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 기타를 배운다. 오랜 고민 끝에 시작한 취미 생활. 배우기로 결정하는데만 수개월, 어느 학원에 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데만도 몇 주가 흐른다. 수년간 안부인사조차 전하지 못했던, 나의 세계에서는 가장 베이스 기타를 잘 치던 어떤 형에게 용기 내어 연락한다.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는다. 오랫동안 서로를 응원했던 우리는 바로 어제도 연락을 했던 사람들처럼 어느새 따뜻한 마음이 되어 대화한다. 시간이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만드는 관계도 있지만 다시 연락이 닿은 것이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 정도로 반가운 사람도 있다. 형이 마침 음악학원을 운영한단다. 베이스 기타를 반드시 배우라는 하늘의 뜻이다.
악기를 파는 유명하다는 사이트 세 군데를 돌아다니며 100개쯤 되는 모양도, 색도, 가격도, 소리도 천차만별인 베이스 기타들을 둘러보지만 곧 길을 잃는다. 아무래도 악기는 소리가 가장 중요할 테니 열심히 소리를 들어본다. 좋은 소리가 무엇인지조차 모른다는 사실만 깨닫는다. 형을 들들 볶아가며 수십 가지 질문을 퍼부은 후에야 겨우 주문을 마친다. 100개 중 가장 평범해 보이는 기타 하나가 집에 도착한다.
"너는 왜 기타 줄이 4개야?" 같은 질문을 했다가는 베이스 기타 연주자들에게 쓴소리를 듣기 딱 좋다. '고작' 4개의 줄로 음악의 기초가 되는 낮은음들을 책임지는 악기, 베이스 기타. '두웅'하고 길게 울리며 심장을 긴장시키는 그 소리에서 결국 헤어 나오지 못해 레슨을 시작하게 되었다. 집으로 비유하면 기둥이나 바닥 같은 역할을 한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인테리어, 가구, 장식품에 비교할 수 있는 일렉 기타나 키보드 같은 악기와는 내 성향 자체가 맞지 않는 느낌이다. 뭐랄까, 나는 존재감이 없이 존재감이 크고 싶다. 음악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는 '두웅'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도 않겠지만 막상 '두웅'이 빠진 음악을 들어보면 바닥이 없는 집에 들어온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두웅'이 문제다. 내 손가락이 그 소리를 내지 못한다. 첫 레슨을 마치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선생님, 진도가 너무 빨라요'였다. 그런데 막상 연습을 꾸준히 하다 보니 점점 악보와 근접하게 연주가 가능해졌다. 내가 소질이 있는 걸까? 아마 아닐 것이다. 가능한 정도의 숙제를 내줬겠지.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그 '두웅'소리는 아직 턱도 없다. 깊이 있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음의 길이가 충분히 길지 않고 중간에 자꾸만 끊긴다. 손가락을 100번 튕기면 100번 모두 소리가 다르다. 일정한 소리를 내는 것조차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이래 가지고는 누군가의 심장을 쥐락펴락 할 수 없다. 바닥을 깔고 기초를 세울 수 없다. 존재감 없이 존재감을 드러낼 수도 없다.
"선생님, 제가 소질이 없나요? 그렇지만 결국에는 되겠죠?" 다음 레슨 때 물어봐야겠다. 그런데 이미 스스로도 알고 있듯이 결국에는 될 것이다. 지금까지 모든 일이 그랬으니까. 되지 않았던 경우는 내가 그 '결국'까지 견디지 못했을 때뿐이었다. 꾸준하기만 했다면 다다를 수 있었던 그곳에.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 연습을 시작한 지 고작 일주일이 지났을 뿐이다.
하루에 딱 30분을 연습한다. 경험상 일주일에 하루 날을 잡고 4~5시간 연습하는 것보다 매일 30분이 훨씬 낫다. 원하는 소리를 내려면 매일매일 내 손이 기억하게 만들어야 한다. 손가락 각도를 더 비스듬하게 해. 줄을 튕길 때는 이 정도 힘으로 튕겨. 아니, 너무 천천히 튕기니까 음이 끊기잖아. 손가락에게 계속 말을 건다.
하루 연습으로는 아무 티가 안 나겠지만 한 달 후에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결국은 내 손에서부터 멋진 '두웅'소리가 나게 될 것을 알기 때문에 오늘 하는 의미 없어 보이는 반복이 마냥 즐겁다. 세상 모든 일에 그런 태도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