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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트바스 Aug 09. 2021

헬로! 비블리오틱!

교토 북카페 <Cafe Bibliotic Hello!>

이국의 서점은 그 자체로 매력적이긴 하지만, 글자를 하나하나 읽고 음미할 수 없어 늘 아쉬워진다. 읽지는 못해도 마음껏 책을 뒤적이고 싶지만, 작은 책방에서는 오래 머물자니 어쩐지 눈치가 보인다. 큰 서점은 마음껏 책을 살펴볼 수 있지만, 규모에 짓눌려 좀 어지럽기도 해서 어쩐지 백과사전 안에 들어간 느낌이 드는데, 그럴 때면 찾게 되는 곳이 바로 북카페다. 여느 도시도 그렇지만, 교토역시 카페나 서점보다 '북카페'의 수는 현저히 적은데, 인터넷으로 교토 여기저기를 살피다가 마침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했다.


버스정류장에 내려 작은 골목 사이를 천천히 걸었다. 사실 버스정류장에서 약 500미터 밖에 안되지만, 숨 막히는 여름 한복판에서는 그것도 어쩐지 좀 버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골목길을 조금 걷다 보면 초록색 바나나 나무가 환히 반기는 카페가 보인다. 번화가에서 벗어난 마을 안쪽에 있어서 자주 찾기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만큼 여유를 느낄 수 있어 좋은 곳.


카페 앞에서 조금 서성거리는 사이, 유모차를 탄 아이와 부부가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왠지 성급해져서 나도 따라 들어갔다. 그들은 손소독제를 뿌린 다음, 비치된 체온계로 체온을 쟀다. 나도 그들을 따라 손 소독과 체온 재기를 마쳤다. '직접 체온계를 사용하는 가게는 처음이네' 하고 생각하며 자리에 앉았다. 큰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자 종업원이 다가왔다. 스타벅스처럼 매장에 들어서서 자리에 앉기도 전에 주문과 결재를 마치는 곳도 있지만, 일본의 작은 카페들은 아직 자리에서 주문을 받아주는 곳이 많이 남아있다. 처음 가는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들어서면서 어떤 방식이려나 하고 눈치를 봐야 하는데, 모쪼록 한 나라, 아니 한 도시에서만큼은 어떤 방식으로든 통일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개인적인 취향을 더해 기왕이면 테이블에서 주문을 받아주는 쪽이면 더 좋고. 


점원에게 건네받은 건 낡은 가죽 커버에 링 바인더를 끼운 메뉴판이었다. 메뉴판이 만들어진 후 추가되는 메뉴들은 종이에 쓰고 그린 다음, 코팅한 것을 링에 끼운 모양이다. 깔끔하게 갖춰진 모습은 아니지만, 자연스러운 모습이 정감가기도 하고, 벌써 20여 년 전에 '투명한 커버가 씌워진 6공 다이어리'를 쓰던 시절이 생각나 미소가 지어졌다. 메뉴판은 오래된 것을 자랑이라도 하는 듯이 스테인리스 링이 끼워진 가죽 부분이 한껏 늘어져 있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번 마련해두면 오래 쓸 수 있다는 생각에 가방이나 지갑 같은 건 인조가죽보다는 무조건 진짜 가죽을 골랐었다. 그렇게 사용하다 보면 인조가죽보다 덜 닳는 것은 맞지만, 헤지지 않는 것은 전혀 아니고, 그렇다고 인조가죽보다 오래 사용하지도 않게 되는 물건들을 보면서 굳이 고집할 필요하 있나 하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동물 애호가나 채식주의자 축에 끼지는 못하지만, 책이나 매체를 통해 얼핏 엿보았던 그들의 신념에 '가죽은 오래 사용한다'는 내 믿음이 깨지는 경험들이 더해져서 나는 차츰 가죽으로 된 물건들을 고집하지 않게 되었다. 얼마나 빨리 썩어 없어지는가 까지 생각해보면 다시 가죽의 압승이려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러나저러나 필요한 물건만 사서, 고장 나거나 고쳐쓸 수 없을 때까지 쓰는 것으로 마음을 굳히기로 했다. 


“호또데 카페라떼 히토츠또 그레이프 타르트 히토츠..” (따뜻한 카페라떼 하나랑 포도 타르트 하나 주세요)

“그레이프 타르토?”

“하이. 그레이프 타르토 히토츠 오네가이시마스” (네! 포도 타르트 하나 부탁합니다.)


이번엔 자연스럽게 넘어가나 했다. 대충 단어나 손짓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싶은 메뉴를 주문할 수 있지만, 여전히 주문할 때 떨리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베를린에 잠깐 머무는 동안 매번 영어와 독일어 사이를 헤매며 어느 것도 제대로 말하지 못했었다. 덕분에 카페에 갈 때면 아메리카노나 카페라테보다 발음이 쉬운 카푸치노를 자주 주문하곤 했다. 마음대로 주문하지 못하는 나는 교토에서도 여전하구나. 이 종업원도 일본어가 한참 부족한 타향살이 외국인의 마음을 알고 있으려나. 어쨌든 타르트의 '트'는 '토'다. 다음에 또 타르트 주문할 때를 대비해 잘 외워둬야겠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는 왜 모든 공부를 암기력으로 승부해야 하나 억울한 적이 있었다. 나는 기억력에 매우 취약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친구와의 여행을 다녀오면, 언젠가 그 이야기를 할 때 여행 갔던 날짜가 언제였는지 어디에서 커피를 마셨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는 식이다. 특히 기억력이 좋은 친구들 앞에선 뇌 기억장치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처럼 자주 주눅이 들곤 했다. 전공 공부를 하면서도 나는 좀 억울해졌다. 왜 기억력으로 나를 판단하는 걸까! 억울함과 궁금함이 절반씩인 내 마음은 교수학습법을 배우고,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져 갔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을 냈다. 기억한다는 것은 곧 학습한다는 말과 동의어다!






1층과 2층 모두 합쳐 10개 정도의 테이블이 있는데, 너무 가까워 북적이지 않고 적당하게 떨어져 있어서 부담스럽지 않은 느낌이다. 초록과 진한 나무색으로 꾸며진 실내도 예쁘고, 깨끗해 보이는 부엌과 쇼케이스 안의 신선해 보이는 과일도 보기 좋다. 바깥은 뜨겁지만, 유리 창밖으로 큰 식물들이 있어 아주 시원해 보였다. 큰 초록잎을 가진 바나나 나무였다. 치앙마이의 어느 카페에라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창밖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이곳까지 오는 동안의 더위는 전부 잊어버리게 됐다. 내 테이블 위에 놓인 커다란 화분을 보며 어쩐지 이 조용한 카페에 생기가 가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레가 싫어서 살아있는 식물에도 무관심한 편이지만, 식물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이런 역할도 하는구나 하고 깨달았다. 나도 언젠가는 집에다가 큰 식물을 두고 그 잎을 곱게 닦아주는 상상을 해본다. 그러는 사이 종업원이 주문한 커피와 타르트를 내왔다.


砂糖要りますか?” (설탕 드릴까요?)

“..?”


사토! 또 사토를 잊어버렸다. 사토는 설탕이라는 뜻인데, 일본의 카페에서는 커피를 주문하면 설탕이나 우유가 필요한지 꼭 묻는다. 오늘은 카페라테를 주문했으니 미루꾸(밀크, 우유다)는 빼고, 사토가 필요하냐고 물은 것인데 아는 단어인데도 한방에 못 알아들은 것 같아 왠지 속상했다. 한 모금 마신 카페라테의 맛은 그런 마음을 금세 잊게 해 주긴 했지만. 그럼 ‘그레이프 타르토’를 맛봐볼까. 타르트 위에 알맹이만 있는 포도. 하나하나 껍질을 벗겨 만든 것을 생각하니 왠지 감동이 밀려왔다.  딱딱한 쿠키형 타르트가 아니라 촉촉한 시트인 것도 마음에 쏙 든다. "Seoson's fruits tarte"라는 메뉴로 계절과일을 올려 여러 가지 타르트를 판매하는데 나는 그중에서 포도를 골랐다. 타르트라는 것이 시트 위에 크림치즈와 과일이 조금 올라간 것뿐인데 다소 비싸다고 생각한 800엔이 무색하게 입으로 쏙쏙 들어가 사르르 녹는 맛이 일품이다. 


순식간에 타르트 접시를 해치우고, 그제야 책장으로 눈을 돌려본다. 한쪽 벽면이 책으로 가득한 것을 보면, '카페 비블리오틱 헬로'라는 이름이 꼭 맞는 것 같다. 여전히 책을 읽어 내려갈 만큼 일본어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좋다. 책장에는 잡지류도 많고 간간히 동화책도 눈에 띈다. 사진과 그림이 많은 이런 책들은 까막눈인 나에게도 안성맞춤이다. 숲 속에 머무는 듯한 실내와 맛있는 디저트는 덤이고, 도서관이나 일반 서점만큼 책이 많지 않아도, 커피와 함께 마음껏 책을 둘러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런 북카페는 천국 같다. 이런 천국에서 가만히 않아 쉬어갈 수 있다면, 아무리 뜨거운 여름이라도 500미터쯤 걷는 일은 마다하고 싶지 않아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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