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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가 별 건가?

이면에 숨겨진 만족과 기쁨

by 버티기

회사에서 큰 맘을 먹었다. 하계 유급 휴가 이틀을 보내준단다. 개인 연차와는 무관하게 신청하라고 했다. 그러자 날짜 선점 경쟁이 벌어졌다. 명색이 관리자라 다 신청할 때까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고, 결국 연이어진 좋은 날은 남아있지 않았다. 휴일과 이어지지도 않은 멀리 떨어진 이틀, 서울 벗어날 계획 잡기는 어려웠다. 아내의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더 무리수 두지 않았다. 결국 아내도 그 날짜에 맞추어 연차를 신청했다.


시큰둥하게 받아 든 휴가 이틀, 별다른 고마움도 감동도 없는 천덕꾸러기 같았다. 휴가 첫날, 계획이 없던 터라 게으름 부리며 오후가 될 때까지 흘려보냈다. 갑자기 아내가 분주히 움직이더니 밖으로 나가자고 한다. 더운데 어딜 나가냐고 투덜거렸지만, 결국 따라나설 수밖에 없었다. 집을 나서면서 본 시계는 세 시를 넘어서고 있었고, 행선지가 과천 대공원인 것은 지하철 타고 나서야 알았다. 산림욕장 둘레길은 여러 번 갔던 터라 응당 거기인 줄로만 짐작했다.


아내가 날 이끈 곳은 호숫가 쉼터였다. 휴일만 다녀가서 늘 북적거리는 모습만 봐서인지, 한적한 적막함은 낯설었다. 자리를 깔고 앉아 점심인지 저녁인지 정체가 불분명한 식사를 시작했다. 촘촘한 나뭇잎 사이로 간간이 다가오는 산들바람, 호숫가에 노닐다 자리바꿈 하려 날아드는 왜가리들, 물에 닿을 듯 편안하게 늘어진 나뭇가지. 눈에 들어오는 정경을 보며, 문득 떠오른 단어는 힐링(Healing)이었다. 분주히 오가던 스카이 리프트가 멈추고 가로등이 불을 밝힐 때가 되어서야 자리를 떴다. 깨알 같지만 소중한 대화, 자연 속에서 듣는 음악의 선율, 모든 걸 내려놓은 편안함의 늪. 어느 것도 가벼이 여길 수 없는 꽉 찬 시간이었다.


일주일 후 다가온 두 번째 휴가일, 우리는 계획이 있었다. 먼저 아내의 버킷리스트, 한강의 평상에서 맞는 시원한 강바람이었다. 두 번째는 소문난 매운탕 맛집 투어였다. 첫 번째 휴가일에서 느낀 참 맛 덕에 급조한 계획이지만, 힐링과 서로에 대한 배려가 녹아 있었다. 평일 이른 아침 출근 준비에서 해방된 아내의 기침을 기다렸다가, 늦은 아침식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커다란 짐도 장거리의 피곤한 운전도 없이 홀가분하게 떠나는 휴가였다.


한강 평상은 사람이 뜸한 서강대교 밑을 택했다. 이전에 산책을 하면서 눈독 들여놓은 자리였다. 다행히 자리는 비어 있어, 냉큼 피크닉 매트를 깔고 앉았다. 강바람은 호숫가 바람과 달랐다. 가두어진 갑갑함이 남아있는 호숫가 바람에 비해, 흐르는 물에 후텁함을 실어 보내는 강바람이 훨씬 시원했다. 챙겨간 군것질 거리를 먹으면서 새삼 정겨운 이야기도 나누고, 감미로운 음악 들으며 웅장하게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그러다 응달을 찾아 산책도 했다. 해가 기울어 볕이 노을로 잦아들 무렵, 주섬주섬 챙겨 일어났다.


차를 두 번 갈아타고 찾아간 매운탕 집은 고즈넉한 곳에 있었다. 아내가 귀동냥으로 듣고는, 나를 위해 언젠가는 가보기로 벼르던 곳이라고 했다. 어릴 적 천렵을 따라가 먹었던 민물고기 매운탕 맛을 잊지 못해, 노래 불렀던 효과를 본 것이다. 늦은 저녁시간이라 붐비지 않았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이 맛집의 정수를 즐기고 있었다. 어렵게 찾아간 만큼, 맛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는 않았다. 이렇게 이틀 간의 휴가는 아내의 배려로 마무리되었다.


왠지 떨떠름한 기분으로 받은 휴가 이틀! 고전소설 결말처럼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한마디로 소확행의 전형이었다. 휴가는 임팩트가 있고 거창해야 한다는 강박을 깬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엄밀히 말하면 휴가는 충전의 시간이 되어야 하고, 지쳐있는 심신을 회복할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재충전이 핵심이다. 휴가 후에 오히려 피곤함과 후유증이 크다면, 애초에 계획이 잘 못 짜인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가 보낸 이틀의 기간은 바로 휴가의 참모습이었다.


작년 초까지 만 해도 행복한 상태의 실체를 몰랐다. 늘 부족하고 아쉬운 것들만 떠올려지면서, 자책감과 강박에 시달렸다. 무언가 채워야 한다는 조급함에 쫓기는 마음이 되어 살았던 것 같다. 이어진 시간이 길지 않아 쓸모없게 만 여겼던 이틀은, 지루한 한 주를 짧게 느껴지게 만드는 이면의 만족과 기쁨도 숨어 있었다. 행복감은 느낌이다. 이제 큰 욕심 없이 평안한 일상에 기뻐하자는 생각이 든다. 모든 일을 다른 방향에서도 쳐다보면서, 소소한 행복 챙겨 넣기를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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