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뭐예요?"
가장 나를 연약하게 만드는 질문이었다. 나는 오랫동안 취미나 특기를 묻는 질문에 취약했다. 그냥 즐겨하는 일을 말하면 될 뿐인데, 그 대답이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무언가를 말할 때마다 앞에서건 뒤에서건 남 말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했다. 좋아하는 대상을 향해 열렬히 소리치는 사람들을 보며 스스로 검열했다. ‘그래, 그 정도로 좋아하진 않지.’ 하고 생각해버리고 좋은 지도 아닌지도 모른 채로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나 싫어하는 일을 잘 꼽지 못했던 건, 우유부단하다고 믿었던 내 성격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딱 하나만 꼽는 일을 특히 어려워하는 아이였다. 어렴풋하게 좋아하는 일들도 왠지 입밖에 내기가 곤란했다. 사람들은 딱 부러지는 하나만을 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특별히 좋아하는 게 없었던 나는 어떤 일에 열렬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열렬한 마음이란 일종의 강렬한 사랑이나 관심 같은 것인데, 그런 열정적인 마음은 내겐 없는 건가 하고 아쉬워하기도 하면서.
답을 내리지는 못했을지언정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 의문을 품어보지 않았을까?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하는 물음말이다. 어느 날의 나도 그랬다. 시키는 일만 해도 얼마든지 먹고살 수 있는 세상이지만, 잘 먹고 잘살지 못할지언정 내가 누군지 이해하고 싶은 순간을 맞이한 것이다.
살아가면서 좋고 싫음, 그러니까 자신의 취향을 아는 것은 꽤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어쩌면 그건 내가 누군지 알아내는 첫 번째 힌트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건 스스로를 슬프거나 괴롭거나 혹은 아픈 일들에서 최대한 벗어나게 하고, 기쁘거나 행복한 일들을 맞이하며 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어렴풋하게 아는 것도 좋지만, 세상 많은 것들이 그렇듯, 표현하면 더 확실해진다. 말하기나 쓰기 같은 행위로 말이다. 표현하지 않으면 사람들도 모르고, 나도 모른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같은 건 가상의 세계에서나 존재하는 말이니까.
90년대부터 젊은이들이 외쳐오던 '개성시대'가 드디어 도래했다. 우유부단 사람도, 좋아하는 것은 딱하나 만 골라야 하는 줄 알았던 사람들도, 조금만 좋아하는데 이걸 진짜 좋아한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고민하는 사람도 좋아하는 것을 향해 조금은 나아가 보면 어떨까. 누구나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행인지 불향인지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자주, 더 분명하게 자신의 취향을 고백하는 시대다. 배려하되,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고, 강요받지 않은 채로 자신의 취향을 말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혹시라도 취미나 특기를 묻는 질문에 나처럼 취약한 사람이 있다면, 뭐든 좋아하는 것들을 써보라 권하고 싶다. 좋아하는 사람이던 장소건 음식이건 뭐든. 하나도 좋고, 여러 개도 좋고, 엄청 많이 써도 좋고, 중복돼도 좋고, 이 얘기를 했다가 저 얘기를 해도 좋다. 과일은 싫다고 했다가 수박은 좋다고 하는 것도 좋다. 이유가 없어도 좋고 있어도 좋다. 논리가 좀 안 맞으면 어떤가. 그냥 수박이 좋아서 좋다고 말하는 것을!
*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 오리온 초코파이의 광고음악에 나오는 노랫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