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관두지 못하는 이유(1)

[전직장이야기] 딱 1년만 버티자.

by K써니

30살 전까지 나의 인생 항로에는 큰 탈선이 있지는 않았다. 물론 잠깐잠깐 부모님이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을 몰래 저질렀으며 그걸 후회하고 살아본 적도 없는 조금은 자만심이 넘쳐있었던 상태였을 것이다. 서울로 오고서는 전공으로 했던 미술 자체도 뒤로한 채 일반 회사를 다녔으며 어느 직장인처럼 탄탄히 단계를 밟고 올라가려고 기를 쓴 적도 있었다.


그런데 30살이 된 시점부터 무언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30살 이후부터의 모든 것이 나의 선택이었기에 남 탓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저 스스로 감내하고 있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렇게 초반부터 왜 이리도 버거울까 생각하며 30대 중반이 되었을 때 최절정에 치닫았다. 번아웃인지 아주 뒤늦은 사춘기인지 모르지만 긴 시간을 방황하며 끝은 한참을 일하지도 않고 경력도 전혀 상관없이 청소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그 청소 알바를 꽤나 오래 했다. 돈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냥 근근이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시도였다랄까? 물론 몸을 쓰다 보니 아무 생각 없이 빨리해야겠단 생각에 딴생각이 들지 않아 오히려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청소 아르바이트와 함께 대략 1년 여를 하며 개인사업을 하겠다며 상품 게시는 안 하고 반복적으로 샘플 작업만 하고 제대로 시작도 하지 않았었다.


그때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청소 아르바이트는 그나마 그 상황을 벗어나려는 나의 노력이었다.


하지만 경력단절이 되어버린 경력과 나의 경제적인 관념이 무너진 시점이 되어버렸고


갖고 있던 것 없던 것까지 소진하며 영혼을 끓어도 아야 했다.


지금도 회복되지 않고 있는 것이 그때의 잔재이니 가끔은 마음이 뒤숭숭하고는 한다.


청소 알바를 한참 하며 여러 심경이 복잡하게 교차했을 때쯤, 아버지의 교통사고와 사고 후유증으로 인해 뇌출혈 소식에 가슴이 덜컹 가라앉는 일이 생겼다. 멀리 떨어져 지내기에 당장 볼 수 없는 아버지, 명절에 볼 때 볼맨 소리한다며 되려 잔소리하고 올라왔던 내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동안 일적인 부분에 대해 부모님을 속였던 내가 떠올랐다.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버지는 천운인지 정말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수술 후 뇌출혈 후유증도 전혀 남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퇴원과 조금은 안정된 모습을 보고서 처음 이력서 낸 곳에서 제안한 면접 제의로 오랜 방황으로 뒤 바뀌어 버린 생활패턴을 가까스로 이겨내고 면접을 봤다. 면접은 수월하게 진행되었고 지난 경력과 나와 일정 부분의 지향점이 맞아 바로 다음 주부터 근무하기로 협의를 봤다.


그곳은 바로 목동지역 이미 전국적으로 교육열로 유명했기에 사실 거부감이 조금은 있었다. 어린아이 때부터 교육열의 대열에 서서 코스를 밟아가는 곳이었기에 학부모의 열성이 결코 만만치 않은 곳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나의 이력서 프로필에 한 줄 올리자는 마음에 시작해보자 마음먹었다. 초반에 오랜만에 다시 일하는 것이었기에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리고 왜 이리도 할 일이 많은지...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다 지나친 욕심에 야근이 그냥 일상이 되어버린 이상한 상황이 시작된 것이다.


내가 사람을 잘 못 본 것인지 첫인상과 다르게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자신만이 최고라 생각하며 모든 대화를 이끄는 원장이 버거웠다. 바쁜데 도와주지 못할 망정 굳이 말을 걸고, 수업, 정리 등 모든 것을 간섭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교실에 문이 없어서 수업 중 들이닥쳐 인상을 팍 쓰고 떠나는 모습까지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처음의 생각이 한 달이 채 되지 않고 와장창 무너져버렸다. 한참 샘플 만들던 나의 사업을 이어가기 위한 준비를 할 여유마저 사라졌고, 지나친 간섭과 업무과중이 당연한 듯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내 잘 못도 있었을 것이다. 지나치다 말했어야 했고(안 한 건 아니다..ㅎㅎ), 처음 1주일에 이중 수업을 요청하는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이 펼쳐졌을 때 그만 접었어야 했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나는 당장이 절실했었고, 일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배울게 충분히 있어 보였다. 다른 것은 몰라도 수업 부분만큼은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나는 다짐했다.


딱 1년만 버텨보자.


막 한 달이 지나고 2020년의 새해를 맞이하며 빌었던 소원조차도 1년 버티기였다.


그래, 딱 1년.


그렇게 나의 1년은 시작되었고, 묵묵히 소처럼 내 몫을 최선을 다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몸을 축내며 말도 안 되는 급여에 말도 안 되는 업무강도를 이겨내고 있었다.


힘겹게 지내며 1년이 된 시점이 되었을 때, 나는 드디어 때가 되었구나 했다. 보통 회사를 다니거나 어딜 다녀도 적어도 1년은 다녀야 하고 퇴직금이라도 받으려면 그 정도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1년 간의 시간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닌 나의 정신과 몸을 소비하고 있었던 시간이었다.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마음속에는 항상 힘겨움과 지침이 가득했고, 매번 숨 가쁘게 하루하루 나를 소비하고 지내왔다. 그동안 다녔던 어느 곳보다 힘겨웠다. 내가 잘하고 배운 것을 풀어나가는 시간이었지만 너무 강도가 심했었다.


그래도 1년은 버텼다.


이제 벗어나야지 마음을 먹을 때쯤 또 다른 일이 터졌다.


다른 선생님의 퇴사와 이어지는 시점에 사상 유례없는 코로나 19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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