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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티기 Jan 02. 2024

'하고 싶으면', 하기 쉬울까?

글쓰기 말고도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지금은 글쓰기 외에 딱히 하고 있는 게 없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하고 싶은 것'들을 하기 위해 꼭 '해야 할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걸러 24시간을 근무하다 보니 뭘 배운다는 것이 정말 어렵다. 2년의 의무 경력만 채우고 나면 정상적 근무 형태의 근무지로 이직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벌써 십오 개월째다. 그러니까 올해 구월 말이면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된다. 재취업하는 게 우선이겠지만, 벌써 무얼 먼저 배워야 할지 고민이 되고 있다.


내 방 한편에 기타가 케이스에 담긴 채 서있다. 벌써 삼 년째 그대로다. 진해에서 잠수함수리창장으로 근무할 때, 기타 동아리에 들어가서 배워 본 것이 전부다. 그래도 부지런히 배워서 발표회까지 했었다. 주말 낮 시간에 맥주집을 빌리고, 동아리 회원 가족들을 초청해서 그동안 닦은 실력을 평가받았다. 나는 아내와 작은 아들이 왔었는데, 독주 곡인 변진섭의 '새들처럼'을 실수 없이 연주했다. 별 기대를 하지 않았던 듯 무덤덤한 표정의 아내가 내연주를 보고 파안대소했던 기억이 새롭다. 웃지 못할 해프닝은,  연습 때 수준급의 솜씨를 보여 기대를 모았던 공장장 회원이 독주를 하면서 몇 번을 다시 하는 실수를 했다. 가족들에게 뭔가를 보여 주려는 것이 과도한 긴장을 불러온 듯했다. 난 옆에서 웃지도 못하고 안타깝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역시 연습과 실전은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례가 되었다.


방에 들어갈 때마다 기타를 쳐다보며, '이제 곧 너를 만져주마"라고 중얼거린다. 그러면서 가을에 한강변에서 버스킹 하던 중년의 모습이 떠오른다. 오랜 시간 동안 비록 상상이었지만, 버스킹은 한 번도 바뀌지 않았던 꿈이었다. 마침 서울시에서 한강공원 전역에 '버스킹 존' 22개를 조성해서 한강 곳곳에서 거리공연을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한다. 장(場)은 충분히 만들어졌는데, 문제는 버스킹 할 실력을 갖추는 것이다. 다행히 노래는 틈틈이 불러봐서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지만, 기타를 수준에 올리는 것이 관건이다. 처음 기타를 사서 코드와 스트록을 익힐 때가 생각난다.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이기 전까지 살갗을 파고드는 통증!  정말 쉽지 않았다. 이제 그 과정에 또 도전하려 한다. 이번에는 더 멀리, 더 높은 곳까지 가고 싶다. 학원 다니는 것이야 정상 근무가 시작되면 하더라도, 기타와 친해지는 시작은 가능할 것 같다. '하고 싶으면', 하기 쉽겠지?


두 번째 하고 싶은 것은 그림 그리기다. 난 초등학생 시절 소년조선일보에서 주최한 전국미술대회에서 특선으로 선발된 적이 있다. 서울 장충체육관까지 가서 메달과 상장을 받아왔다. 덕분에 가족 모두가 탄광촌 태백에서 서울까지 나들이하는 기회를 갖기도 했었다. 그날 이후, 나는 크면 화가가 되어있을 것이라는 상상을 하며 자랐다. 아버지가 지금 동양화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면 피는 이어받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상급학교로 진학을 거듭하면서 꿈은 서서히 멀어져 갔다. "너는 사관학교를 가야 한다."라는 아버지의 주입식 교육 덕이었다. 결국 사관학교를 가서 군인 인생을 살았다. 그렇지만 오늘까지도 그림에 대한 미련은 버려지지 않는다. 이젠 화가라는 거창한 꿈을 가지기에는 너무 늦어버렸고, 그냥 그림을 그리고 싶을 뿐이다.


나는 은퇴 후 혼자 있는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취미가 그림 그리기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동양화 작가인 혼자된 아버지가 친구들 보다도 정정하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생각이 굳어졌다. 아직은 가끔 사물이나 인물 소묘를 끄적거려 보는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시간을 내서 정식으로 배워보고 싶다. 배울 수 있는 시기가 되면, 우선은 소묘부터 시작해서 기본기를 다져 볼 예정이다. 그림 그리는 것을 업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취미로 삼기 위해 하는 것이니 조급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선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아내는 내가 혼자서 방안에 오래 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무엇을 해도 같이 하는 것을 좋아하니, 잘 구슬려서 같이 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겠다. '하고 싶으면', 하기 쉽겠지?


기타 연주, 그림 그리기 말고도 하고 싶은 것은 많다. 하지만 시간적인 제약도 있고 해서 이것들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을 본 적이 있는데, 등산을 하지 말라고 한다. 자세히 들어보니 등산 자체가 문제 있어서가 아니고, 등산이 단지 시간을 때우는 목적이라면 하지 말라는 것이다. 내가 하려는 취미도 그런 것 같다. 남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한다면 금방 싫증 날게 틀림없다. 취미를 통해서 자존감을 키우고 생활의 활력소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강의 '버스킹 존'에서 공연하고 있는 나, 전시회에서 작품을 설명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과정이 어려울 것이라 예상되지만 지긋이 가볼 예정이다. 나는 절대 '하고 싶으면', 하기 쉬울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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