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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트바스 Nov 01. 2020

신에 대하여

내가 믿는 것들


무수한 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이제 막 어른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무렵, 교회에 다니며 유일신을 배웠다. 하지만 세상에는 더 많은 신들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매주 <토요 미스터리>와 <전설의 고향>에서는 귀신이 등장했다. 그들도 신 아니던가. 그리스 로마 신화는 또 어떠한가. 그 흥미로운 이야기 속에 또 신이 등장한다. 제우스, 헤라, 포세이돈.. 혼란스러웠다. 교회에서 다른 신의 존재는 없다고 했는데, 진짜 신은 대체 누구며 어디에 있다는 걸까.







지난겨울, 오랜만에 외식을 하고 골목을 걸었다. 저만치서 사람들이 복작복작하게 움직이는 게 보였다. 조용한 시골길이어야 맞는 그 작은 골목에 길거리 음식을 파는 야시장이 들어선 것이다. 나는 야시장 불빛을 보자마자 들뜨기 시작했다. 언제나 시장 구경은 즐겁다. 그렇게 한달음에 골목으로 가 한참을 구경했다. 계란빵과 타코야끼 파는 노점, 낚시놀이를 하는 가게 들을 지나고, 유카타를 아이들을 지났다. 그러다가 영문도 모른 채 사람들이 잔뜩 모인 곳을 따라 들어갔다. 그곳은 화려한 전등을 장식해둔 사찰이었다.


뭔지 모를 어려운 한자들이 가득 쓰여 있었다. 일본어 꽤나 할 줄 안다는 그애도 잘 모르는 한자라고 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그곳은 학문이 신이 모셔진 사찰이었다. 곳곳에는 비스듬히 누운 황소 동상이 있었다. 학문의 신으로 황소를 모신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괴이한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학문의 신으로 모셔진 것은 황소가 아니라 천자문을 일본으로 들여온 사람이다) 자식의 번영을 기원하는 부모의 손길이었을까? 제주 돌하르방 코를 만지면 좋다더라 하는 말은 황소에게도 적용되는지, 사람들이 하도 만져서 황소의 몸이 반질반질했다. 


내가 배운 신의 존재와는 달리, 일본은 수만 가지 신을 믿는다.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내게 나라마다 신이 다르다는 것도 꽤나 우습다. 그 자체로 유일신의 모습이 부정되는 것 아닌가. 교토에는 엄청나게 많은 신사들이 있다. 그 신사들은 대개 각각의 신이 모셔져 있는데, 나 같은 이방인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심지어 큰 절이 아니라 길거리에도 작은 신당이 있는데, 몇몇 사람들은 길을 걷다가 그 앞에 멈춰 서서 두 손을 맞대고 내가 알 수 없는 기도하고 갔다. 신을 모르는 나는 그런 풍경이 조금 무서웠다. 나에게 신은 곧 죽은 사람의 영혼이기도 했으니까.







어린 시절, 재미 삼아 친구들끼리 나는 나만 믿는다고 떠들어 댔다. 오로지 스스로 살아가는 인간은 거의 없는 게 분명하다는 것은 조금 더 나이가 든 다음에야 알게 됐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내가 섬기는 신은 나를 둘러싼 기운들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나에게 신은 우주이면서 자연 그 자체로 나를 둘러싼 하나님이면서, 부처님이면서, 알라인 것이다. 혹시 황소나 하르방,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의 영혼일지도 모른다. 그게 맞다면 우리는 학창 시절에 종교에 대해 더 깊숙이 배웠어야 하는 거 아닐까? 누군가 믿는 그 신의 가르침에 대해서가 아니라, 신 그 자체에 대해서 말이다. 


여전히 나는 신을 모른다. 그 덕에 제대로 믿지도 못한다. 대신 나를 둘러싼 기운이나 에너지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인생이 흘러간다는 걸 믿는다는 뜻이다. 우리 동네 뒷산에는 물의 신이 있고, 청수사에는 연애의 신이 있고, 시내 한복판에 학문의 신이 있는 건, 신 그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마음을 담아 염원하면서 스스로 좋은 길을 트이게 만드는데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언젠가 다시 학문의 신을 찾아가야겠다. 황소동상을 만지던 그 많은 손길을 따라, 그애의 공부가 모쪼록 잘 마무리 될 수 있게 해 달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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