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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트바스 Nov 01. 2020

완전한 위로법

보편적 위로의 말이 있다는 건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힘내지 않아도 괜찮아’ 하는 말이 한참이나 유행했다

‘힘내! 파이팅!’이라는 단어가 고전적인 위로의 말이이었다면, 힘내지 않아도 괜찮다는 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선한 위로가 돼 주었던 것같다. 나처럼 공감과 위로에 서툰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위로의 말이 있다는 건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위로가 필요해 보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할까 고민하다 보면,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였다. 담담히 자신의 말을 내려놓는 친구에게 내가 꺼내 들 수 있는 거라곤 겨우 ‘힘내’라는 말뿐이어서 나 자신이 무력하게 느껴지는 날도 있었다. 나는 위로 같은 건 하지 못하는 애라며 자책하곤 했다. 


언젠가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할 때였다. 여행차 들린 스물한 살 아이의 고백이 들려왔다. 그 애는 암에 걸렸다가 몇 개월 전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렇게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고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다. 그 와중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 모든 일들을 단숨에 잊을 수는 없겠지만, 마음 한 구석이라도 정리해 볼 마음으로 제주로 왔다고 했다. 


나는 우린 다시 보지 않을 사람이니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얼마든지 해도 된다고 말하며, 사람 좋은 웃음을 보였다. 실은 애초부터 타인을 위로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그 애가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경험을 했다는 사실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그저 우연히 만난 사이면서도 그 애에게 힘을 주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이다. 나는 조금 알고 있었다. 쓸데없는 위로가 세상에는 너무 많다는 것을. 아무 표정 없이 처지를 말하는 그 애에게는 어떤 위로가 필요한 걸까? 내가 어설픈 위로의 말을 찾는 동안, 그 애가 말했다.


"신이 버텨낼 수 있는 고통만 준다고 얘기하잖아요. 근데 전 그게 싫어요. 각자가 가진 아픔이나 한계는 전부 다른 거 아닌가요? 사람들은 '다 똑같이 힘들다'면서 다그쳐요. 너만 힘든거 아니니까 유별나게 굴지 말라고 말하더라고요."


나는 그 애의 이야기가 완전히 끝난 후에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위로는 전하려는 사람은 물론이고, 받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좀처럼 쉽지 않다. 온전히 그 사람을 이해하고 공감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그저 ‘잘 지내지?’하는 가벼운 말로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또 어떤 날은 그 말들이 너무 쉽게 내뱉어진 것만 같아서 ‘넌 아무것도 모르면서 말만 쉽게 하는구나’ 하고 마음이 삐뚤어지게 된다. 


위로받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욕심으로 끝난다. 타인에 대해 완전히 공감한다는 게 가능하기나 할까? 나는 우울한 마음이 들면 자주 생각했다. 나를 완전히 이해해줄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는 걸까? 하고. 이내 고개를 슬쩍 젓는다. 나를 위로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던 사람이 내 마음 하나 이해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실망하고 슬퍼하며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다고 확신한다. 그러다가 또 금세 잊고는 위로를 기대하며 끝없이 반복한다.


교토에 온 후로 외롭고, 또 가끔은 울적한 날들이 쳇바퀴처럼 반복됐다. 그러다가도 가끔은 가볍게 꺼낸 말이 위로가 되기도 하고, 어떤 날은 특별한 말보다 소소한 일상이 위로가 되기도 했다. 곁에 있는 사람과 웃고 떠드는 날들이 그랬다. 밤하늘을 보며 걷는 어떤 날이 그랬다. 위로는 참으로 개인적인 일이다. 


그렇다면 위로는 타인에게서 오는 게 아니라 나로부터 오는 거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타인의 말과 행동을 받아들이는 것도 나 자신이고, 내 사건의 어디쯤에서 위로가 필요한지 아는 사람도 한 사람뿐이기 때문이다. 작고 가벼운 우울을 허리춤에 달고 다니는 내게, 완전한 위로를 건네줄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지 않을까. 그 어떤 타인이라도 내 허리춤 속을 들여다볼 수도, 알 수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완전한 위로를 나는 잘 모른다. 다만 처음으로 나를 향해 위로의 말을 건네보려 애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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