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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철 Jan 14. 2021

나는 왜 직장인이 되고 싶었을까 #4​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 결국 군대를 전역했다. 드디어 자유를 얻었다는 기쁨과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조금 설레었다. 군대라는 울타리에서 빠져나와 전쟁터 같은, 어쩌면 눈보라가 몰아치는 대지 위에 홀로 서있는 듯한 사회에 공식적으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군 생활하면서 차곡차곡 모아둔 자금을 조금씩 야금야금 쓰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월세가 가장 싸다는 곳, 지방에서 올라온 대부분의 대학생들, 직장인들이 처음 둥지를 튼다는 그 유명한 신림동에 나도 첫 둥지를 틀었다. 


서울에서 사는 것도 처음이고 자취방을 알아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월세의 시세를 잘 알지 못했기에 그 당시 50만 원이라는 월세의 방값이 상대적으로 비싼 것인 줄 몰랐다. 나름 역세권에 신축 건물이라 그런지 골목골목 언덕길에 있는 월세보다는 훨씬 비쌌다. 그리고 신림 방값이 싸다는 얘기도 훨씬 오래전 얘기이기도 한 것 같았다. 월세 계약을 할 때 집주인의 친절함과 해지할 때 집주인의 싸늘함은 나를 정신 차리게 했다. 


군대에서 모아놓은 자금으로 학원을 다니며 취업을 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새어나가는 자금을 알아채지 못하고 펑펑 썼다. 그렇게 한 달 한 달이 지날수록 소득 없이 소비만 하는 나의 모습을 알아채기 시작했다. 계좌잔고를 보니 파란색 글씨의 출금이라는 내역만 수두룩했다. 이대로 가다간 큰일 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세상을 너무 만만하게 보았나 보다. 철철 새어나가는 자금을 막기 위해 아르바이트라도 하면서 생활비를 벌어야겠다고 결심을 했다. 


처음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음악 관련 회사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전화 상담원을 하게 되었다. 나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고 일을 하다 보니 내가 이러려고 서울에 올라왔나 싶은 회의감이 들었다. 미처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끈기와 참을성이 부족했다기보다는 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다.


다른 아르바이트를 알아보던 중 사무보조라는 아르바이트를 보게 되었다. 사무보조라면 회사 같은 곳에서 문서작업 같은일을 보조하는 건가?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더군다나 내가 좋아하는 음악 분야의 회사라서 더욱 관심이 갔다. 망설임 없이 전화를 걸었고 바로 면접 날짜까지 잡았다. 


마침내 운이 좋게 바로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간접적으로 회사 생활을 경험할 수 있겠다는 큰 기대감과 직장인이 되고 싶었던 나의 목표를 이루는 데에 큰 경험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다. 산발적으로 울리는 전화벨 소리, 정신없이 두드리는 키보드 소리, 회의실에서 들려오는 크고 작은 목소리들, 복합기에서 토하듯 쏟아지는 인쇄물 등. 회사 사무실의 첫 풍경은 가만히 앉아 있는 나조차 정신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회사 직원들이 나를 부를 때 이름 뒤에 ~씨라는 호칭도 굉장히 오글거릴 만큼 어색했다. 그렇게 나는 사무보조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회사를 경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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