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고에서 명상하기

명상 뒤에 찾아온 시련. 결국 극복해내기

by 한눈팔기

지난주 일요일에 나는 명상체험을 다녀왔다.

미국에 와서 "meet up"이라는 어플을 통해서 소소한 모임을 나가보고 있는데 -지금 찾아보니 한국에서도 사용되는 플랫폼이라고 한다.- 우리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명상 체험을 할 수 있는 모임이 있어서 얼른 참석 신청을 눌렀다.

샌디에고에 온 뒤로 영적으로 성숙해져야 하기 때문인지 자꾸 명상, 사운드배스, 요가같은 것에 관심이 간다.(하지만 한국에서도 약간 관심은 있었다.)


명상센터 Satsanga House로 가는길은 완전 시골길이었다.

구불구불 조용한 길이 한 차선으로만 이어져 있었는데, 운전이 서투른 내가 천천히 가야해서 뒷차에게 너무나 미안했고,

도착해서 그리 넓지 않은 gate를 통과하여 주차를 하는것도 진땀을 뺐다.

내가 도착하기 바로 직전에 도착하신 우아한 할머니가 도와주셔서 간신히 주차를 마무리했다.

명상센터 안은 정말 고요했고 아름다웠다.

바람이 잔잔하게 불고, 그 바람에 나무끝에 달린 풍경이 짤랑이는 곳.

새소리가 멈추지 않았는데, 꺠끗하고 맑은 새소리는 한국에서 듣던 새소리와는 또 다르다.

하늘은 맑고 파랗고, 명상센터 안에는 세계각국에서 공수해온듯한 불상, 영적인 느낌을 물씬 풍기는 장식품들로 가득했다.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분위기에 압도되어 명상센터 안의 사진은 차마 찍지 못했다.

명상센터 앞에 부처님이 나를 맞이해주셨다.


명상지도자이자 센터의 주인인 Meggie와 노부부, 중년의 멕시칸계 여성, 주차를 도와주신 할머니와 나까지 총 6명이 함께한 모임은 2시간동안 진행되었다.

처음 30분간은 명상 시간이었다.

눈을 감고 의자에 정자세로 앉아있으려니 졸음이 몰려와서 아주 살짝 헤드뱅잉을 했다.

Meggie는 "명상은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게 아니다. 스스로 드는 생각을 끊어낼수는 없다, 무심결에 드는 생각들을 가만히 바라보는게 중요하다"고 얘기해주었다.

30분의 시간 뒤에 조그만 싱잉볼을 두드려 평온한 소리를 만든뒤 각자 자기 소개를 하고, 여기에 온 이유를 설명하면 되었다.

솔솔부는 바람에 짤랑이는 풍경소리, 아름다웠고 새소리는 기가 막혔고..

Meggie는 google 소개사진에서 보았을때도 뭔가 비범해보였는데, 나를 바라보는 눈빛도 나를 관통하듯 꿰뚫는것 같아서 흠칫흠칫했다.

딸이 어린 시절 아파서 배운 meditation을 이렇게

영적으로 발전시켜온거라고 한다.

코로나 때에는 동남아 지역의 스님도 불러와서 여기서 특별한 의식도 했었다고 한다.

명상을 하러 온 다른 어르신들과 음료와 쿠키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샌디에고 해변의 아름다움, 명상의 중요성, 할머니들이 얘기하는 전남편과 40년간 친구로 지내는 법, 각자의 가족 이야기 등등 이야기를 나누고- Meggie가 직접 수확하는 꿀도 한병 사왔다.

맛있는 쿠키와 음료도 무료로 주셨다. 하지만 donation은 했다.

Meggie는 세도나에 에어비앤비 숙소를 운영하게된것을 인생 최고의 결정이라고 말하며 세도나 본인의 집사진을 보여줬는데 너무나도 아름다우면서도 비싼(4박에 1100만원) 숙소의 사진을 보니...진짜 너무 가보고싶었다. 그냥 수수한 할머니로 보이는 Meggie였는데 실은 엄청난 부자이신가보다.. 후덜덜.

세도나 지역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성스럽게 지키던 땅으로 알려져서 명상이나 영적 체험을 하러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많다고 한다.


그렇게 명상을 잘하고 경건하게 집에 돌아와 건조기에 돌려놓은 이불을 본순간 경악했다.

통돌이 세탁기에 돌아가느라 동글동글 꽈배기처럼 말려져 보자기가 돼있는 내 이불.

이불이 똬리틀듯 밧줄처럼 돌돌 감겨 있는줄도 모르고 보자기째로 건조기에 던져 넣고 명상하러 갔다온건데,

세탁망에 넣고 돌렸어야 했구나 뒤늦은 후회를 했다.

땀흘 비오듯 흘리며 똬리튼 이불을 펼치기위해 사투를 벌였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안풀리는건 처음이었다.

팔과 손가락, 다리와 복근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데도 기를 쓰고 풀겠다고 힘을 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30분, ..1시간... 1시간 반... 그럼에도 처음이랑 다를 바 없는 내 이불..

처음엔 있는대로 힘을 줘서 보자기 속 안으로 밧줄처럼 말려들어간 부분을 빼내려고 애썼는데, 절대 꺼내지지가 않았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뒤에야 힘을 풀고 슬슬 반대방향으로 돌리면 풀어지는걸 깨닫게됐고

아, 이제 좀 풀리는구나 싶어 힘을 내보았다. 그런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다지 풀린게 없이 나만 혼자 끙끙내고 있었구나 싶어 좌절했다. 또아리는 아주 견고하고도 단단하게 말려져있었다. 수천번, 수만번의 통돌이가 만들어낸 강력한 똬리. ㅠㅠ

나는 정말 이 아끼는 이불을 그만 내다버려야 하는건가 생각하며 괴로워했다..


고양이를 키운지 2년째 된 날(지금으로부터 8-9년 전) 나에게 갑자기 찾아온 고양이 알러지때문에 잠자리에 들때마다 온몸이 간지러웠던 나는 도저히 참지못한 어느 주말 오후 느닷없이 집앞 "이브자리"에 가서 알러지케어 이불을 달라했고

당시 너무나도 절박한 마음에 26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겁도 없이 사가지고 왔던 이불이었다.

(당시 이브자리 사장님이 이 이불이 광고에서 김태희가 덮는 이불이라며 영업하셨던 기억이 난다...)

한시간 반, 노력의 결과, 위의 사진과 별다를바 없어보인다..

지금 막 명상을 하고 온 내게 인생이 던져 준 시련...땀이 비오듯 쏟아지고, 욕이 목구멍 앞까지 차올랐다.

이렇게 어리석은 일을 2시간째 하고 있는 나에 대한 자괴감과

갑자기 세상 모든일들이 이렇게 어렵고 막막하다면 어떡하나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이 나를 엄습했다.

챗 GPT한테 이 상황에 대해 상담을 신청한 것은 1시간 반 동안 애를 쓴 뒤였는데, 챗 GPT는 내가 하듯이 풀어내려 하면 절대 풀리지 않을테니 무조건 물에 담궈서 이불에 물을 먹여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오늘 당장 덮고 자야 하는 이불이기에 그럴수는 없었다.

더구나 샌디에고는 전기세가 매우 비싸기에 절전시간대에만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리고 있다.

주말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가 절전 시간대인데, 이때는 이미 오후 4시를 넘어선 시간이었다.

2시간 정도 똬리를 풀어낸 결과, 이불이 조금 느슨해진 틈을 타 악다구니를 쓰며 안에서부터 말려들어간 이불을 끄집어 내어 반대방향에서 탁탁 털어보았다. 그제서야 펴졌다. 정확히 2시간만이다.

손아구가 얼얼하니 감각이 없었고, 팔뚝에는 울끈불끈 근육이 솟아올라있었다.

내 인생 최고의 바보같은 짓을 한 기분이고, 정말 2시간만에 명상을 하지 않았던 마음상태, 아니 그보다도 못한 상태로 돌아간것이 어이없기도 하고.

아무런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내 하루의 마지막을 통째로 집어삼킨 통돌이 세탁기...

또아리 속으로 이불이 견고히 말려들어갔기에 제대로 건조되지 않아 덮을수 없는 상태였기에

30분간 거실에서 대충 펴말린뒤 그대로 뻗어서 잠들어 버렸다.

샌디에고에서 나를 제일로 고생시킨건 운전,

그다음은 너다 너, 이불아!

이보다 더한 고생은 앞으로 없길. 이불아 네가 확 펼쳐졌으니 내게 앞으로 어떤 고생이 올려치면, 네가 잘 막아줘!!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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