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 반복을 하고 나니 그게 결코 나와는 맞는 삶의 루틴은 아닌 듯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평소처럼 늦은 기상을 반복했다. 사람은 의지력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지만 나의 의지력은 그것을 이기지 못했고 결국은 어느새 다시 일어나야 할 시간에 잠에 들었고 또다시 늦은 기상으로 하루를 맞이했다. 일하고 다시 집에 돌아오고 또 그렇게 나의 시간들을 전과 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몸에 살도 찌고 뭔가 내가 또 스스로 포기를 했구나 싶었다. 고작 아침에 일어나는 것으로 패배감을 느껴야 하다니... 씁쓸했다.
그러나 기회는 만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기회는 스스로 찾기 마련이다.
올해의 목표랄까 내가 원하던 모습으로 일의 성과를 스스로 이뤘다고 생각할 즘부터 나는 다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스스로 닦아가고 있는 터전에 완성형까지는 아니지만 1단계의 목표를 잡고 달렸고, 또 2단계를 넘어서며 나는 이전과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근 10여 년간 스스로를 얼마 많은 책찍질을 했던가 또 얼마나 스스로를 무너트리며 고뇌하고 고뇌했던가. 그게 무너져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많은 새로운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나에게는 일 외에 다른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의 루틴이 다음을 기약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이라도 더 일찍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2022년을 기약하며 습관을 조금이라도 만들어야겠다 다짐하게 되었다. 나를 위한 시간, 나를 오롯하게 느낄 수 있는 시간들, 그게 나의 다음에 대한 열쇠가 아닐까?
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루틴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우연한 계기로 식물을 제대로 키워보기로 다짐하며 한동안 식물 앓이를 시작하며 변화가 시작되었다.
조그맣게 나의 작업방 한 귀퉁이에 식물들의 자리를 마련하고 정리해가며 반복됐던 루틴에 새로움을 하나를 추가했다. 식물들을 추가로 더 들이기 전까지 나는 늦은 시간까지 식물들에 대해 보고 또 보기 시작했고, 이전에 알지 못했던 키우는 방법들을 배워나갔다. 그러다 발견한 사실들, 나의 늦은 수면시간이 식물의 수면까지 망치고 있었고 나의 무지함이 오래 키웠던 식물을 말라죽였고 나와 같이 식물들도 아슬아슬 하루를 버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반려 식물이라 부르는 만큼 그들에게도 식물로서의 온전한 삶을 주고 싶어졌다.
식물을 바라보며 나를 보게 되었고 무언가 잘 못되었다는 생각과 함께 나의 생활시간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일찍 일어나기에 앞서 가장 중요한 일찍 자기를 실천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던 일이 있을 때 조그만 더를 외치고 보고 있던 영상이 있을 때 한 편만 더 하며 늦게까지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이것부터 교정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누군가 말하는 것처럼 깨면 벌떡 그 자리를 일어나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조금 미적거리면 어떤가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시작하면 되었지 했다. 그렇게 1주일 어느 순간, 알람이 울지 않아도 스스로 눈이 떠지기 시작했다.
나를 이른 아침부터 괴롭힌다고 나아질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게 나를 위한 시작이 아닐까 생각했다.
미라클 모닝이라는 이름으로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에게 안 맞는 옷을 자꾸 입히려던 반복했던 것이 지난 시간들의 실패에 원인아 아니었을까? 너무 스스로를 옥죄어오며 괴롭혔던 것은 아니었을까? 지친 일상에 더 큰 부담감을 주며 스스로에게 어떠한 여유도 주지 않으려는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