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위해 책상에 앉는다. 모니터와 키보드가 준비되어 있다면 물리적인 준비는 끝이다. 책상이 없다면 바닥에 앉거나 엎드려 쓸 수도 있고, 컴퓨터가 없다면 아무 종이에 연필이나 펜으로 써도 된다. 눈에 보이는 준비는 사실 전혀 중요하지 않다. 휴대폰만 있어도 글을 쓸 수 있는 세상이다.
보이지 않는 준비가 있다. 글을 쓰는 동기, 소재, 아이디어, 흰 바탕에 깜빡이는 커서를 몇 분이고(때로는 몇 십분, 몇 시간) 지켜보며 앉아있을 수 있는 끈기 같은 것들이다.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의 김은경 작가는 글을 쓸 때 쓰고 싶은 글의 분위기를 상상하라고 말했다. 그녀는 글을 쓰기 전, 쓸 글의 분위기를 몸속에 예열해 둔다고 표현한다. 행복을 충전하면 말랑하고 따뜻한 글이, 날카로움을 충전하면 뼈를 때리는 단어들이 튀어나온다고. 보이지 않는 준비 중에 나에게는 분위기를 잡는 일이 가장 어렵다.
나의 경우 글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그날의 감정이 중요하다. 자꾸만 울고 보채는 아이를 큰 소리로 혼낸 후에는 사랑이 넘치는 분위기의 글을 쓸 수 없었다. "어휴 월요일, 어휴 출근." 신세 한탄을 하면서는 활력 넘치는 분위기의 동기부여에 대한 글을 쓸 수 없었다. 아무리 상상해보려 해도 쉽지 않았다. 내 감정과 글이 생각보다 더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걸 깨달아가면서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사소한 일에 감정을 망치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다. 나는 대체로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사람이고 대부분의 사소한 일들에는 '그러려니'하고 무관심한 사람이었는데 살면서 겪는 사소한 일들이 실은 내 감정을 크게 좌지우지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이에게 화가 나서 글을 못 쓰고, 월요일이어서 글을 못 쓰다니 약간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원하는 글을 쓰려면 감정을 다스릴 수 있어야 했다.
감정 잡는 일은 배우들이나 하는 줄 알았다. 원래 이렇게 글쓰기는 까다롭고 힘든 일일까? 글쓰기에 자꾸만 넘어야 할 장애물이 추가되는 것 같아 막막한 마음이 생기다가도 더 깊이 있고 좋은 글을 쓰게 되려나 하는 희망도 품어본다. 답이 무엇이든 나는 오늘도 책상에 앉아 글을 쓸만한 감정을 준비하고 글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다.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혼자 중얼중얼 최면을 걸면서. '나는 아이가 울어도 미워하지 않는다. 나는 출근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