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까지 살아온 경력이라고는 해군에서 36년을 근무한 것이 전부인 내가 도전을 시작한 것은 퇴직 후 5개월이 지난 2020년 12월 1일부터였다. 퇴직 후 바로 시작하지 못한 이유는 지병을 앓고 계셨던 어머니의 간병과 소천하신 후 마무리, 그리고 마음적 준비 때문이었다. 첫 시작은 내일 배움 카드를 이용한 전기내선공사 3개월 과정이었다. 처음에는 간단한 전기일을 직접 해볼 요량으로 시작했었는데, 과정 자체가 전기기능사 자격을 취득할 수도 있게 되어있어 전기기능사 자격 취득이 추가되었다.
전기내선공사 과정은 3개월의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흥미로웠다. 사실 해군사관학교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었지만 실무적인 측면에서는 젬병이어서, 더욱 호기심을 가지고 집중했었던 것 같다. 필기시험이 과정 중간쯤에 있었는데 어렵지 않게 통과했고, 문제는 실기시험인데 실제로 배선, 배관을 직접 하는 것이라 쉬운 과정을 아니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나의 숨겨져 있던 소질을 발견했다. 젊은이들 속에서도 속도와 정확성 측면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것은 강사의 평가를 통해서 매번 증명되었다. 실제로 전기기능사 실기시험에서 시험시간의 반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남들이 한창 낑낑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유유히 시험장을 걸어 나왔고, 그리고 합격 통지를 받을 수 있었다. 실기시험 감독을 하시는 분이 남들보다 너무 빠르고 보시기에 괜찮았는지 하는 도중에 다가와서 "무슨 일을 하시다 오셨어요?"하고 질문을 할 정도였다. 하여튼 나 스스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소질을 발견하고 "유레카"를 외쳤다. 이미 결심하고 시작하였던 전기기사 취득과정에서 훨씬 자신감을 가지고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전기기사 과정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전기공학 전공자라는 게 무색할 정도로 문외한인 분야가 너무 많아서 새로 시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학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독서실을 끊어놓고 잠자는 시간과 학원수강 시간을 제외하고는 그곳에 앉아 있었다. 목표는 첫 시험에 필기시험 합격하고 실기시험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1차 필기시험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학원수업 종료할 무렵에 시험을 치르게 되어 있어 공부할 시간이 충분치 못해서였다. 심기일전하여 더 각성하고 노력한 덕에 2차에는 합격할 수 있었다. 곧바로 실기시험 준비를 시작했는데, 실기시험은 난이도가 예상을 뛰어넘었다. 범위는 한정할 수 없을 정도로 광범위해서 선택과 집중을 효율적으로 하지 않으면 공부의 효과를 달성할 수 없었다. 필기시험과 마찬가지로 수업이 끝나고 얼마 내공이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치른 시험이라 1차 시험에서 불합격했다. 그동안 공부했던 독서실을 나와서 평생교육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독서실은 사용료가 많기도 하였지만 폐쇄된 공간에서 공기 순환이 안되어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였다. 평생교육원은 사용료가 무료이고 또 3층에 위치해 있어 환기가 잘 되어서 훨씬 좋았다. 다음 시험이 다음 해 봄에 있기 때문에 5개월여 시간의 장기전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하여튼 2차에서는 무조건 합격하고 취업한다는 생각으로 계획적으로 공부에 집중하였다. 거의 동계합숙훈련을 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공부에 매달렸다. 덕분에 2차 시험에는 전기기사, 전기산업기사 모두 합격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따지고 보면 전기기능사 공부를 시작하고 1년 반 만에 목표를 달성한 것이었다.
내가 목표했던 시험은 합격하였으나, 막상 취업을 하려니 실무경력이 전무해서 막연한 두려움이 앞섰다. 그래서 속성으로 실무를 숙달시킬 수 있는 곳을 찾게 되었고, 거금을 들여 논산까지 가서 3일 간 합숙훈련을 받았다. 그래도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고 더 교육받을 곳을 물색하였으나 마땅치 않았고 그렇게 2개월을 허둥대며 보냈다. 드디어 2022년 10월 1일부터 현재의 근무지에서 기전주임이라는 보직으로 전기 관련 일을 시작하였다. 학동역 근처의 15층짜리 오피스텔이고, 우리 집에서는 이동시간이 5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아파트도 오라는 데가 있었지만, 전기기능사 실기 때 강사분의 조언을 따라 오피스텔로 첫 근무지를 정했다. 이유는 나이 들어 첫 근무지를 너무 힘든 데로 택하면 중간에 포기하기 쉽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조언대로 따랐던 것이 주효했다는 생각이 든다. 세 달이 지난 지금도 꿋꿋하게 버티고 있으니까 말이다.
살아온 행적과 다른 길을 걸어보겠다고 내디딘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올비올비......, 현역 시절 연합연습 시 B1 벙커 생각이 난다. 24시간 근무하고 다음날 24시간 쉬는 패턴이다. 그렇지만 여기는 밤을 새지는 않고 6시간의 수면 시간이 보장된다. ‘하수는 겁이 없고, 고수는 핑계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나는 철저하게 하수다. 그냥 겁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모르면 겁이 없이 묻고 또 묻는다. 이적의 ‘다행이다’가 생각난다. 그래도 웃으면서 대답해 줄 사람이 있으니까 다행이다.
액티브 시니어를 꿈꾸고 시작한 행보인 만큼 끝까지 가보려고 한다. 그 끝이라는 것은 아마 몸을 내 맘대로 움직일 수 없을 때일 것이다. 그러면서 이제까지 경험한 것은 물론이고 앞으로 겪게 될 이야기들을 가볍게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퇴직 후 존재의 위기로 들어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장(場)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