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것 (1) 운전실력
2025년 12월 28일.
비행기가 LA에 착륙하자마자 나는 비장하게 백팩에서 손목보호대와 목장갑을 꺼낸다.2개의 이민가방과 29인치 캐리어가방, 골프백, 기내용 가방 1개를 카트에 싣고,내 등딱지보다 커다란 백팩을 메고 샌디에고로 출발해야 하기 때문에.
부푼꿈을 안고 도착한 샌디에고.
항상 햇빛가득하고 여름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그러나 도착한 때는 12월 말, 이곳의 우기였고,
적응하는 10여일의 기간은 어두침침한 방안에서
'내가 왜 이곳에 왔을까? 무엇때문에 사서 고생을 하러 이곳에 왔을까?
보고싶어 죽을 것만 같은 내 고양이와 남자친구를 두고 왜 이런선택을 했을까'
이미 늦은 후회섞인 자책을 할수밖에 없었다.
(허나, 한가지 첨언할 것은,
미국의 가정집은 아직도 형광등보다도 못한 주황색 백열등을 사용한다는 것.
이 곳은 우리나라보다 전기세가 2-3개 가량 비싸기에 웬만하면 안쓰는 불은 죄다 끄고 지내야 한다.
더욱이 나와 내 룸메이트가 살고 있는 이 집은 큰길가를 향하는 1층집이어서 블라인드를
늘 내린 채 살아야 하므로 밖의 날씨가 아무리 맑고 화창해도 집안은 어두컴컴..할 수 밖에 없다는 것!!)
하지만 1월 어느날이었던가,
드디어 샌디에고는 나에게 미소를 허해주었다.
이토록 맑은 날들이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동네를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고,
집에서 조금은 멀지만 예쁜 공원을 발견하는 것도 짜릿한 기쁨이었다.
그런 이 곳, 샌디에고에 나를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던 무엇인가 있다.
무려 7월부터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로
햇빛속에서도, 비를 맞아가면서도 가만히 그자리에 서 있던 존재.
바로 이친구, 토요타 코롤라이다.
나는 이곳 샌디에고 현지에서 집과 차를 연결해주는 정착서비스 사장님에게
2025년 5월부터 약속을 받아두었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매물로 나오는 제일 작은 차는 무조건 나에게 달라고.
그래서 7월에 계약을 했고, 그 때부터 이 친구는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친구와 금방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한국에 있던 약 6개월간의 시간을 총 160여만원을
들여가며 운전연수를 받았다.
누군가는 한학기 한수업보다 더 많은시간 운전연수를 받은거냐며 정곡을 찔러주었다.
참고로 나는 겁이 대단히 많기에
평생 운전은 안하고 살겠다고 다짐해오던 사람이다.
그러던 2023년, 그래도 사람답게 갖출건 갖추자는 마음에 운전면허를 따 두었다.
그 과정에서 장내시험과 도로주행을 모두 3회째에 간신히 합격하고
장내시험2회차 불합격시에는 세상 처음 느껴보는 자괴감에 집에가는 버스에서 펑펑 울기까지 했던 경력을 갖고있다.
나 자체가 운전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는 것을 스스로 여실히 입증한게다.
그리하여 운전면허증은 일종의 신분증 구실밖에는 하지 않은채 3년을 살아왔던거다.
그런 내가, 미국에서 살기 위해서는 차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진짜 엄청난 각오를 하여 운전연수를 받아 둔 것이었다.
정착서비스 사장님은 미국의 교통여건은 한국과는 달라서 차도도 넓고 주차공간도 넓으니 걱정할 것 없다고 몇번이고 나를 안심시켰다.
복잡한 서울에서는 연습을 할 필요도 없다며 2025년 1년간 내가 종종 머물며 지냈던 세종시에서 운전연수를 받아도 충분하다는 조언도 곁들였다.
나는 엑셀과 브레이크를 혼동하기도 여러차례, 연석을 타고 운전한 것도, 로터리에서 사고날뻔한 적도, 숱한 실수를 반복해가며 주행은 거의 감을 잡았었고 주차만큼은 감을 잡지 못한 채로
허둥지둥 이 곳 샌디에고에 도착한 것이다.
역시 차도도 넓고 주차공간도 넓은 이 곳 미국.
미국 차들은 주차 후에 사이드미러를 접지도 않는다.
그만큼 주차 간격이 넓다는 뜻이다.
물론 이곳은 대부분 전면주차를 하기에 후방주차만을 연습해온 나에게 주차는
또 하나의 난제였지만, 어차피 주차장이 매우 넓고 내 주차자리 양옆으로는 차가 들어오지 않기에
약 5분정도 뒤로 갔다 앞으로 갔다 왼쪽으로 갔다 오른쪽으로 갔다를 반복하다보면
어느덧 우겨우겨 주차공간에 빼뚤빼뚤 서 있을수는 있는 상황은 되긴 한다.
허나!!!!!!!!!!!!!!!!!!!
전부터 미국에 사시는 분께 종종 들었던 이야기가 "고속도로가 정말 무섭다"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주행연습이 충분히 되어 있던 나에게
복병은 고속도로였던 것이다.......!!
고속도로가 이렇게나 무서울 줄은 생각도 못했다.
여기까지 본 사람들은
"고속도로 어쩌다 먼 데 갈때나 타는건데 뭘, 별 어려움 없겠네" 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게 아니다.
우리 집에서 마트든, 학교든, 관광지든, 어디든 일단 나가려면 무조건 고속도로를 타야 한다.....ㅠㅠ
10분 내에 도착할 수 있는 아주 가까운 곳이라면 로컬도로로 다닐 수가 있으나
15분 이상은 걸리는 곳이라면 무조건 고속도로를 탈수밖에 없다.
고속도로는 잘 닦여 있고 차선도 널찍널찍하다.
그래서인지 차 간의 앞뒤 간격도 널찍널찍해서 끼어들기라는걸 할 필요도 없고 제때 깜빡이 넣고
차선을 변경하면 사실상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속도와 차선변경이다.
두려움이 많은 나는 시속 60마일 (96Km/h)도 땀에 흠뻑 젖어가며 달리는데
지나다니는 차들은 시속 80마일 가량 되는것 같다(약 128km/h).
도로가 넓어서 그런지 양옆으로 달리는 차들의 속도가 어마무시하게 빠르게 느껴지고 픽업트럭도 많고 대형차도 많고(종종 사이버트럭도 보이고) 피하고 도망가고싶게 만드는 차들이 사방에 널렸다.
그러다보니 차선변경에 애로가 많다. 깜빡이를 넣고 변경을 하려다가도
뒤의 차가 너무 빠르게 달려오는 것 같아 포기하기 일쑤이고
그러다보면 빠져나가야 할 우측 출구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직진해버리고 만다.
너무 빠르게 달리다보니 네비게이션을 곁눈질할 틈조차 없다. 그냥 정신이 혼미해져버린다.
네비게이션을 볼 수 없으니 출구를 지나치기 쉽다.
그나마 다행인건 조금 천천히 달린다 해도, 우리나라처럼 뒤차들이 빵빵거리지는 않는 편이다.
그런데도 잔뜩 긴장하고 주눅들어 있으니 차선변경에 자신이 안생긴다.
미국에 온지 1달이 다 되어가건만, 아직까지 혼자서는 고속도로를 달려보지 않았다.
룸메이트(H)와 같이 살고 있으나, 차는 무조건 각자 한대씩 해야 불화가 없을거라는 정착서비스
사장님의 말을 철썩같이 믿고 차를 각각 구입해버렸다(지금에 와서 엄청나게 후회중이다).
H는 운전경력이 무려 16년차 베테랑이고
H와 나는 지금 거의 모든 일정을 함께 하고 있다.
때문에 나와 H는 거의 H의 차로 이동하고 있고, 때로 내 차로 이동할때도 있으나
그럴때마다 H는 내 옆에서 운전을 코치해주고 네비게이션을 읽어주며 경로를 바로잡아준다.
그렇지만
그 무엇보다 문제는 속도도 고속도로도 주차도 차선변경도 아니다.
두려움, 그 자체이다.
처음에는 내 차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분명 내 인생 첫 차인데도 좋은 느낌은 전혀 없었고
차를 타면 불편했다. 나를 위협하는 대상 안에 있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적응해보고자 혼자 차를 끌고 가까운 거리로 주행연습을 해보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날 혼자 연습을 한 뒤 땀을 빼가며 주차를 하고 집으로 들어오다가 뒤를 돌아보니
다시 혼자된 내 차가 너무 불쌍해보였다,
정이 안간다고 쌀쌀맞게 대하는 주인을 6개월이나 기다린 내 차가.
사이드미러에는 거미줄로 친친 감겨져있고
차 안은 습기로 가득해서 탈때마다 눅눅하고
정체를 알 수없는 악취를 풍겨대는 내 코롤라,
그런 내 차가 순간 너무 불쌍해서 눈물이 났다.
그렇게 차에 대한 애틋함이 생겨났음에도
운전실력은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나마 가까운 거리는 H를 대동한 채 내가 운전을 해가며 조금씩 나아지려 하던 어느날이었다.
학교를 가는 날이었다.
집에서 고속도로를 타면 약 18분만에 도착할 수 있는 학교인데.
그날따라 이상했다.
전에는 운전이 하고 싶은 날도 있었고, H에게 내가 먼저 운전해보겠다고 선뜻 제안한 적도 여러번이었며
긴장되던 마음도 점차 안정적으로 변하고 있다고 느꼈었는데
그날은 유독. 내가 운전하기로 약속한 날이었는데도
아침부터 멈추지 않는 두려움에 심장이 계속해서 두근거렸다.
그 두려움은 운전대를 잡아도 사라지지 않았다. 심장이 점점 더 세게뛰었고
고속도로로 진입하고 나서는 거의 정신이 나간 상태였던 것 같다.
몇번의 아찔한 순간들이 있었고,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돌아오는 길 역시 아찔한 순간이 여러차례였다.
찢어질듯 크게 "빵"하는 클락션 소리를 그날 하루동안 3차례 정도 들었던 것 같다.
기겁하며 똑바로 운전하라는 H의 목소리도 아득하게만 들렸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기가 다 빨려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나때문에 아무런 죄도 없는 H는 목숨을 걸고 40여분간을 왕복으로 버텨냈으니얼마나 짜증이 나고 싫을까 하는 생각에
내 자신이 진짜 손톱만해진 기분이었다.
"여태 계속 잘하다가 오늘 왜 갑자기 퇴행했어요? 안그랬잖아요"
하는 H의 얼굴을, 미안해서 도저히 바로 볼 수가 없었다.
그 뒤로 다시 마음과 기분은 바닥으로 치달았다.
운전도 제대로 못 배우고 여길 온 내가 너무 한심스럽고 답답했다.
운전을 못하니 내가 가고싶은 곳을 찾아 볼수도 없고 혼자서 밖을 나갈수는 더더욱 없으며
어디를 놀러나가자고 먼저 제안할 수도 없다.
그냥 발이 꽁꽁 묶인 채로 H가 가고싶은 곳에, 가고 싶은 때에
나도 가고싶었던 듯 따라나서는 것만이 내가 할수 있는 전부이다.
일상에서 주도권이 없다는 것이 이처럼 사람을 의욕없이, 우울하고 비참하게 만들수 있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뿐이다.
다른 무엇이었더라면
내가 못하는 만큼 내가 노력을 하고 부딪혀보고 연습을 해서 실력을 늘여 나가는 나인데,
운전이라는 것은,
정말로 연습을 하고 싶지 않고 혼자서는 도저히 용기가 나지않아 자꾸 숨게되고 피하게 되는 그런 것이다. 나에게는.
운전이라는 것은 그냥 내가 가고싶은 곳으로 가기 위한 수단이고 과정일뿐인데
나는 내가 운전하는 자체만으로도 생명의 위협이 되는 것 같고
주변의 차들이 나에게 달려 드는 것같은 공포감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도 이날의 경험은
운전이 왜 멘탈싸움이라고 하는건지를 제대로 느끼게 해준 "사건"이었다.
애초 운전대 앉기전부터 두려움과 겁에 잔뜩 눌려버렸으니, 운전이 될 턱이 없었다.
자신감없음과 용기없음이 얼마나 생각과 행동을 제약하는것인지
정신력이라는게 왜 중요한것인지를 크게 느껴버린 날이었다.
그토록 꿈꾸던 샌디에고의 삶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없는 삶으로, 그런 기억으로만 남게 되는것일까.
이 상황은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극복되어질까.
이 두려움을 극복해야만 하는데.
샌디에고에서의 내 삶의 주도권을 내가 가져야하는데.
그래야 이곳에서의 1년을 아쉬움과 후회가 아닌
도전과 극복과 결실로 뿌듯하게 남길수 있을텐데.
아직은 알수없는 나의 1년,
결과로 나아가는 그 길을
찬찬히 기록해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