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

[제25회 한미수필문학상 출품작]

by 강상록

“선생님 말고 다른 의사 불러주세요.”


70대 할아버지의 삐쩍 마른 손목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어느 곳에 바늘을 찔러야 할지 고민하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때, 할아버지의 딸인 듯한 50대의 보호자가 말했다. 나한테 하는 말인가? 지금 이 병실에 선생님이라고 불릴 사람은 나밖에 없으므로 당연하다. 이미 알면서도 스스로 되묻는다. 보호자의 날카로운 말이 지금 내가 들고 있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굵은 바늘이 되어 가슴에 꽂혔고, 나는 얼어붙었다.


대학병원에서 인턴을 시작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어느 아침이었다. 인턴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순환 근무를 했는데, 나는 첫 근무지인 재활의학과에서 일하는 중이었다. 할아버지는 많은 시간을 병상에 누워 지내는 뇌경색 환자였고 합병증으로 폐렴이 반복되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손목을 만지작거리던 이유는 ‘동맥혈 채혈’ 때문이었다. 폐가 좋지 않은 그의 혈액 속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농도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동맥혈 채혈은 채혈 방법이 어려워 인턴들에게는 최대의 난관이다. 보통 손목에 있는 ‘노동맥’에서 채혈하는데, 동맥이 손목의 다른 구조물(뼈, 인대, 신경, 정맥 등) 사이에 숨어있어 채혈이 어렵다. 환자가 손등이 아래로 가도록 손을 뒤집어 나에게 내밀면 나는 손목 아래에 작은 받침대를 받쳐 손목 안쪽이 더욱 노출되도록 쭉 편다. 그 상태에서 환자의 엄지손가락을 따라 손목 쪽으로 내려오면 맥박이 잡히고, 맥박이 뛰는 부위를 손가락으로 고정한 후 바늘로 찌르면 동맥혈을 채혈할 수 있다. 말로는 참 쉽다.


처음 할아버지를 방문한 날 할아버지의 손목을 여러 번 찔렀다. 보호자가 다른 의사를 불러달라고 한 이유였다. 할아버지는 잦은 채혈로 이미 손목의 피부가 두꺼워져 있었고 맥박을 촉지 하기 어려웠다. 바늘은 찌르는 족족 혈관을 빗겨나갔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그랬다. 사실은 그저 내가 미숙했을 뿐인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다른 의사를 불러달라는 보호자의 말에는 화가 치밀어 잠시 서서 고민했다. 이대로 물러나 진짜 다른 의사를 불러올 것인가? 아니다. 그건 말이 안 된다. 채혈을 몇 번 실패했다고 선배나 동기에게 와달라고 할 수는 없다. 더군다나 보호자가 나를 원하지 않아서라면?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더욱 내가 채혈을 해야 했다.


“환자분께 배정된 의사는 접니다. 원하시는 대로 다른 의사를 막 불러올 수는 없습니다. 저에게 처치받으셔야 합니다.”


믿는 구석도 없이 홧김에 큰소리를 쳤다. 말을 하는 동시에 후회도 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멋지게 성공할 것인가. 아니면 망신을 당할 것인가. 또다시 실패하여 보호자에게 멱살이라도 잡혀 끌려나가는 건 아닐까. 긴장되는 마음으로 환자의 침대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준비를 하는 동안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고 수백 개의 작은 바늘이 온몸을 찌르는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들지 않아도 보호자의 따가운 시선이 충분히 느껴졌다. 지금이라도 다른 사람을 불러올까. 축축해져 가는 내 손과 미세하게 떨리는 호흡을 보호자가 눈치채지 못하기만을 바랐다. 평소보다 오랜 시간 동안 신중하게 혈관을 찾았다. 미세하게 맥박이 느껴지는 부위를 확실히 고정하고, 바늘의 각도를 45도 정도로 유지한 채, 한 번만 나를 믿고, 망설임 없이 푹. 바늘이 무언가를 뚫고 들어간 느낌이 들었다! 곧바로 바늘 입구에 혈액이 맺히는 것이 보였고 주사기 끝을 천천히 당기니 선홍색의 동맥혈이 따라 올라왔다. 완벽하게 채혈에 성공했다. 살았다.


말이나 표정으로 티 내지 않으려 노력하면서도 의기양양한 걸음으로 병실을 나왔다. 그 후부터는 어떤 처치를 해도 보호자가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그녀도 멋쩍었는지 아예 나와는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 했다. 나는 승리했다. 의사들 사이에서 무용담처럼 말할 만한 승리였다. 무례한 보호자와 용기 있게 맞서고 보란 듯이 채혈을 성공한 무용담.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불편할까. 통쾌하고 후련해야 마땅한데 마음 한구석에 돌이라도 얹혀있는 느낌이었다. 그 병실에 갈 때마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지 않았다. 병실에 들어가면 보호자가 또 있을까 눈치를 살피고, 그녀가 있는 날에는 할아버지에게 마음 편히 말도 걸지 못했다.


나는 이제 막 일을 시작한 ‘초보의사’였다. 할아버지의 손목을 여러 번 찌른 것이야 잘한 일이 아니었지만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경우, 환자는 보다 세부적이고 전문적인 의료 서비스를 받는 대신 의료진의 교육에도 일정 부분 동의 하고 참여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우리가 환자를 대상으로 연습을 한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우리는 그런 식으로 배우지 않으면 도저히 배워 나갈 수가 없었다. 책, 영상, 모형으로 하는 교육은 반쪽짜리 교육일 뿐이다. ‘실전과 같은 훈련’은 의료 현장에서는 있을 수 없다. 우리에게는 실전만 있다.


나의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하기엔 그날의 일이 쉽사리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이른 아침, 고요하다 못해 불편하기까지 했던 병실의 분위기와 다른 의사를 불러달라던 불신의 목소리. 나에게 처치를 받아야 한다며 언성을 높이는 나 자신의 모습과 등을 따라 흐르는 식은땀의 촉감까지. 그리고 그곳에는 나와 보호자의 다툼을 불편하게 바라보고 있는 환자가 있었다. 일주일에 적어도 두 번, 새벽부터 억지로 잠에서 깨어 불안한 마음으로 손목을 내어줄 수밖에 없던 환자. 수도 없이 바늘에 찔린 상처투성이의 손목을 만지며 또 어디를 찔러야 할지 고민하는 어린 의사로부터 미숙함이 느껴지고, 일상이 되어버린 익숙한 채혈은 다시 고통의 순간으로 변해버렸을 것이다. 보호자 역시 지쳤을 것이다. 환자는 힘들게 검사를 받지만 모든 검사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을 듣지는 못하고 질병은 차도가 없어 보이니 답답했으리라. 내밀하게 숨겨진 작은 동맥, 생명의 증거로 힘차게 뛰고 있는 그것을 의심 없이 내어놓던 환자에게 나는 너무 무례한 의사였는지 모른다.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내는 그들에게 단호한 나의 말이 무거운 짐을 더했을지 모른다.


시간이 지나니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질병은 우리를 철저히 이간질한다는 것이다. 무례한 말을 하게 하고, 똑같은 무례함으로 반응하게 한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용기’로 착각하게 하고, 환자의 희생으로 얻게 되는 배움을 ‘승리’로 오해하게 만든다. 나의 행동은 용기 있는 행동이 아니었고 채혈을 성공한 것은 승리가 아니었다. 채혈을 계속 실패하면 다른 의사에게 부탁할 수도 있는 것이 진정한 용기고, 어떻게든 힘을 합쳐 질병을 이기는 것만이 진정한 승리일 것이다.


그 일로 우리는 없어도 될 상처를 고스란히 나눠 가졌다. 언젠가 또 비슷한 다툼을 하게 된다면 먼저 이해하고 양보해야 하는 것은 나이지 않을까. 우리의 감정싸움이 질병의 이간질이라는 건 아무래도 내가 더 잘 알 테니 말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위치에서 싸울 뿐, 실은 질병과 싸우는 동지임을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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