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주고 산 샌디에고의 날씨

나를 배워가는 시간은 덤

by 한눈팔기

3그동안 2박 3일, 동료들과 함께 la 여행도 다녀오고 바쁘게 지냈다.

운전도 점점 익숙해져서 이제는

로컬도로보다 고속도로가 운전하기 쉽구나 라고 때로 생각할정도다.

LA까지 사용한 렌터카 반납을 위해 렌터카 운전을 담당한 동료를 태우느라

그동안 꿈도 꿔보지 못한 밤길 운전도 한번 해보았다.

샌디에고는 도로에 가로등이 많지 않아서 오후 6시만 되면 우리나라 산골마을처럼 깜깜하다.

그래서 지금까지 항상 6시 이후에는 집에 있었는데 단한번의 밤길 운전을 하고나니

다음번에도 또 할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과 자신이 아주 조금 생겼다.

밤길운전이 두려워

밤 7시 반에 한인 대상 테니스 무료레슨이 있다는 정보를 알면서도 그동안 가지 못했는데, 다음주에 큰마음 먹고 첫 도전을 해볼까 한다.

2달간, 정말 장족의 발전을 한것 같다.

앞으로도 부디, 무탈하게 운전을 할 수 있길 빌고 또 빌어본다.


모두가 알다시피 샌디에고는 날씨가 정말 좋다.

집 렌트비와 물가가 비싼 샌디에고로 1년간 유학을 하러 간다고 했을때

샌디에고에서 살다온 어떤 분이 나에게 말했었다.

"샌디에고에서 사는건, 돈을 주고 날씨를 사는거지. 근데 그만큼 값어치 있어. 하나도 후회되지 않는다."

요즘 정말 실감한다.

원래 좋던 날씨가 최근들어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늘 봄인것 같은 이 곳에 더더욱이나 봄같은 날씨가 찾아오고 있는 것 같다.

찌를듯한 땡볕에서도

옷을 살랑살랑 훑고 가는 기분 좋은 시원한 바람,

공기는 상쾌하고

간간이 실려오는 나무냄새 풀냄새는, 있는 힘껏 공기를 들이마시게 만들고도

아쉬워 다시한번 있는 힘껏 숨을 들이 마시게 한다.


오늘은 혼자서 "샌 엘리요 라군 앤드 이코라지컬 보호지역(San Elijo Lagoon and Ecological Reserve)"을 하이킹 하고 왔다. 총 1시간 20분간을 걸었다.

챗 지피티가 알려준 이곳 라군에 대한 설명,


San Elijo Lagoon and Ecological Reserve는
샌디에고 북부 해안에 위치한 대규모 해안 습지 보호구역으로,
바다와 민물이 만나는 생태계가 잘 보존된 자연 공간이다.

카디프(Cardiff)와 솔라나 비치(Solana Beach) 사이에 자리 잡고 있으며,
평탄한 트레일을 따라 라군, 염습지, 철새 서식지를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다.
아침이나 해질 무렵에는 조용한 산책과 자연 관찰에 특히 적합하고,
도심과 가까우면서도 자연의 고요함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 라군 지역은 지난번에 동료들과 한번 다녀온 곳이다.

그날 샌디에고에 온 뒤로 가장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냈었다.

언젠가 혼자서 이른 아침 와보리라 마음먹었었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었다.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로컬로 들어가면 바로 나오는 곳이어서 20분이면 도착했어야 하는데로컬로 나오자마자 길을 잘못 들어 다시 또 고속도로로 진출해버리는 바람에 40분이나 걸려 주차장에 도착하니 기운이 빠져버렸다.

그렇지만 출발은 역시 씩씩하게 걸어야만 한다.


샌디에고에서는 보기 드물게 우거진 나무가 많아 여기에 오면 정말 온갖 종류의 새소리를 다 들을 수 있다.

엄청 거대한 음향 장비를 메고 걷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인상적이었다.

경치가 아름답고 습지에서 평화롭게 거니는 철새들이 많은 곳이다보니,

대포카메라를 들고 망원경을 저마다 목에 건 어르신들이 많았다. 평일 아침이라 더욱 그랬나보다.

어르신들은 무거운 장비를 메고 걸으면서도 얼굴에는 미소가 함박이다.

은퇴 후 즐기는 취미가 이토록 아름다운 것이라니.

그러고 보니, 요즘 미국에서는 젠지들 사이에서 탐조(새 관찰)가 유행이라고 한다. 찾아보니 우리나라 역시 같은 유행이 불고 있단다. 예전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나 갖는 취미였는데 말이다.

젠지에게 탐조는 ‘노력 대비 만족도가 높고, 경쟁이 없고, 자연스럽게 멋있어 보이는’ 취미로 자리매김했단다. 그러고보니 물멍, 불멍만큼이나 매력적인 건 "새멍"이 아닐까 싶다.

물이나 불과 달리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그 모습 자체를 쫓다보면 멍해졌다가도 다시 정신이 들고 다시 멍해질 수 있기 때문에 "멍"의 퀄리티가 조금은 다를것 같다.

나도 갑자기 멋있어보이기 위해 탐조를 취미로 삼아볼까 싶다. 다음에 샌디에고 중고단톡방에 망원경이 나오면 하나 살까보다.

물위에 점점이 떠있는게 바로 철새다.


서늘하면서도 따뜻한 공기와 바람.

자연 속에서 걷는 기분.

서울에 두고 온 남자친구가 생각난다.

샌디에고에 온 뒤로, 자주 남자친구 생각을 하기야 하지만

이렇게 좋은 곳에 와서 "아, 오빠랑 함께 이 길을 걷고 있다면 너무 좋겠다"

라고 생각한건 오늘이 처음인 것 같아서 순간 죄책감이 들었다.

오빠랑 손을 잡고 이 숲을 걷는다면, 물위를 떠다니는 청둥오리로 보이는 새들을 보며

깔깔거리며 장난을 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름다운 곳에서,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떠올릴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복받은 일인가.

그렇게 한 없이 걷다가 나는 나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는 도시와 쇼핑을 좋아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연 속에 있을때 정말 큰 만족을 느끼는 사람이다.

풀냄새와 허브향, 이름모를 꽃이 내뿜는 향기를 맡을 때 소름이 돋는 사람이다.

노란색, 보라색, 진분홍색, 꽃이 발하는 색감 자체에 감탄하며 신기해하는 사람이다.

나무의 푸릇푸릇함, 습지의 잔잔한 윤슬, 이리저리 뻗어나가는 나뭇가지의 모양.

어느것 하나 허투로 보지 않는 사람이다.

걷다가 발견하는 도마뱀을 신기해하며 들여다보고 동영상을 찍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앞세워 데리고 가는 북슬북슬 개들을 보면 웃음이 나는 사람이다.

잔디밭 멀리서 깡총깡총 뛰는 토끼를 놓치지 않고 발견해내는 사람이다.

아름다운 경치 사진을 찍을때면 프레임 안에 조그마한 사람 한명을 함께 가두어야 더 아름답구나

라는걸 새롭게 깨달은 사람이다.

이만큼이나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다.

이 나이가 되어서도 감수성을 잘 보존하고 가꾸어서 이만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내가 무엇에도 쉽게 탄복하고 놀라워하는게 좋다.

마음놓고 놀라워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렇게 경외감 가득한 곳에는 혼자 있는 것이 좋다.

시간을 오래 들여 내 소름돋는 순간들을 생생히 느끼기 위해서 그렇다.


벤치에 써있는 글귀, 떠난 가족을 그리며 새겨놓았나보다

정말 감사했다.

하늘과 날씨 숲과 풀과 나무, 작은 동물들,

이 모든 것이 만들어낸 놀라울만큼 아름다운 이 순간, 이 곳에 있음을,

자연이 인간에게 내주는 이런 경이로운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있음을,

그 기회를 건강한 몸으로 잘 활용하고 있음에

너무나도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