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것 (2) 젊음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것'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어폐가 있겠다.
'이미 잃어버린 것' 쯤으로 해두는 게 좋겠다.
하지만 시리즈물처럼 이어가기 위해, '미처 준비하지 못한 것'으로 두기로 한다.
샌디에고에 도착한뒤
42년동안 알고 지내온 나라는 사람이 참 많이 낯설게 느껴진다.
그동안 알고 지내왔던 내가 지금 이사람이 맞나?
그렇게 느끼게 된 이유를 하나씩 따져가보련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던가.
파랗게 맑은 하늘에 떠 있는 토끼모양, 강아지 모양 구름을 찾으며 신기해하던 사람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맡아지는 흙냄새 속에서 이슬냄새를 발견하면 반가워하던 사람이었다.
나무들의 모양이 제각각인 것이 기특하고,
꽃이나 잎사귀를 자세히 들여다보다 보면 이처럼 좌우가 정확히 대칭으로 생길 수 있을까 감탄하던 사람이었다.
여행지에서는 처음보는 낯선 광경들을 보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환호를 지르고
이국적이고 독특한 장면들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내 입가에는 멈추지 않는 웃음이 가득했었다.
여행지에서는 걷는 걸음걸음은 사뿐사뿐이었고
깡총깡총 뛸것같은 두발을 간신히 지지하기 위해 애를 써야 했던 사람이었다. 내가.
그런 내가 샌디에고로 출발한 날과 도착한 날을 되짚어본다.
1년을 살러 오며 준비할 것들도 많은데 일은 제대로 안풀리고
신경쓰느라 머리는 다 하얗게 세버릴 지경이었었지.
이짐 저짐 다 짊어지고 오느라 녹초가 되기도 했고.
그날은 종일 울상이었던걸로 기억한다. 웃음이 전혀 나지 않았다.
이틀째 되는 날이었던가, 그날은 잠에 들기 직전, 정녕 펑펑 울고야 말았다.
왜 이런 낯선 곳에서 낯선 형태의 침대 위에서 낯선 기분을 느끼며
내 품안에 쏙들어오던 고양이가 없는 이 낯선 감촉으로 잠을 자야만 하는가.
나는 감당할수 없어 42세의 나이를 잊은 채 12세때 그랬던 것처럼 엉엉 울어버렸었다.
며칠이 지나 간신히 맑아진 하늘을 보며
기운을 차려 밖을 나섰을때,
그때 느꼈던 감정은,
놀라울만치 무감각 그 자체였다.
아무런 기분이,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
이 공원에서 이토록 멋지게 가지를 뻗대고 서있는 나무를 보면서
나는 터질것 같은 감정의 동요를 겪지 못했다.
아, 아름답고 평화롭구나,
그걸로 끝이었다.
내 자신이 당황스러웠다.
왜 더 큰, 더 강렬한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이 광경을 보면 온몸에 가시처럼 돋아나는 소름을 달고
눈이 멀것같은 순간이 올때까지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어야 했을 나인데.
그저 한순간 카메라 버튼을 누른 것이 다였다.
나는 나 자신에게 실망했다.
이 곳에 와서 사는동안 나는, 넘칠듯한 기쁨과 복에 겨운 감정을 수시로 느낄 것으로 기대했었는데.
나의 감정을 관장하는 어느 기관이 지금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
왜일까.
지난날들, 감정을 너무 과하게 느끼며 쓰며 살아온 탓일까,
예민하게 벼려져 있던 내 감정은,
나이가 들며 어떤 무엇도 쉬이 자극하지 못할만큼 두툼하고 밋밋해져 버린 것일까.
또는 나와 함께 지내는 조금은 무뚝뚝한 사람 앞에서 내 감정과 흥을 억제하고 제어하며 지내고 있을 뿐일까.
지금의 나는 여행을 겪고 있는게 아니라 일상을 살고 있다보니, 이 모든 것들이 특별함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일까.
어찌되었든. 감정의 폭이 쪼그라들었다는 것이 이토록 삶을 지루하게 만들 줄이야.
흥이 나지 않았다.
이토록 좋은 곳에 와 있는게 나인데, 행복하다,
라는 벅찬 감정이 나에게 찾아와주지 않았다.
그러던 나의 눈을 순간, 반짝이게 만들었던 순간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맥주이다.
나는 맥주를 좋아한다.
술을 사랑한다.
샌디에고에 와서 이래도 흥 저래도 흥
느릿느릿 뉘엿뉘엿 걸으며 눈을 게슴츠레 뜨고 다니던 내가,
드디어 눈을 번뜩였던 순간이 있었으니 바로 진귀한 맥주를 발견했을 때였다.
미국에 가면, 한국에서 구할 수 없어 대기를 해가며 구해야 했던 맥주들을 수시로 사다 마시리라,
라고 생각했던 나였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느끼지 못했던 도파민이 내 속에서 드디어, 폭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맥주를 사가지고 공원을 가보기로 마음 먹었더랬다.
한적하고 평화롭구나, 라고 생각했던 그 공원으로.
역시 효과가 있었다.
하늘빛은 더욱더 찬란하게 공원잔디위에 내려앉았고
나무들은 더 곱게곱게 가지를 뻗어 아름다운 무용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렇다.
아름다움 그 자체만으로 감격을 느낄 줄 알았던 내 젊음은 사라졌다.
여행지에서 막 찍어도(물론 보정 카메라로 말이다) 제법 맘에 들게 나오던 내 모습을
이제는 찍고 싶지 않게 되어버린 것도,
그래서 이제 갤러리 안에 내 사진은
수 분간의 스크롤 다운으로만 만날 수 있게 되어버린 것도,
사라져가는 젊음 탓이다.
도로위의 내 차와 그 속의 나를 두려워하며 운전대 위에
발발 떨리는 손을 올려두고 있는, 용기 없는 내 모습을 견뎌야 하는 것도
어쩌면 같은 이유일게다.
여기와서 겪는 가장 강렬한 감정, 두려움과 공포,
이 두가지를 절절히 느끼게 해주는 것 또한 같은 이유일테지.
너무 많은 것들을 알아버려 무서운것만 많아진건 다 나이탓이니까.
1년 전이었다면, 2년 전이었다면,
자꾸자꾸 되묻게 되는 날들 속에서 지내고 있다.
이건 여행이 아니고 일상이야. 그래서 그런것뿐이야.
그렇게 나를 달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격과 환희가 사라져가고 있는 내 안의 변화를 다시 되돌리고 싶다.
전혀 흔적조차 남지 않을만큼 모두 없어져 버리기 전에
불씨를 깨워 다시 살려내고 싶다.
선명히 살아 있는 채로 살고 싶어서.
환하게 느끼며 살고 싶어서.
그 감정들이 주는 강렬한 체험들을 다시 겪고 싶어서.
오늘도 느껴지지 않는 느낌들, 자꾸만 희미해져가는 감정들이 마냥, 못내, 아쉽고 또 그립다.
그럼에도 계속 써내려갈테다.
감정이 없는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할테다.
무미건조함 속에서도 무엇인가는 건져질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