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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티기 Apr 09. 2023

배려 없는 관심은 갈등의 출발점

인천 송도 회사 근처에 있던 큰아들이 서울 금천으로 이사를 왔다.

출퇴근 거리가 가까운 곳에서 오히려 먼 곳으로 이사를 온 것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전에 있던 집이 낡았다는 것이었는데, 아마도 서울에 있는 여자 친구를 만나기가 수월한 점이 고려된 듯하다.

어쨌든 혼자서 이사하느라 수고했다는 의미에서 작은아들까지 불러 모처럼 가족 식사를 했다.

식사 자리에서 큰아들이 직장에서 불편한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자신보다 회사에 늦게 입사한 사람이 나이가 두 살 많은 데다가, 업무 관련 파워불로거임을 내세워 사소한 간섭을 하는 것이 너무 싫다는 것이다.

나는 상황 자체를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아들 세대 직장 문화에 대해서 특별히 조언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답답했다.

내가 군(軍)에서만 있었기도 하고, MZ세대의 이해가 부족한 한계를 넘어 “라떼는 말이야~”라고 훈수 들고 싶지도 않았었다.     


나는 30년 넘게 군(軍) 생활을 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지냈다.

하지만, 유독 두 명에 대해서는 지금도 씁쓸한 기억이 남아있다.

    

진해에서 결혼을 하고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목포에 있는 부대로 가게 되었다.

막내딸이었던 아내는 진해에서 장모님 도움을 더 받으면서 생활하고 싶었는데, 갑자기 목포로 간다고 하니 울고불고 난리가 아니었다.

목포 부대에서 나의 직책은 상황실장이었고, 모든 작전상황을 관리해야 하는 중요한 보직이었다.    

문제는 직속상관 선배의 성품이 포악하고 자기중심적이라는 데 있었다.

나의 전임자가 오죽했으면 직속상관을 더 보고 싶지 않아서 인계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내가 부임하는 날 바로 떠나버렸겠는가.

그런데 공교롭게도 부임하는 날 작전상황이 생겨 상황실은 전투배치가 발령되었다.

나는 현황 파악이 전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직속상관이 처리하는 것을 지켜보겠다는 요량으로 상황판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직속상관이 갑자기 주먹으로 나의 얼굴을 치면서, “상황실장이 뭐 하고 있는 거야?”하며 소리치는 것이었다.

나는 갑작스러운 충격에 중심을 잃고 쓰러졌고, 곧이어 정신이 바짝 들었다.

이렇게 부임한 첫날부터 시작된 직속상관의 포악한 행동은 같이 근무한 일 년 반 동안 계속되었지만, 나는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서 버티고 버텼다.

내가 한 사람 때문에 중도에 낙오되기는 정말 싫었기 때문이었다.

    

한 명은 잠수함에 같이 근무하였던 사람이었는데, 상식적인 기준으로 보아 맞지 않는 정말 불합리한 일들을 시켰다.

내가 보기에는 인성에 문제가 많은 전형적인 유형이었다.

결국 나의 인내심이 바닥까지 다다라서 “그런 지시에 따를 수 없다.”라고 하는 바람에, 같이 근무하는 내내 좋지 않은 관계로 지내기도 하였다.

그리고 서로 다른 근무지로 떠난 후, 우연히 관사 아파트의 옆집으로 살게 되었다.

이 사람은 이때부터 다른 것으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회식을 하고 나면 자기 집으로 가는 것이 아니고, 시간에 관계없이 꼭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는 것이다.

그리고 들어와서는 횡설수설 떠들다가 노래 몇 마디하고 자기 집으로 건너가곤 했다.

이건 부대에서 나만 스트레스받는 문제 하고는 차원이 다르게, 아내도 덩달아 항상 긴장 상태로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아내는 남편에게 해가 돌아갈까 봐 싫은 표정 한 번 짓지 않고 버텼다.     


번역가인 권남희 씨는 그의 에세이에서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좋은 관계 나쁜 관계가 있을 뿐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두 가지 유형의 사람들은 좋은 관계, 나쁜 관계 이전에 나쁜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하급자, 후배라는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함부로 해도 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지금이야 이런 유형들이 존재할 수 없는 분위기이지만, 그 당시에는 특별한 문제로 발전하지 않은 채 지나갈 수 있었다.

아들은 아래로부터, 나는 위로부터의 사람 스트레스라는 차이가 있었지만 결국 조직 내에서 사람 관계라는 면에서는 동질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결국,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

내가 그냥 참고 버텼다고 해서 아들에게도 참고만 있는 관계를 지속하라고는 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큰 아들의 푸념을 들은 이후, 많은 생각을 하면서 나름대로 조언해야 할 말들이 정리되었다.

사람관계는 당장의 자존심과 기분이 우선되기보다는, 결과적으로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큰 아들의 경우 그 사람과 자존심 싸움을 하면서 관계를 악화시키는 것보다, 장점을 보면서 전문성을 내가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하고 싶다.

그리고 조직 내에서 위만 보고 가면 아래가 안 보이고, 그렇다고 아래만 보고 가면 앞이 안 보인다.

과연 나는 위와 아래를 균형감 있게 고려하고 있는지 항상 점검해봐야 한다.

또한 나 스스로부터 ‘부당한 권위를 행사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경계심을 느슨하게 갖고 있지는 않은가.’를 뒤돌아 보고,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는 순간까지 예의를 놓지 말아야 한다.

여기까지 말하면 큰 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진지하게 들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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