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목소리

by 강상록

이른 아침, 치료실 창문 너머로 잠깐씩 보이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며 병원 복도에 앉아있다. 치료실 선생님은 익숙하게 아이를 이리저리 옮기며 운동을 돕는다. 아이는 때때로 하기 싫은 표정을 보이며 징징거리다가도 다시 활짝 웃는 얼굴로 지지대를 잡고 일어서거나 선생님에게 기대 선다. 아이는 몇 개월 전부터 하지 경직 때문에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미숙아로 태어난 쌍둥이 딸 중 둘째. 다리가 뻣뻣하고 힘도 약해 걸음이 또래보다 느리다. 24개월 안에 혼자 걷기가 목표인 예쁘고 대견한 우리 아이. 아이가 치료받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은 그저 노는 시간으로만 알고 재미있어할 거라 생각했는데, 문득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이제 치료실에 오면 뭔가를 한다는 사실을 아는지 싫으면 싫다고 표현을 하네요."


치료 후 아이를 데리고 나온 선생님은 마치 나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말한다. 생각이 깊어진다. 아이가 많이 힘들까? 이른 아침부터 30분 동안 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하는 것도, 자유롭게 움직여지지 않는 다리로 운동을 하는 것도, 이제 와서 생각하니 당연히 힘들 것 같다. 왜 이런 생각을 그동안은 못했을까. 품에 안겨 활짝 웃는 아이를 마주 보며 심장에서부터 올라오는 저릿함을 느낀다.


치료를 마친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아내와 점심을 먹는다. 최근에 찾은 맛있는 피자집에 간다. 일주일에 한 번 평일 오후에 내가 쉬는 날, 우리를 숨 쉬게 해주는 짧은 휴식시간이다. 먹는 걸 좋아하고 음식 취향도 갈수록 닮아가는 우리에게 맛있는 식당을 발견하는 건 기쁜 일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피자를 손에 들고 먹다가 아내에게 아침에 있던 일을 이야기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인 줄만 알았어. 우리만 힘든 줄 알았는데 둘째도 이제 뭔가를 아는 것 같네."

내가 말했다.

"둘째도 나름 힘들게 노력하고 있구나."

아내가 말했다.


잠깐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잠시 후 아내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피자를 씹는다. 아내는 눈물을 두 번 정도 닦고는 다시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간다. 아이가 힘들구나. 그래도 대견하네. 우리가 더 잘하자. 그나저나 이 집 피자는 진짜 맛있구나.


우리는 날 선 감정 변화의 한복판에서 살고 있다. 웃다가도 울고, 울다가도 웃는다. 슬픔이 우리 삶에 자연스럽게 섞여 들어오는 이상한 순간을 자주 경험하고 있다. 슬픔은 마치 옆자리에서 같이 음식을 먹고 있던 일행처럼 갑자기 우리에게 손을 뻗친다. 슬픔의 손은 얼음처럼 차가워 정신을 번쩍 깨우고 현실로 우리를 끌어당긴다. ‘정신 차려. 딸이 힘들잖아. 너희가 잘해야지. 지켜본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런데 또 그 말에는 묘한 위로와 따뜻함마저 담겨있어 한바탕 눈물을 흘리고 나면 우리는 정말로 힘을 내게 된다. 슬픔이 위로가 되다니 내가 미쳐가는 걸까.


감정의 변화들이 우리 삶을 선명하게 만든다. 어려운 일을 겪으며 되려 삶은 뚜렷해졌다. 매 순간 살아있음을 절절히 느낀다. 어느 날부터 슬픔이 내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슬픔에 집중하다 보면 슬프지 않은 것들, 가까운 곳에 있는 모르고 지나쳤던 작은 행복들을 발견하게 된다. 슬퍼서 더 행복한, 아직은 다 이해할 수 없는 모순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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