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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광철 Dec 17. 2020

가족 소개 카드

시끄럽고 어지러운 교실. 창문 안으로 들어오는 마지막 햇빛. 눈썹을 한쪽만 올린 채 인상을 쓴 담임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왔다. 교실 아이들은 모두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았고. 선생님은 내일까지 가족 소개 카드를 만들어 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모든 친구들이 네!라고 대답할 때 나는 입을 굳게 닫았다. 나도 대답하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문방구에서 불량식품 과자 한 개를 샀다. 쓰레기는 주머니에 넣었다. 사실 길거리에 그냥 버리고 싶었다. 실내화 가방을 발로 툭툭 차면서 걸었다. 


친구들은 각자 집으로 흩어지고 나도 집으로 걸어갔다. 할아버지가 집에 안 계셨다. 아직도 밖에서 박스를 줍고 계시나 보다. 선생님이 내준 숙제가 생각났다. 스케치북을 깔고 있는 냄비를 치웠다. 라면 국물이 스케치북에 조금 묻었다. 배가 고프지 않았다. 사실 집에 먹을 게 없어서 그냥 굶고 싶었다. 바닥에 엎드려서 스케치북을 펼쳐놓고 텔레비전을 봤다. 좀 더 편하게 보려고 벽에 기대 누웠다. 숙제가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아까 선생님 말씀에 대답을 못한 것도 생각났다. 숙제가 하기 싫어졌다. 


밖은 이미 어둠으로 가득 찼고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불빛이 나를 인상 쓰게 했다. 할아버지는 집으로 들어오더니 굽은 허리를 잡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아침햇살이 어느 때보다 강렬했다. 나는 스케치북을 가방에 넣고 집 밖으로 나왔다. 문방구에서 불량식품 초콜릿을 하나 샀다. 오늘따라 학교가 가기 싫었다. 웃고 있는 친구들이 얄미웠다. 선생님은 어제 내준 숙제를 한 명씩 일어나서 발표하라고 했다.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내 차례가 되었다. 숙제를 안 했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부드러운 말투로 왜 숙제를 안 해 왔냐고 물었다. 나는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고 교탁 모서리만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선생님은 자리에 앉으라고 하고 다음 학생 이름을 불렀다. 세상 모든 것들이 다 재수 없게 느껴졌다. 그냥 집에 가서 라면이나 먹고 눕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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