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렇게까지 자주 만나는 사이는 아니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너는 빠지지 않고 늘 내 옆에 있었구나. 이제 어떤 때는 네가 자리에 있는 걸 보고 나서야 ‘아, 지금이 중요한 순간이구나’하고 깨닫는다.
처음에는 네가 참 싫었다. 나는 너를 만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불쑥 찾아오고, 자꾸만 옆에서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그거 꼭 해야 하냐, 다음에 하면 안 되냐’고 속삭이면서 정신을 빼놓다가도 갑자기 자리를 떠버리는 변덕스러운 너. 뭐, 지금도 네가 썩 좋지는 않지만 미운 정도 정이라고 이제는 친구라고 불러보기로 했다.
요즘은 너를 만날 일이 많다. 나에게 중요한 일이 많다는 말이겠지. 어김없이 찾아와 불평, 불만부터 늘어놓는 너. 나는 너를 참아내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다. 아주 조금씩, 몹시 천천히.
두려움아! 나의 오랜 친구이자 원수이자 모든 일의 ‘시작’이 되는 존재야. 이제는 네가 소리 없이 다가와 나를 짓누르고 유혹의 말들을 속삭여도 화들짝 놀라거나 조용히 울거나 바닥에 퍼져있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너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성공한 적은 없지만, 가만히 기다리는 것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네가 지나가길 그저 기다린다. 너와 만나는 시간이 지나면 나는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끝난 것이니. 네가 머물다가는 시간이 길어져가는 듯한 요즘, 나는 가만히 사색하고 기도하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읽고 쓴다.
때때로 네가 지나간 자리에 무언가 남는다. 아직 그걸 무어라 불러야 할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힘, 용기, 다시 움직일 동력 같은 것이기도 하고 살아있는 느낌, 새로운 성취 같은 것들도 있다. 이상하다. 어떻게 너 같은 놈이 이런 걸 주고 갈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지만 이 때문에 나는 너를 친구라 부르기로 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아마 죽는 날까지 함께 하겠지. 이왕 찾아오는 거라면 좋은 것들도 잔뜩 가져와주길 바란다. 곧 다시 만나서 또 이야기하자.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