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마음이고, 기꺼이 시간을 내어 함께 보낼 수 있다면 거기에 내 마음이 있다고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이제까지 해사 동기생들과 가장 친하게 지내왔는데, 허물없이 지낼 수 있는 친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퇴직 후의 정착지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마음이 있어 시간을 내고 싶어도, 거주지를 달리해서 멀어진 지리적인 거리를 극복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실제로 그런 친구들이 여럿 있지만 마음도 같이 멀어짐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두 번째는 시간이 갈수록 삶의 궤도 차이로 인한 정서적 교감이 옅어지는 것이다.
처음 군 생활을 출발할 때만 해도 거의 유사했던 정서적 교감이, 각자 택하여 지나온 궤적이 시간이 갈수록 벌어짐으로 인해 공감 영역이 점점 축소된다는 것이다.
몇몇 그런 동기생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가치관의 차이가 많이 벌어져 있음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러한 공허함을 채울 목적으로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를 시도해 보기도 했다.
그 첫 번째 시도는 자의적 시도의 경우로 전기기사 자격증 준비를 하면서 같이 공부한 세 명의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이다.
비록 나이는 차이가 났지만, 사회적인 지위를 가지고 직장생활을 하다가 퇴직한 삶의 경로가 유사하다는 점과 나이에 관계없이 새로운 도전을 시도한다는 교감이 있었기에 급격하게 친해졌다.
그중 나이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사람이 일찍 떨어져 나갔다.
둘러대는 이유는 전기기사 자격증을 포기하고 지인이 하는 사업체에서 일을 돕게 되어서 바쁘다는 것이었지만, 애초에 맺어진 자격증 취득의 동기가 사라지면서 관계 유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머지 두 명과는 현재까지 관계는 유지되고 있지만, ‘좀 더 친밀감이 깊어질 수 있겠는가?, 또는 지속성이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점에서 의문이 있다.
애초에 내가 지향하고 싶었던 두 사람과 관계의 방향은 가족들과의 관계까지도 확장해 나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관계를 애초에 맺어진 동기에 국한하려는 의도를 보이는 사람도 있고, 만나서 하는 대화의 범위도 확장성이 없다 보니 한계를 많이 느끼고 있다.
두 번째의 경우, 나의 의지보다는 타의적으로 시작된 관계로 전후 관계를 이야기하자면 조금 길 것 같다.
나는 진해 생활을 마무리하고 지금 아파트로 이사한 지도 2년 반이 넘었다.
진해로 가기 전 분양을 받았는데, 다행히 3년 임기를 마치는 때와 입주시기가 맞아서 집 때문에 곤욕 치르는 일없이 이사할 수 있었다.
새로운 아파트로 입주하고 나서 아내가 제일 좋아했다.
그동안 주로 군 관사에 거주하면서 눈치 봐야 하는 일이 많았는데, 아는 사람이 없어 마음이 푸근해졌기 때문이었다.
나와 아내는 그렇게 일 년여를 누구도 의식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으로 지냈다.
입주한 지 일 년이 지날 무렵, 우리 동 통장이 물품을 나눠준 후 개별적으로 문자를 보내주던 방식에서 일괄적 문자 송신 방식으로 바꿔버렸다.
전에 하던 대로 “수고하십니다”하고 답을 했는데, 문제는 이것이 다른 사람들과 공유되어 버린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내 전화기에 저장이 되어있지 않은 번호였는데 혹시나 해서 받은 게 문제의 시작이다.
전화를 건 사람은 내 초등학교 선배이면서, 타군이었지만 군 선배이기도 했다.
8년 전, 그 선배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내 출신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전화해서 안부 인사 통화만 하고 끊었던 기억이 났다.
그전에 통화 한 번 한 것 치고는 꽤 교류가 있었던 것처럼 긴 시간 통화를 했다.
그 선배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나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생각해서 호감을 가지고 통화했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언제 한번 보자.”라는 말이 오갔고, 만날 날짜를 약속했다.
혹시 좋은 사람이라면 인생 선배로서 조언도 듣고 때로는 친구처럼 잘 지낼 수 있다는 기대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첫인상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냥 동네 형같이 격식도 따지지 않고 몇 년 만난 사이처럼 만남이 시작되었다.
술이 한 순배 돌고 이야기가 시작되니까 거북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전기기사 공부를 하고 있었기에 술은 부담스러웠는데 막무가내로 권하기 시작했고, 자신의 이야기만 하고 내 이야기는 할 틈이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는 당구를 치자고 해서 밤늦게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이후에도 일방적으로 연락이 와서 두 번 더 만남을 가졌는데, 첫 번째 만남과 패턴은 변함이 없었고 여전히 자신의 이야기만 했다.
나와 그 사람이 생각하는 만남의 목적에 큰 괴리가 있음을 알았기에, 이제는 더 이상 만나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그 사람에게는 무료한 시간을 같이 보내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고, 나는 그럴 만큼 여유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 후로 연락이 오면 할 수 없이 통화는 하되 만남은 회피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서로 다른 동에 사는 것도 아니고 같은 동은 물론 같은 통로라 수시로 엘리베이터에서 만나기도 하면서 정말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까지도 불편한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비록 수고를 많이 하지만, 단지 업무 편의를 위해 메일을 일괄송신 해서 이 같은 불편함을 안겨준 통장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이렇듯 요즘 들어 ‘사람을 새로 사귄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고 있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면서, 정서적 교감이 불확실한 사람과의 관계에 더 이상 시간을 투자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한편으로는 오랜 친구와의 관계도 잘 유지하지 못하면서 새로운 사람과의 관계를 욕심내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가 경험한 사람과의 관계 경험이 축적되어 있어, 어느 정도 갖춰진 선별 능력에 의해 기준에 맞지 않은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잘 열지 않게 된다.
그래서 나름대로 ‘나이 들면서 사람 관계를 돈독히 하는 방법’을 정리해 보았다.
첫 번째는 오랜 친구와의 관계 개선이다.
뭐니 뭐니 해도 옛 친구가 현실적으로 가장 접근하기가 좋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리적 거리와 정서적 교감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시도해야 하는데, 나의 견해로는 정서적 교감보다는 지리적 거리 극복이 더 용이하다는 생각이다.
아무래도 정서적 교감은 지리적 거리감보다 벽이 두꺼워서 극복하기 쉽지 않다.
지리적 거리감은 자주 연락하면서 친근함을 교감하는 것만으로도 해소가 가능해서, 대화를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필요로 할 것이다.
두 번째는 취미나 운동, 공부 등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내 경험을 통해서 보면 이 방법은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한다.
조급하게 진척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선을 지키면서 점진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대부분은 나이가 들수록 사람을 만나는데 가성비를 따지고, 급작스럽게 접근하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로 주고받는 가치의 크기가 비슷하다고 느낄 때에만 관계에 관심을 갖는다.
“누구나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말에서 마음이 느껴지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