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는 이렇게 산다.

[같은 상황, 다른 공간]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by K써니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오늘 방문수업 후 귀가 길에 문득 드는 생각이었다.


수업을 위해 준비해 간 무거운 짐을 버스 좌석의 한편에 놓은 후 조금의 긴장이 풀리고 나도 모르게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이런 생각이 든 연유는 있었다. 방문미술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이제 2달여 나에게도 낯선 상황들, 혹은 이전에 학원 내에서 쉽게 대처할 수 있었던 상황들이 이제 대처하기 힘든 상황이 되어버린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학원과는 다르게 집이라는 공간은 아이들에게 있어서 편안한 공간이다. 그러다 보니 학원 내에서 어느 정도의 긴장감과 통제가 되었던 상황들이 애매하게 무너져 버린 것이다. 굳이 혼낼 생각도 그렇다고 막무가내로 시킬 생각도 없지만 가끔은 공간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에 제압되어 아이들의 행동이 조금씩 통제되기 마련인데 집이라는 특성에 그 한계점이 매우 낮아진 것이다.


아이들의 자기 절제력이 평소 집 밖에서 10점 만점에 8점 정도라면 집에서는 5점 이하로 많이 내려간다. 물론 기본적으로 아이들은 아직 자기 제어가 힘든 것은 사실이다. 그렇기에 그것을 잘 설득하고 설명하고 때때로는 어르고 달래어 수업을 이어나가야 할 때도 있다. 그리고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자신의 마음을 숨기지 않기에 솔직함이라는 무기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득하며 수업을 이어나가기도 한다. 그래서 조금은 미흡하더라도 수업 시간을 알차게 그리고 어릴수록 한 번에 작품을 완성하여 만족감을 얻게 하는 게 기본 포인트로 생각하며 수업을 분 단위로 더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 한다. 그렇게 준비를 해도 내가 생각했던 것의 50%로도 발휘가 되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아직은 성장이 많이 필요한 아이이기 때문에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 그만큼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려면 더 예민해야 하고 민첩해야 하고 때때로는 겪고 싶지 않은 일도 겪어야 할 경우가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아이의 울음.


보통 부모라면 아이의 울음에 어떻게 대처할까? 그리고 아이를 가르치는 강사들은 어떻게 대처할까? 나는 그동안 어떻게 대처했을까?


오늘의 생각이 떠오른 것은 바로 아이의 울음이었다.


울음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지만 어른들이 이해하기는 어렵거나 혹은 그 아이의 성향과 성격에 따라 울음의 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에 난이도 극상일 수 있다. 더욱이 아직 어린아인지라 자신만의 생각이 있지만 말로 표현을 못 하기에 설명 대신 먼저 울음을 터트릴 때가 많다. 이러한 아이들의 울음은 몇 년 간의 강사 생활에서 한 두 번 보는 것은 아니었다. 거의 매주 볼 때마다 다양한 이유로 울거나 징징거리는 아이, 혹은 엄마가 보고 싶다고 갑자기 우는 아이, 자신이 한 것이 마음에 안 들어서 우는 아이, 당장 만든 것을 집에 가져가고 싶어서 우는 아이 등등 이유는 아주 다양하다. 하지만 이 울음이 정말 어쩔 때가 아니고는 크게 대수롭지는 않았다. 상황을 급 반전하거나 수업의 특성상 미술이니 다른 재료를 주거나, 같이 수업을 하는 친구들을 통해서 함께 잘해보자는 메시지를 주거나 극상의 아이에게는 가끔은 극악 처방으로 잠시 모른 척을 할 때도 있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극악 처방에는 이런 상황을 만들어준다.


누구에게나 하듯 다정하게 울음을 터트린 첫 순간은 달래준다. 그럼 보통은 울음을 멈추기 마련이지만 한 번 터진 불편함은 아이들의 절제력을 잃어버리는 순간이니 당장 눈앞의 순간만을 쫓기 마련이다. 그래서 울음을 터트리는 순간부터는 쉽게 가라앉아지지 않을 때도 많다. 하지만 우는 아이 외에도 다른 아이들이 있기에 수업은 계속 진행해야 한다. 수업을 진행하며 아이들에게 한 바퀴 돌고 오는 사이에 우는 아이에겐 넌지시 휴지를 건낸준다. 그리고 모른척하다가 몇 분의 시간이 지나고 조용히 물어본다.


"다시 할 수 있겠니?"


혹은


"다시 하고 싶을 때, 선생님에게 얘기해 줘~"


아이에게도 잠시 생각의 시간과 진정할 시간을 줘야 한다.

그렇게 잠시의 생각 후 아이가 진정되었을 때, 다시 한번 물어본다.


"우리 다시 해볼까?"


그럼 보통의 아이들은 머쓱하지만 그 간의 시간을 보상하듯 쓱쓱 갑자기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물론 순서 맞춰하던 아이들에 비해는 부족할 수밖에 없는 상태지만 이럴 때는 마무리를 도와주며 기운을 복 돋아준다. 이내 울던 아이가 언제 울었냐는 듯 즐겁게 마무리를 하고 갈 때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한다. 특히 자주 우는 아이들은 나에게 더 많은 애정과 관심을 주기도 한다. 울음의 원인이 나와 수업의 문제보다는 내재된 마음속의 다른 불편함이 겹쳐와서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고 달램 속에 신뢰감을 갖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런 과정 중에 신뢰 외에도 얻는 것은 많다. 하지만 수업을 하는 상황이기에 소중한 시간과 수강료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기에 마냥 아이가 스스로 제어할 할 때까지 기다려줄 수 없는 것이 때때로 씁쓸할 때가 많았다. 어쩔 수 없지... 하며 어느 정도 융통성을 발휘해 마무리를 짓고는 하는 게 이런 부분이다.


내가 아이의 부모가 아니고 계속 머무를 수는 없기에.. 갖는 아쉬움.


이것은 전적으로 내가 관리했던 학원 교실 내의 모습이기에 모든 대처는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경우는 그간의 상황과는 다르기에 나에게 많은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나의 공간이 아니고 아이의 집, 엄마가 같은 공간은 아니지만 집 내에 있고 아이가 우는 목소리를 들었다. 내가 달래주고 설명을 해도 집이라는 공간에 달래줄 수 있는 엄마라는 존재가 아이에게는 더 크기에 한계점이 컸다. 내가 울린 것은 아니지만 왠지 내가 울린 것 만 같아 더욱 마음이 쓰였다. 그리고 엄마의 존재가 있기에 한 발치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고 내가 달랬던 모습이 조금은 형식적인 모습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코 그런 마음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 정도에 멈춰 서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다행히도 아이의 어머니는 경우가 있고 이해도가 높으신 분이라 수업의 방향을 바꿔서 마무리 지은 것을 이해해 주셨고 아이는 즐겁게 수업을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이런 일련의 과정으로 인해 새로 접하는 상황에 집이라는 공간의 한계점이 나에게 크게 다가왔다.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겠지 싶으니 아찔해졌다.


모든 부모의 마음은 모두 같을 것이다. 우리 아이가 울면 신경이 쓰이고 모른척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아이가 어쩔 수 없이 우는 것을 알겠지만 매시간 수강료를 지불하기에 알차게 그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할 것이다. 나 역시도 아이가 있다면 그럴 테니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들이 맴돌았다. 모두에게 넓은 마음을 바랄 수 없으니 나에게 이 부분을 해결한 또 다른 무기인 무언가가 필요하다.


또 어떤 것을 더 준비해야 할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을 쉽사리 찾지 못할 새로운 숙제가 생겼다.


좋은 해답을 찾았으면 좋겠지만 해답은 아마 없을 것 같다.


매 순간 잘 대처하는 것뿐.



P.S.

생각이 많다 보니 길이 꽤나 길어졌다..ㅎ 그간 겪었던 것들이 겹치다 보니 더욱이 그랬던 것 같다.

그간 글을 쓰고 싶었지만 안 써지던 글이 확실히 수업을 다시 시작하다 보니 예전에 했던 일들이 떠오르고 글을 써야 할 주제가 더욱 분명해질 것 같아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이런 일은 되도록이면 안 겪고 싶다는 게 나의 마음이 더 크다.. 하하~ 선생이라고 해서 다 감당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깐! 그래도 잘해보자! 아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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