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 이치조지 공원에서 마주한 것들
기찻길을 따라 걷다가, 우연히 만난 풍경 앞에 앉아 노트를 꺼내 든다. 저만치 짱구만큼 작은 아이들부터 조금 큰 아이들까지 웃음소리가 들려와 내 기분까지 좋아진다. 멀리서 웃는 그 애들은 가끔 내가 알아 들을 수 있는 말로 대화를 하는데, 그 말들을 골라 듣는 일도 꽤 재미있다. (물론 나는 이미 알고 있는 단어와 문장만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직접 들을 말을 고르는 것은 아니다)
아부나이요~(위험하잖아), 이이카라(좋은데?) 같은 말들이 들린다. 서로의 말과 말 사이 까르르 웃는 소리는 어느 아이건 빼놓는 법이 없다. 일본의 아이들은 유난히 볼이 빨갛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의 아이들도 다름이 없다. 한국에서의 어느 겨울, 실컷 눈사람을 만들던 어린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는 그럴 때마다 추운줄도 모르고 얼마나 신나게 놀았을까 생각하며 베시시 웃곤 했다.
일본에서는 튼튼한 아이로 키우기 위해 겨울에도 춥게 입힌다더라 하는 얘기가 생각났다.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래전에 들은 이야기인데, 여전히 진짜인지 아닌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어쨌거나 봄의 한복판에서도 발갛게 달아오른 그애들이 무척 귀엽다는 귀여워 보인다는 뜻이다.
마음 편히 걸었다. 평소라면 휴대폰과 포켓와이파이의 배터리가 넉넉한지 몇 번이나 살폈을 것이다. 아직은 낯선 동네를 거니는 날이면, 집으로 가는 길을 헤매지 않기 위해 구글맵을 켜 두어야 안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오늘은 기찻길을 따라 걸었다. 지금 걷는 길이 어디쯤인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어느 방향인지 자세히 생각하지 않은 채로. 따라 걸은 기찻길만 놓치지 않는다면 집을 잃어버릴 걱정은 없으니까 말이다.
한봄이 되자 집집마다 문밖에 꽃화분을 내어두기 시작했다. 마당이 있는 집은 진작에 심어둔 큰 나무들이 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여의치 않은 집은 대문밖에 꽃화분을 가져다 두었다. 덕분에 걷는 골목마다 봄이 가득하다. 아직도 무얼 파는지 도통 알수없는 옆건물 미닫이 문밖에도, 집 근처 새로 생긴 와인바 안에도, 뒷골목에 들어선 집집마다에도, 버스정류장 가는 길 도로가에도 이름 모를 꽃들이 놓인다. 겨우 일주일쯤 피어 구경할 새도 없이 금세 초록으로 변한 벚나무에 섭섭했던 마음은 잊은지 오래다.
기찻길을 따라 걷는 걸음 속에도 봄은 한창이다. 집집마다 내어둔 꽃화분과, 마당에 심은 꽃나무들을 실컷 구경하며 걸었다. 생전 보지 못했던 꽃을 보면 얼른 사진기를 들이대고 싶어 진다. 남의 담장 안 꽃나무를 찍는 건 종종 도둑질하는 기분이 들지만, 화분도 나무도 없는 나는 얼른 셔터를 눌러 사진으로 담는다.
어른이 되어서 좋은 점 중 하나. 꽃구경하는 재미를 배웠다는 거다. 10대엔 몰랐다. 꽃나무가 이렇게 아름답고 다채로운 줄은. 봄 공기가 이렇게 달콤한 줄은. 봄꽃이 아니라 책 한자를 더 보아야 한다고, 누가 말한 적은 없어도 내내 그런 것만 같았다. 끝내 한낮을 즐기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스무 살 되던 해, 엠티 가는 그 길에 울긋불긋한 산이 예뻐서 나도 어른이 되어가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조금 더 일찍이렇게 예쁜 세상 알았더라면 지금 나는 더 사랑넘치는 따뜻한 사람이 될 수 있었으려나. 아. 지나간 일은 모르겠고, 지금 좋은 날들 실컷 구경해야지.
벤치에 앉아 멍하니 있는데, 작고 단단해 보이는 헬멧을 쓰고 두 발 자전거를 타는 여자아이가 시선을 잡는다. 이 세상 산지 겨우 두 세 해쯤 되어 보이는데도, 누구보다 씩씩하게 발을 구른다. 고개를 빳빳하게 든 채로 자신만만한 표정이다. 그 애가 시야에서 사라진 사이 남자아이 둘이 자전거를 타며 내 곁을 지난다. 이번엔 보조바퀴가 달린 네발자전거다. 한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또 한 아이는 그자 전거 뒤꽁무니를 붙잡고 빠르게 걷는다. 아까 본 여자아이는 이 애들을 보고서 더 자신있어보이는 표정을 짓게 된 걸까? 남자아이 둘은 얕은 오르막길에서 아슬아슬하게 달린다. 그 애들의 보호자로 보이는 어른이 얼른 다가가 부드럽게 말한다.
危ないよ、大丈夫?
다칠뻔 했어, 괜찮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