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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치과위생사의 시작(1)

에? 그거.. 침 빠는 거??..

by 글짓는써니

공부를 적당히 했다.


못 하지도 특별히 잘하지도 않았다. 이전까지 분명 곧잘 하던 아이였는데 고등학교 3년 간 눈에 띄지도 않게 야곰야곰 내려가더니 막바지에는 적당히 하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우리 세대 대부분이 그러했듯 수능이 끝날 때까지도 뚜렷한 목표가 없었다. 어린 시절의 여러 가지 꿈들.. 예를 들면 빵집 주인이나 문방구 사장님, 선생님, 과학자, 작가나 화가 그런 것들은 정작 꿈을 이룰 수 있는 첫 관문인 고3 시절엔 별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였다.


그 시절의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빨리 내 힘으로 돈을 벌고 싶었고 자립하고 싶었다. 대학의 낭만만을 꿈꾸기에는 현실이 녹록지 않았다. 대학이란 그저 빠르게 통과해 지나쳐 가고 싶은, 단지 경제적 자립을 위한 매개체일 뿐이었다. 오로지 직업의 비전만이 중요했던 나는 장래가 유망하다는 직종과 취업이 잘된다는 학과를 찾기 시작했다.


그 당시 할 수 있었던 최대한의 써치(search) 방법을 동원하여 '치위생과'를 찾아냈다. 장래가 유망하고 취업이 용이하단다. 어쩜 이렇게 나의 니즈(needs)와 정확히 들어맞을 수가.



'그런데... 그게 뭐 하는 거지?'



지금처럼 키보드에 초성 몇 자만 쳐도 온갖 정보가 넘쳐 나오는 그런 시대가 아니었다. 두꺼운 '학과 정보책'에 한두 줄 정도로 설명되어 있던 '치위생과'에 대한 설명이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나름 문해력이 뛰어나다 자부하던 나였지만 '치위생'에 대한 설명은 끝까지 잘 이해되지 않았더랬다.

그저 '위생'이라는 단어가 몹시 낯설었고, '치과와 관련된 직종이려나..' 어렴풋이 예상만 할 뿐이었다.


물론 이때까지도 '치위생과' 만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다. '국제 무슨 학과', '무슨 경영학과'.. 뭔지는 잘 모르지만 마냥 멋지고, 속된 말로 '있어 보이는' 학과들에도 이것저것 원서를 넣어봤다. 적당히 점수에 맞춰서 넣은 탓에 여러 곳에 합격했지만 크게 고민하지 않고 '치위생과'를 선택했다. 어차피 그럴 거였으면서 애초에 왜 넉넉하지도 않은 형편에 적지도 않은 응시료를 지불해가며 여러 에 지원했던 건지 나 스스로도 내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몰랐지만 지금의 나는 알 것도 같다.

아마 '그곳' 이외에는 선택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떠밀려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보기가 주어졌음에도 끝까지 내 의지대로 결정했다는 약간의 안도감을 느끼기 위함이었으리라.




입학등록 후에도 내가 앞으로 어떤 것을 배우고, 어떤 일을 하게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 시기의 누구나 그렇듯 어른이 된다는 설렘만이 충만했춥지만 포근했던 겨울이었다. 고등학생이라는 집합 안에도 대학생이라는 집합 안에도 섞일 수 없었던 내 인생 유일의 잉여롭던 시절에 있었던 일이다.


거실 한켠에서 엄마와 고모가 전화통화 중이셨다.

내 기준에서는 한참을 서로 의미 없는 근황을 주고받으시다가 엄마는 내가 '치위생과'에 가게 되었다는 말씀을 전하셨다. 괜히 내 귀가 쫑긋 섰다. 분명 관심 없는 듯 딴짓을 하고 있었지만 온 신경이 전화기에 집중됐다. 수화기 너머에서 의아하다는 듯 두 옥타브는 높아진 고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에~? 그거 침 빠는 거?"...


순간 얼굴에 열감이 확 오르는 게 느껴졌다. 어찌어찌 전화를 넘겨받아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농담 삼아 웃으며 통화를 마무리했다. 벌게진 얼굴은 굳이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그 열감의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걸 보면 새로운 시작에 설레기만 했던 '어른도 아이도 아닌 그 애매한 존재'에게 그 한 문장은 상당한 충격이었나 보다.




내 치과위생사로서의 인생은 이렇게 저 문장에서 오는 강렬한 느낌에서부터 시작됐다.

뭔가 개운치 않은, 축복받지 못할 일인 듯한 찝찝함 말이다.

...

이 때까지만 해도 내가 이 일을 그렇게 오래, 심지어 애정을 담뿍 가지고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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