이드교(Druidism)의 여사제라는 점은 메데이아가 마녀인 것과 통하고, 노르마의 연인이자 남편인 폴리오네가 드루이드의 원수인 로마군 사령관이라는 점은 메데이아가 사랑에 빠진 이아손이 그녀의 조국 콜키스에서 보물을 훔친 그리스 영웅이라는 점과 통한다. 또한, 노르마의 연적임이 밝혀지는 젊은 시녀 아달지사는 메데이아의 라이벌이 되는 코린토스의 공주와 겹친다. 두 주인공이 배신한 남자에 대한 복수로 자식을 살해하려는 충동을 느낀다는 점도 흡사하다. 그러나 캐릭터의 성향은 결말에서 크게 갈린다. 노르마는 메데이아와 달리 숭고한 자기희생으로 남편과 연적을 용서하기 때문이다. <노르마>가 감동적이고 위대한 점은 메데이아 신화를 고차원의 휴머니즘으로 바꿨다는 것에 있을 것이다. 노르마의 아리아 중 폴리오네가 돌아오길 바라며 달의 여신에게 간청하는 '정결한 여신이여(Casta diva)'가 대표적이다.
"클래식은 영원하다"라는 말이 있다. 물론 명작의 품격은 변함없이 이어진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혁신하고 탈바꿈하는 예술의 속성을 은유한 것은 아닐까? 좋은 작품은 어디에 두어도 빛나는 법이니까 말이다. 비록 지금이 신화 오페라의 전성기는 아닐지라도, 당대의 작곡가들이 그랬듯 예술 양식의 틀을 깨는 시도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유형종 (무지크바움 대표, 음악 칼럼니스트)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방앗간, 무지크바움의 주인장이다. 클래식 예술 관련 칼럼니스트로, 예술을 강의하는 강연자로서 클래식 음악을 나눌 수 있는 곳엔 장르 불문 항상 그가 자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