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이 스토리텔링 Mar 20. 2022

스타벅스에서 캐러멜 라테를 마시는 노숙자

소나기 내리는 날엔 분홍 장미를

재택근무를 마치고 오는 5월부턴 사무실로 출근하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의 표준마저 완전히 바꾸어 놓은 코로나가 이젠 물러가긴 가는가 보다. 통계 숫자야 매일 들쑥날쑥 하지만 그래도 오늘 기준 미국에서 코로나에 새로 감염된 환자는 만명도 안된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해 세계 최고의 부자나라, 민주주의의 상징이었던 미국은 그 이면에 있던 부끄러운 모습을 세상에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그로 인해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 세상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모든 것의 이면에는 꼭 그만큼의 무게로 어두운 그림자 또한 공존한다는 걸 코로나를 통해 새삼 알게 된 셈이다. 한국보다 낮은 백신율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새로운 감염자가 먼저 줄어든 이유는 대책 없는 코로나 정책으로 우왕좌왕하는 사이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에 걸렸고 그렇게 해서 자연 면역을 얻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나 싶다. 


개인적으로는 처음에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시작한 재택근무는 그저 마냥 편하고 좋기만 했다. 출근 준비를 위해 일찍 일어나 부산을 떨지 않아도 되었고 또 출퇴근할 때 전철 안에서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몇 주 집에서 근무하는 자유를 만끽하다 사무실로 되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이 전염병 전파의 심각성을 책으로만 배웠던 무지에서 온 착각이었다는 걸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예상보다 길어진 코로나의 위협에 갇혀 집에서만 일하고 생활하다 보니 난파된 배에서 혼자만 살아남아 무인도에 뚝 떨어진 느낌이 들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사소한 의견 차이로 괜한 신경전을 벌이며 아웅다웅 기싸움하던 동료들도 그리웠고 출퇴근 시 타던 전철 안에서, 또 거리에서 거의 매일 마주치던 이름도 알 수 없는 이방인들이 그리웠다. 전철을 타면 ㅂ 에 근무한다며 유난히 큰 목소리로 떠들던 뚱보 아줌마가 그리웠고 전직 군인 출신이었다는 아저씨도 그리웠다. 그런데 그 누구보다도 전철역 스타벅스 앞에서 장미를 파는 노숙자 친구 ㅅ의 안부가 제일 궁금하고 보고 싶었다. 


그동안 혹 코로나로 잘못된 건 아니겠지, 출퇴근하게 되면 스타벅스에서 다시 다 같이 캐러멜 라테를 마실 수 있을까, 그동안 어떻게 지냈을까 등등. 


ㅅ을 처음 만난 건 한 10년 전쯤 직장을 바꾸었을 때였다. 새 직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전철을 타야 했는데 전철역에서 내려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면 바로 스타벅스가 있다. ㅅ은 그 스타벅스 앞에서 한 다발에 5달러짜리 장미를 팔기도 하고 어떤 땐 에스컬레이터 옆에서 찌그러진 새카만 깡통을 들고 서있기도 한다. 노숙자이니 그 외모야 좀 구차스럽긴 하지만 그는 사람들과 얘기하는 걸 즐기고 얼굴엔 늘 웃음을 잃지 않는 해맑은 사람이었다. 일을 끝내고 집으로 가기 위해 터벅터벅 전철역으로 걸어오면 스타벅스 앞에서 꽃을 팔던  ㅅ 은 늘  ‘안녕 천사, 오늘 하루는 어땠어요’ 하고 밝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가 나를 천사라고 불렀던 것은 그가 파는 장미꽃을 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어떤 날은 김연아 선수의 우아한 피겨스케이팅 이야기를 했고 또 어떤 날은 김치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와 이야기를 하고 그가 파는 장미를 한 다발 사서 가슴에 앉고 퇴근하는 날에는 하루 종일 쌓였던 피로가 사르르 풀렸다. 누구와도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는 진짜 천사가 된 듯했다. 어떤 날은 그와 수다를 떨다 전철을 놓쳐 늦게 귀가를 하기도 했는데 가족들에게 잔뜩 잔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그에게서 사 가지고 안고 온 장미꽃 한 다발을 슬그머니 내밀곤 했다. 


하루는 일을 마치고 사무실을 나왔는데 억수같이 비가 내렸다.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릴까 잠시 고민을 했다. 짙은 잿빛으로 덮인 하늘을 보니 아무래도 비는 금방 그칠 것 같지 않았다. 그냥 전철역까지 뛰기로 하고 스타벅스 앞까지 잽싸게 달려왔다. 그런데ㅅ이 팔고 있던 장미 다발들만 스타벅스 앞에 덩그러니 놓인 채 세찬 비를 맞고 있었고 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괜한 걱정에 안달이 났다. 혹시 스타벅스 직원들은 그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안전하게 소나기를 피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 물에 빠진 생쥐꼴을 하고 스타벅스로 들어갔다. 


‘안녕 천사, 나 여기 있어, 오늘 ㅁ 이 만들어준 캐러멜 라테 아주 최고야’. 
아, 저  해맑은 웃음.
그리고 순간 울컥 치밀어 오르는 스타 벅스 직원들에 대한 느꺼운 고마움과 인간적 친밀감.  


비나 오거나 눈이 내리는 궂은날에는 스타벅스 직원들이 그를 스타벅스로 초대해 그가 좋아하는 캐러멜 라테를 만들어 같이 마시는 걸 그때까지 몰랐었다. 그 이후 사무실 근처에 있는 전철역 스타벅스는 틈만 나면 함께 수다를 떠는 그와 나의 아지트가 되었다. 깡통을 들고 장미를 팔던, 스타벅스 안에서 커피를 끓이던 또 나 같은 이민자이던 평범한 한 사람으로 일상에서 겪는 고달픔과 소소한 즐거움들을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장소. 삶에 대한 우리 모두의 애환이 커피 향처럼 은은히 퍼지는 그런 장소 말이다. 다가오는 5월 전철역 스타벅스 앞에서 장미꽃 한 다발을 가슴에 안고  ‘안녕 천사, 다시 보게 되어 너무나 반가워’  할 ㅅ 의 사근한 목소리가 벌써부터 귓가에 울리고 입가엔 벙그레 웃음이 인다. 우리가 다시 만나 마실 캐러멜 라테는 또 얼마나 달콤하고 맛있을까.  


 
 

작가의 이전글 42.195 킬로미터의 명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