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부러 나란히 길 잃은 우리 두 사람.

나쁜 결말일까 길 잃은 우리 둘

by 한눈팔기

관계의 지속에 대한 자신없는 마음은 어느날 갑자기 더 세게, 내게 들이닥쳤다.


처음 시작할때만 해도 언젠가는 끝나게 될 관계라고 자꾸만 되내이며

저만큼 물러서 더 다가서지 못하게 내 마음을 호위하며 기주오빠를 만났었다.

그럼에도 오빠와의 연애기간동안,

그런 내 마음을 다 허물어뜨리며 Love wins all 을 염불외우듯 부를 수 있었던 건

오빠의 진실된 마음이 내눈에 가득히 보였기 때문이었다.


미친 것 같은 사랑만 가득한 시간을 보내었지만.

그렇지만,

전처와 통화하는 오빠를 바라보고,

재희를 챙기고 오느라 늦어지는 오빠를 기다리고,

재희에 대한 걱정과 고민으로 한순간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는 오빠를 지켜보면서

조금씩 나도 모르게 자신이 없어졌던 것 같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오빠의 스케쥴에 맞추느라

내가 하고싶은 것을 말할 수 없다는 것.

내가 가고싶은 곳은 말해봐야 허공속에 흩어지고 말뿐이라는 걸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모든걸 내 뜻대로 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양보하는 만큼 나도 양보받고 싶은데

그럴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문제는.

내가 양보받길 원하고 있다는 그 말을 속으로만 삼켜야 한다는 점이었다.

초등학생 딸을 둔 오빠를 배려하느라

우리의 관계에서 내 목소리는 되도록 내지 않으려 애썼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억울한 마음과 양보받고 싶은 마음,

내가 하고 있는 배려와 양보들이 답답하다는 그 마음이

점점 자라날 수 밖에 없었다.


상대가 누가 되었건, 상대에 대한 진짜 내 감정은 드러내 보이지 못하는

내 못난 성격때문에 빈속만 태우고 있었지만,

점점 생각을 깊이 할수록 억울한 마음이 화로 바뀌어가고 있다는걸 알아차렸다.

혼자 분에 못이긴 걸음을 걷다가 목적지를 지나쳐버린 날.

이렇게 말하지 않고 버티기만 하는건

우리의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래서 지난 토요일,

오래도록 속으로만 삼키거나,

심통난 표정을 지어가며

오빠가 내 감정을 먼저 알아주길 바랐었던 그 마음들을 힘겹게 꺼냈다.

처음 오빠는 무지 놀란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애써 나를 달래려 지어내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의

진실된 태도로

오빠 마음을 들려주었다.




"오빠, 나 요즘 이상한게 오빠 전처가 나오는 꿈을 많이 꿔.

최근에는 오빠한테 "전처랑 그렇게 연락하는 거 너무 싫어. 우린 헤어지는게 낫겠어" 라고 말하는 꿈까지 꿨어.

지지난주, 새벽에 오빠 전처에게서 두어번 전화온 뒤로 신경이 많이 쓰였나봐.

재희 일정 때문에 어쩔수 없다는걸 알고,

상대가 오빠 상황이 어떤지 모르기 때문에 늦은 시간인데도 전화한 거라는걸 알지만,

옆에서 그걸 듣고 있는 내 마음이 어떨지 한번만 생각해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오빠 만나던 초반에 얘기한 한적 있었지만,

이제는 점점 그냥 아무렇지 않게 듣게 되는 재희 얘기들도,

솔직하게 얘기하면 그걸 듣는거, 불편한 마음이 커.

오빠의 삶의 한 부분이어서 그걸 빼고는 오빠를 이야기할 수 없지만,

그리고 앞으로도 오빤 계속 이야기를 할테고 난 들어야만 하겠지만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재희 얘기를 듣는게 계속 불편해.

오빠에게 지금 1순위는 재희이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늘 오빠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

매주 반복되는거지만 늘 적응안되고 싫어.

기다리는거 싫고 나는 영원히 오빠에게 2순위라는 사실도 싫어.

그냥 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내가 서희였어도 그랬을거야. 그래서 내가 너를 얼마나 고마워하는 줄 알아.

그런 마음으로도 계속 기다려주고 버텨주는거 알아서 늘 고맙고

그래서 서희 네가 정말 존경스러워.

그치만 재희 이제 곧 초등학교 고학년 되잖아. 언제까지 내 품안의 자식이겠어.

몇년 있으면 재희도 알아서 모든걸 다 할테고 내 손도 많이 가지 않을거야.

그때 서희랑 더 많이 함께 보낼 수 있어.

난 지금 그것만 기다리고 있는데.

그때까지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안될까.

나한테 서희가 1순위 될 날이 올거야.

그때가 되면 내가 서희한테 미안했던거 다 보답해줄게."




계속해서 내 기다림은 ing 여야 하기 때문에. 이런 말들로 억울한 마음이 다 달래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오빠의 말들이 진심으로 느껴져서 좋았다.

이렇게 담담하게 내 마음 표현해도 되는구나.

그러면 오빠가 이렇게 알아주고 받아주고 대답해주는구나.

답이 없는 연애일 수 있지만

오빠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있으니까.

그 대답으로 오빠의 믿음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

앞으로 심통난 표정 읽어주길 바라는 아이같은 짓은

조금씩 줄여나가야 겠다고 생각했다.

혼자서 망상에 빠져서 시나리오 쓰는 대신,

오빠에게 너무 부담이 되지 않을 정도의 간격으로

내 마음 상태를 확인시켜줘야겠다.

지치기 직전의 내 상태, 무심코 지나치지 말라고..



언젠가 이 기록들도 오빠에게 보여주고 싶다.

내가 이만큼이나 힘들었었다고.

매일매일 나사빠진 것처럼 웃고 있었던 날들에도

온갖 망상과 상상들, 미래에 대한 걱정들로

오빠를 바라보면서도 마음 한귀퉁이에는 불안함이 잠들었던 적 없었다고.

더 힘들어지는 날이 올까봐

무서워서 도망가고 싶던 날이 많았다고.

내 마음이 너무 커져서 도망칠 생각도 못하고 오빠 곁에 남아 있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그저 행복한 꿈만은 아니었었다고.

"미국갔다오면 우리 어디서 같이 살면 좋을까,

이 동네 좋지 않아??

매일 같이 붙어 밤새도록 수다 떨 수 있으면 너무 좋겠다."

행복한 대화를 나누는 중에도

나는 두려움이 더 컸었다고.

오빠를 이만큼이나 사랑하고 믿고 보고 싶어하면서도.

정작 우리의 미래에 대한 꿈이나 상상은

그리 많이 해본적이 없다고.

그럴 수가 없었다고...



그치만 오빠가 해준 말을

여기에 이렇게 기록해 두고서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질 때마다

꼭 다시 와서 두고두고 읽어봤다고.

그렇게 얘기해주고 싶다.



Love wins all (아이유)


Dearest, Darling, My universe

날 데려가 줄래?

나의 이 가난한 상상력으론 떠올릴 수 없는 곳으로


저기 멀리 from Earth to Mars 꼭 같이 가줄래?

그곳이 어디든, 오랜 외로움

그 반대말을 찾아서


어떤 실수로 이토록 우리는 함께일까


세상에게서 도망쳐 Run on

나와 저 끝까지 가줘 My lover

나쁜 결말일까 길 잃은 우리 둘 um


부서지도록 나를 꼭 안아

더 사랑히 내게 입 맞춰 Lover

Love is all Love is all

Love Love Love Love


결국, 그럼에도,

어째서 우리는 서로일까



찬찬히 너를 두 눈에 담아

한 번 더 편안히 웃어주렴

유영하듯 떠오른 그날 그 밤처럼,

나와 함께 겁 없이 저물어줄래?


산산히 나를 더 망쳐 Ruiner

너와 슬퍼지고 싶어 My lover

필연에게서 도망쳐 Run on

나와 저 끝까지 가줘 My lover

일부러 나란히 길 잃은 우리 두 사람




오빠는 가도 될 길을 걷고 있을 뿐이니

길 잃은건 나 혼자 뿐이겠지,

혼자 힘으로 결국.

길을 찾게 될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