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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트바스 Nov 01. 2020

사랑을 모름에 대하여

지금부터 진실게임을 시작하지

열 살 전후의 아이들이 둘러않으면, 자주 진실게임이라는 걸 시작했다.

순서대로 질문과 대답을 할 아이를 정했는데, 진실게임의 단골 질문은 ‘너는 누구를 좋아해?’하는 거였다. 내게 답할 차례가 돌아오면 나는 좋아하는 사람 같은 거 없다고 말하곤 했는데, 애들은 그런 나를 어김없이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어떻게 좋아하는 애가 없을 수 있냐며, 말하기 싫으면 말라며 화를 냈다. 한 날은 그 애들이 화내는 게 싫어서 거짓말로 아무나 말했는데, 그 애들은 그걸로 또 나를 놀렸다. 지난번엔 없다며! 하고. 나는 그 게임이 참 싫었다.

중학생이 되자 우리 반 아이들은 키 순서대로 번호가 매겨졌다. 나보다 아주 조금 큰 그 애는 내 뒷번호였는데, 우리는 그대로 첫 짝꿍이 되었다. 그 애는 뽀얗고 보드라운 볼이 눈에 띄는 애였는데, 한 날은 그 애가 밤새 소설을 보느라 코피를 흘렸다고 말했다. 그것은 야설, 그러니까 '야한 팬픽’이었다.

나는 몇 번이나 ‘그 애의 코피’ 얘기를 들으며, 야한 것과 코피가 무슨 상관이지? 하고 생각했다. 아마 나는 야한 게 뭔지 모르는 열네 살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이성에도, 사랑에도, 소설에도, 아이돌에도, 그리고 야한 것에도 관심 없는 재미없는 중학생이었는데, 그 애 앞에서 나는 자주 어린이가 된 것만 같았다. 벌써 초등학교를 졸업했는데도 말이다.




나는 그 흔한 짝사랑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10대 후반이 되었을 무렵에는 혹시 내가 사랑하지 못하는 병에 걸린 건 아닐까 하고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 친구 정이가 교회 오빠를 열심히 따라다닐 때도, 영이가 잘생긴 동네 오빠에게 손 편지를 전할 때도 나는 사랑을 몰랐다. 사랑하면 죽는다거나, 키스하면 죽는다거나 하는 병이 있다던데, 나는 혹시 그런 애가 아닐까 자주 의심했다. 열아홉이 되자 의심은 걱정으로 변해갔다. 그건 너무 우스워서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이 되었다.

타인을 사랑하는 일은 스물둘이 되던 해에 겨우 배울 수 있었다. 나는 두 번째 연애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그 애랑 헤어진다는 상상을 하자마자 가슴이 찢기듯이 아팠다. 나는 그 기분이 너무 신기해서, 가끔은 일부러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애에게도 말해줬다. 그땐 이미 헤어진 후였지만. 나는 그 애와 헤어진 후에도 그런 게 정말로 좋아한다는 거였구나, 사랑하는 건 그런 거구나. 하고 가끔 생각했다. 왜 하필 그때 만나서 결혼하지도 못했을까 하는 우스운 상상도 하면서.

그 애랑 헤어지고는 나는 이제 절절히 사랑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다음 애인과 가벼운 다음 연애를 하고 나자 다시 절절한 연애가 그리워졌다. 나는 그러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절절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에 잔잔히 넘실대는 사랑도 있음을. 그건 천천히 흐르는 강물도, 세찬 폭풍우도 아니었다. 잔잔히 몇 번 오기를 반복하다가, 지루해질 즘 날 놀라게 하는 파도 같은 거라고 할까. 누군가 나에게 이번엔 어떤 사랑을 원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저 지금의 사랑이라고 말할 거다.

나는 여전히 사랑을 잘 모른다. 그래서 사랑에 대해 쓸 수 없다. 대신 '사랑을 모름'에 대해서 쓴다. 좋아하는 게 뭔지 배우는 데 한참이나 걸렸지만 이제 조금은 알게 됐다. 나에게 기쁨을 주는 것들에 대해 자주 생각할수록 나는 좋아하는 게 뭔지 배워간다. 그리고 이제야 거의 완벽하게 알게 된 게 하나 있다면, 야한 건 무엇인가 하는 거다. 


다시 뽀얀 볼을 가진 짝꿍에게로 갈 수 있다면- 나는 조금 더 빨리 사랑을 배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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