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의퇴원

by 강상록

저녁 시간, 습관처럼 틀어놓고 보는 둥 마는 둥 하던 드라마에서 '다마'라는 단어가 들렸다. 익숙하면서도 한동안 입으로 말하지 않아 동시에 어색하기도 한 단어. 오랜만에 만났으나 그다지 반갑지 않은 친구 같은. 그래, 그런 단어가 있었지.


매우 일본어 같은 단어 '다마'는 실은 Discharge Against Medical Advice의 약자 'DAMA'다. 적절한 치료가 지속되지 않으면 상태가 나빠지거나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 대해 의학적인 조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환자의 의지로 하는 퇴원이다. 우리말로는 자의퇴원이라고 한다.


오랜만에 자의퇴원을 생각하는데 불편한 마음이 같이 고개를 든다. 자의퇴원을 하려면 환자가 반드시 작성해야 하는 '자의퇴원서'는 항상 모두의 얼굴을 붉히게 하는 주범이고, 환자에게 최소한으로는 불신의 감정을, 최악으로는 배신의 감정마저 들게 하는 A4 한 장짜리 서류다.


환자는 다양한 이유로 퇴원을 원한다. 치료가 미덥지 못해서, 차도가 없어 다른 병원을 알아보려고, 병원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어서, 병 치료보다 급한 경조사가 있는 경우. 의사들은 한 가지 이유로 퇴원을 막는다. '지금 치료를 중단하고 귀가하시면 최악의 경우는 생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문제의 종이인 자의퇴원서를 내밀면 환자는 흡사 자기가 대단한 죄를 지었거나 무식한 사람 취급을 받는 것처럼 화를 내곤 했다. 사실 충분히 그럴만하다. 자의퇴원서에는 적절한 설명을 했음에도 자의로 퇴원할 시 병이 악화되거나, 다시 입원을 해야 하거나, 결국 죽을 수도 있다는, 마치 그러길 간절히 바라는 듯한 저주의(?) 말들이 나열되어 있고 서명란이 덩그러니 있다. 그런 종이에 서명을 하면서 누가 기분이 좋을 수 있을까. '열심히 치료하는 척하더니 퇴원한다고 하니 본색을 드러내는군.' 같은 생각이 들지는 않을까.


늘 책임의 문제가 의사와 환자 사이를 가로막는다. 자의퇴원서도 결국은 책임 문제다. 당연하지 않겠는가. 현 상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죽을 수 있다고 까지 말했는데도 환자가 퇴원을 원하면 의사가 어쩔 수 있는 건 없다. 억지로 붙잡아 둘 수 있는 법이나 권력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의학적인 조언을 귀담아듣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겨우 책임 따위 운운하면서 이렇게 다투어야 할까? 문제는 이 책임이 '생명'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것과 관련되어 있어 여기에 얽히면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치료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는 누구도 괜찮을 것이라 장담할 수 없고, 만에 하나라도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확답할 수 없다. 정말 일이 벌어지고 나면(누군가가 죽고 나면) 실제로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책임을 진다는 건 원 상태로 되돌려 놓는, 최소한 그에 준하는 상태까지 어느 정도의 복구를 해놓는 것일 텐데 죽은 사람에게는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최선을 다해 설득할 뿐이고 결국 결정은 환자들이 하게 되지만 최종 결정을 직접 하지 않는다고 홀가분하게 마음을 털어낼 의사는 없을 것이다. 자의퇴원서에 서명하고 퇴원하는 환자를 보면 저 모습이 혹시 마지막이 되지는 않을까 불안하고 찝찝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다 며칠 뒤 '책임'질 수 있는 정도의 상태로 환자가 다시 병원에 실려온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때의 책임은 퇴원을 결정한 환자에게 있지만(우리 의사들의 손에는 빌어먹을 자의퇴원서가 있으므로), 다시 그를 살려야 하는 의료진들에게는 새로운 책임이 금세 지워진다. 이전보다 안 좋은 상태로 처음부터 다시 치료를 시작해야 하는 것은 덤이다. 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DAMA'는 반갑지 않은 친구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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