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도 공부하기 싫다
책상 앞에 앉는다.
어딘가 어수선한 책꽂이를 정리하고, 자세를 고쳐 앉는다. 어떻게 공부할지 계획을 짜 본다. 나는 계획 짜는 일에는 도가 텄기 때문에, 공부하는 것 말고, 혹시 계획만 짜주는 일이 있다면 당장에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책상 위에 달력과 노트, 펜을 번갈아 째려보다 보면 마실 거리가 생각나 다시 벌떡 일어난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었다면 혹시 모르겠지만, 어른이 된 나에게는 아메리카노나 얼그레이가 없는 공부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뜨거운 차를 홀짝홀짝 몇 번 마시다가 이제 진짜 책을 펼치고 공부를 시작해야겠다. 뇌는 참 신비롭다. ‘본격적으로 공부하기’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졸리기 시작한다. 내 뇌가 특별히 발달되거나 진화가 덜 되어서 그런 게 아니라고 믿고 싶어 진다.
[Fa …]
똑똑한 크롬은 알파벳 두 글자를 치자마자 내 마음을 읽었다. 공부하기 싫은 나는 순식간에 페이스북에 접속해 있었다. 내 페이스북에는 요 몇 년간 아무 업데이트도 없었을뿐더러, 최근 자주 접속하지도 않았었다. 그렇지만 그런 것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특별한 소식이 없는 피드를 보고 실망하려는 찰나, 나는 예전에, 그러니까 20년도 전에 친구였던 애들을 찾아보고 싶어 졌다. 고맙게도 모두 자기 얼굴을 프로필 사진으로 내걸고 있어서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어떤 애는 여전히 그때랑 똑같이 생겼고, 다른 어떤 애는 웨딩사진을 올려뒀다. 또 어떤 애는 프로필 사진 달랑 한 장 남겨둔 채 페이스북 피드가 텅 비어있었다. 우리가 서로 안부를 묻지 않는 동안 그 애들은 나를 몇 번이나 생각했을까? 하고 잠시 궁금해졌다.
페이스 북에서 만난 애들 중에서 눈에 띄는 애가 있었다. 그 애의 버디버디 아이디는 토모다찌였다. 그 애는 그게 일본어고, '친구'라는 뜻이라는 걸 알려줬었다. 그건 내 생애 첫 외국어였다. 우리는 자주 등하교를 같이 하고, 각자의 집에 있을 때는 버디버디(2000년대에 즐겨 쓰던 메신저)를 켜 두고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몇 년 동안, 우리의 메신저는 버디버디에서 타키로, 타키에서 네이트온으로 바뀌어 있었다. 우리는 점점 연락이 뜸해졌고, 가끔 접속 알림이 뜨면 ’ 하이!’ 같은 인사만 나누곤 했다.
페이스북에서 만난 그 애는 머리칼 모양을 빼고는 여전히 그 얼굴, 그 표정이다.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애는 아주 심한 곱슬머리였는데, 이제는 긴 생머리가 잘 어울리는 어른이 되어있었다. 나는 그 애가 너무 보고 싶다는 생각 대신 직접 연락하지 않아도 이렇게 얼굴을 볼 수 있으니까 좋구나 하는 마음이 먼저 들었다. 연락하는 것도 당장에 가능한 일이지만, 나는 나중에, 조금 더 나중에 그 애한테 잘 지내느냐 메시지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왜 지금이 아니라 그때라고 누가 묻는다면 나는 특별히 할 말이 없지만, 그냥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선을 다해서 연락할 수 있을 때, 그래서 어른이 된 그 애들을 불쑥 불러내 내내 잘 알았던 것처럼 얘기 나눌 수 있을 때, 나는 그때 그 애들을 만날 거다. 어색한 건 정말 싫으니까 미리 할 말을 생각해 둬야겠다. 우선은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서 결혼은 했는지, 혹시 아이가 있는지 물어야겠다. 결혼도, 아이도 그동안 축하해 주지 못했으니 나는 그 애들의 아이를 위해 깜짝 놀랄 만큼 예쁘고 귀여운 선물을 준비해야지.
그 애들도 술을 마실 줄 안다면, 술을 한잔하자고 한 다음 반가운 인사를 나눠야겠다. 그리고선 만나서 혹시 학교 마치고 집에 가던 길에 100원에 7가닥 내어주던 그 떡볶이집을 기억하느냐고, 수업 시간에 몰래 비틀즈를 꺼내 먹던 것을 기억하느냐고 물어야지. 나는 너무 희미해져서 그런 것들밖에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고 말하며 웃어야지. 혹시 나한테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물어보면, 나는 잠시 일본에 다녀왔다고 말해야겠다. 바보같이 일본에 도착해서도 '토모다찌'인지 '도모다찌'인지 한참이나 헷갈려했다고. 그때 네가 알려준 토모다찌 때문에 자주 너를 생각했다고 말해야겠다.
음. 그러려면, 일단 나는 옆에 밀어뒀던 일본어 책을 다시 펼쳐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