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결합, 결국 나혼자만의 망상에 불과하길.
나는 꿈을 정말 많이 꾼다.
하루에도 3-4개의 꿈을 꾼다.
정말 말도 안되는 터무니 없는 꿈도 꾸지만,
내 현 스트레스가 뭔지, 지나쳐온 내 감정과 마음이 뭔지 일깨워주는 그런 꿈들을 꿀때도 많다.
최근 오빠의 전처에게서 오는 전화가 잦아졌다.
주말에 오빠랑 같이 있다보면 저녁 11시쯤 한번,
새벽 2-3시쯤 또 한차례 전화가 온다.
아이 일정 때문에 전화 건거라는건 아는데,
굳이 최근들어 이렇게 전화를 자주 하는 이유는 뭘까.
게다가 그 새벽에 전화를 하는 걸 보면
오빠에게 만나는 사람이 있는걸 알고 일부러 훼방 놓으려는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오빠에게서 전처에게 남자가 생긴것 같다는 얘길 오래전에 들었었는데, 그 사람과 틀어진 모양인가 라는 생각도 해본다.
뒤틀어진 감정상태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보면 화가 씩씩 난다.
그런데도,
두어번 전화를 안받다가 어쩔 수 없이 받아서 퉁명스런 통화를 하는 오빠를 나는 또 애써 모른척 한다.
말해봤자 입만 아프고 확인할수도 없는 통화내용.
나를 더 힘들게 만들 이야기만 잔뜩 듣게 되겠지.
한숨으로 시작되는 전쟁의 서막을 굳이 열고 싶지 않아.
그랬던 어느 날이었다.
오빠가 먼저 잠들었고 난 한참 뒤에 오빠 옆에서 잠이 들었는데 오빠 전화 벨소리가 들렸다.
잠에서 깨어난 오빠는 전처와 통화를 하는 듯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짜증이 났다.
그러고 나는 오빠에게 잠이 잔뜩 묻은 목소리로
"그 여자 왜 자꾸 전화한대? 아 진짜 싫어"라고 소리치며 오빠에게서 등을 돌리고 잠들어 버렸다.
잠에서 다시 어렴풋이 깬 나는 아무래도
아까 내가 한 말이 꿈속에서 한말같아서
"오빠 아까 자다가 전화와서 받았지?" 라고 물어봤다.
오빠가 그렇다고 대답했고,
그리고 정말로 잠에서 완전히 제대로 깨어났을때
이 모든게 꿈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전화가 온 것도 꿈,
"왜 자꾸 전화한대? 아 진짜 싫어" 라고 말한 것도 꿈,
"오빠, 아까 전화와서 받았었지?" 이마저도 꿈이었던 것.
꿈 속의 꿈. 내 꿈을 조종하고 있는 전처.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짜 일어난 일인지 알 수 없는 뒤죽박죽 마음 상태로 지내는 날들의 연속에서
며칠 뒤 또 오빠의 전처와 관련된 꿈을 꿨다.
"오빠 전처가 신경쓰이고 싫어.
오빠 전처가 재결합하자고 하면 어떡할거야?
재희 생각하면 재결합 할거잖아. 그치? 맞지?
나 그냥 오빠 안 만날래. 짜증나"
내가 말했다.
꿈속에서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오빠는 그냥 무작정 우리 집 안으로 들어와서
부모님이 있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헤어지는건 말도 안된다고 내게 화를 냈다.
전처가 무슨 상관이냐면서 못 헤어진다고 얘기했다.
부모님은 그런 나를 못마땅하게 바라봤고 난 꿈에서 깨어났다.
이 꿈을 꾸고 나서 오빠에게 이 꿈 얘길 들려줘야겠다고 맘먹었었다.
내가 전처를 의식하고 신경쓰고 있다는걸 드러내는게 민망하고 부끄럽다면,
현실에서 내가 얼마나 시달리고 신경쓰고 있는지 꿈얘기를 통해 우회하여 들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꿈에서 깨어 일어나자마자
"오빠 나 오빠 꿈꿨어.
말해주기 어려운 내용인데 말해줄까 말까?" 라고 말했다.
평상시의 오빠는 내 꿈얘기를 너무나도 재밌어 하고 전부 빠짐없이 듣고 싶어해서
내가 잊고 있더라도 "아까 얘기한 꿈얘기가 뭔지 말해줘"라고 꼭 물어보는데
오빠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번만큼은
"응 이따 말해줘"라고만 하고 그 뒤로 더는 묻지 않았다.
내가 힌트를 너무 많이 주었나보다.
내 마음과 감정과 생각-오빠의 결혼 이력과 아이에 대한 내 부담감, 고민, 망설임-을
아무것도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오빠에게
너무 늦지 않게 알려줘야겠다는 내 다짐은 그렇게 쉽게 사라졌다.
전처를 갑자기 의식하게 된건,
재결합, 에 대한 글을 어디선가 우연히 읽었던 데서 비롯된것도 같다.
오빠의 경우를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누구보다 재희를 아끼고 사랑하는 오빠.
아이에게 엄마도 동생도 없는 것을 늘 안타까워 하는 오빠.
그런 오빠는 사랑이 없는 결혼생활이라도 할 수 있을 거다.
이혼하기 전에 전처에게도 말했다고 한다.
"아이를 위해 남은 인생 쇼윈도로 살순 없냐, 난 할 수 있다"
이런 얘길 다 알고 있기에
상대가 재결합을 원한다면, 오빠는 어쩌면. 당연히...
라는 생각에 이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전처의 전화도 잦아지니 이 연애가 너무나도 억울하게만 느껴졌다.
나혼자 이 생각을 하다보니
결국 내 앞에 벌어진 일은 하나도 없는데
혼자 분하고 화가 나서 씩씩거리면서 한참동안 길을 걸었다.
오빠에 대한 사랑은 완벽하고 완전해서
절대 흔들리고 뒤집어질 수 없을 거라고 확신해 온 나지만,
요즘은, 내가 아깝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내 망상이 내 마음을 변색시키고 있다.
이게 결국 나에게 옳은 상황일지도 모른다.
이게 잘못됐고 못된 생각이 아니라는것도 이제 안다.
양심의 가책없이 온갖 망상을 하게 만드는 오빠의 상황이 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