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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철 Dec 15. 2020

단축번호 0번

할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여러 번 할머니를 불렀으나 아무 말이 없으셔서 그냥 끊었다. 다시 전화를 걸었더니 잘 못 걸으셨다고 하면서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해주었다. 명절 때는 되도록이면 할머니가 계시는 고향으로 내려가려고 마음을 먹었다. 할머니는 강원도에서 혼자 살고 계신다. 어느새 80세가 넘으신 할머니는 아픈 몸을 이끌고 항상 어딘가 일을 하러 나가신다. 나를 포함한 우리 가족들이 일을 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해도 소용이 없다. 요즘에는 몸이 많이 안 좋으신지 일도 안나 가시고 아예 집 밖을 나가시지 않는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뵙었던 옆집 할머니는 종종 우리 할머니 집을 찾아오신다고 했다. 이유는 할머니가 연세 많으시니 걱정돼서 주기적으로 찾아오신다고 했다. 혹시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안 되니까. 그 말을 듣고 할머니에게 더 자주 전화를 드렸다. 요즘에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할머니의 쇠약한 목소리를 들으니 몸이 많이 편찮으신 것 같다. 그 힘없는 목소리로 일을 또 시작했다는 얘기, 구토를 자주 하신다는 얘기, 밥을 잘 못 먹겠다는 얘기 등 아프다는 얘기를 많이 하셨다. 


하루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할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작은삼촌 이름을 부르셨다. 나는 잘못 걸으신 거 같다고 말을 했다. 네가 1번 아니니?라고 물으셨고 무슨 말인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작년 설날 때 할머니 핸드폰의 단축번호를 수정해 드린 기억이 났다. 거의 명절 때만 할머니 집에 방문하기 때문에 할머니는 내가 오면 이것저것 혼자서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시키곤 했다.  


할머니는 동네 근처 농협에서 받아온 메모지에 핸드폰 단축번호를 써놓고 보관을 하신다. 그리고 그 메모지를 보고 번호를 꾸욱 누르고 있으면 전화가 걸린다. 나는 0번이고 작은삼촌은 1번 우리 아버지는 2번 고모는 3번 그 외에 가족들 또는 몇몇 아는 사람들이 있다. 예전 단축번호가 적인 메모지를 보고 작은삼촌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내가 받은 것이다. 단축번호 설정 방법은 전화로 아무리 자세히 설명을 해도 할머니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다. 할머니에게 1번으로 해보시라고 알려주고서 전화를 끊었다. 다시 전화가 오지 않는 걸 보니 할머니가 잠시 헤갈렸나 보다 라고 생각했다. 내년 설날에는 고향에 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만약에 가게 된다면 할머니 핸드폰을 다시 한번 봐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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