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를 끼치지 말라

by 강상록

진료가 즐거운 날이든, 지루한 날이든, 때로 환자에게 원치 않는 비난을 받는 날이라도, 때를 막론하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0순위 원칙은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제공한 치료가 도움이 안 될 수는 있지만 적어도 해를 끼치지는 말아야 한다.


그 유명한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원문에도 '환자에게 의도적인 잘못과 해악을 삼가겠다'는 내용이 있다. 학생 시절부터 인턴, 레지던트를 거치며 선배 의사들, 특히 어떤 분야에서 오랜 기간 경험을 쌓아온 베테랑 의사들로부터 수없이 들어왔던 말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조언이다.


그러나 이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모든 치료가 자동차 부품 갈아치우듯, 더러운 바닥을 세정제로 닦아내듯 단번에, 명확히 이루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환자의 어떤 질병을 치료하던 중 그가 가진 다른 질병이 악화되기도 하고 환자가 이미 복용하는 어떤 약 때문에 꼭 필요한 치료제를 쓰지 못하기도 한다. 같이 복용하면 부작용이 심해지는 약도 있고 정상적으로 투여한 약에서 심각한 부작용이나 과민반응이 예고 없이 찾아오기도 한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의사의 실수와 무지로 생기는 해악도 당연히 있다.


모든 치료는 득과 실이 있으며 둘 중 무엇이 더 클지 따져 치료 방법을 결정하게 된다. 대부분의 수술, 시술, 약물은 실보다는 득이 많도록 개발되어 있지만 말기 암환자의 항암치료처럼 득과 실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당시에는 득이라고 생각하여 시행한 치료가 합병증을 일으키고 그것이 실이 되어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키는 일이 적지 않다. 의사가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은 생각보다 많지 않으므로 '적어도 해를 끼치지 않는 일'이 그토록 중요하며, 해를 끼치지 않는 것뿐인데도 반복된 경험과 세심한 고민, 부지런함이 있어야 가능하다.


의원성(Iatrogenic)이라는 단어는 '의사의 활동에 의해 생기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의사의 활동(대부분은 치료)에 의해 생긴 질환을 언급할 때 사용한다. 대표적인 예가 의원성 쿠싱 증후군(Iatrogenic Chushing Syndrome)이다. 장기간의 스테로이드 치료를 했을 경우 생기는 근육소실, 몸통의 비만, 인슐린 장애로 인한 고혈당이나 당뇨병, 골다공증, 잦은 감염 등의 각종 임상 증상을 포함하는 질환이다. 반드시 필요하여 스테로이드를 사용했지만 그로 인해 유발된 질환이므로 의원성이라는 단어가 앞에 붙는다.


'의원성'이 붙은 질환은 그나마 의사들이 예상 가능하고 통제도 가능한 경우에 속한다. 환자에게 다소 해를 끼쳤지만 이득이 확실한 상황이고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의원성이라는 단어가 붙어도 그리 죄책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현대의학' 자체가 환자에게 끼치는, 대부분의 의료진과 환자가 의식하지 못하는 해악에 대해 생각해 본다. 항생제는 치명적인 감염병을 막아내지만 무분별한 사용으로 강력한 내성균을 키우고 있다. 세균이 항생제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내성을 키우면 사람은 내성균을 잡기 위해 다시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한다. 1세대, 2세대, 3세대, 4세대로 명명하는 다양한 항생제가 지속해서 나오는 이유다. 내성균은 주로 병원에 장기간 입원해 있는 중환자와 만성 질환 환자들에게 끝나지 않는 감염의 악순환을 만들고 그것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 생명을 잃기도 한다. 생각보다 흔한 일이다.


항생제는 장내 미생물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과도한 항생제 사용이 정상적인 생리에 필요한 유익한 미생물까지 제거해 버린다. 최근의 연구는 그동안 유해한 균과 유익한 균으로 분류했던 장내 미생물의 분류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데, 유해한 미생물인 줄 알았던 균들이 실제로는 인간에게 유해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분류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장내 미생물의 중요성이 이처럼 커지는 상황에서도 더 많은 항생제가 더 많은 장내 미생물을 박멸하고 있다.


이 같은 사례를 '의원성 항생제 남용'이라거나 '의원성 장내 미생물 박멸' 등으로 부르지는 않는다. 어쩌면 진짜 의원성으로 불러야 하는 중요한 문제들이 간과되고 있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며 경각심을 가지려고 노력하지만 "노란 콧물이 나니까 항생제 좀 제발 처방해 주세요."라는 환자의 끈질긴 요구에 언제나 패배하고 만다. 바이러스성 감염이 분명한 단순한 감기에도 세균을 죽이는 항생제를 처방하고 있다. 이런 경우 항생제는 그저 나와 환자의 마음에 안정을 주는 안정제의 역할을 할 뿐이다. 어디 항생제뿐이랴. 진짜 중요한 의원성이 무엇인지, 우리도 모르게 주고받는 해악이 무엇인지, 반드시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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