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시간을 통째로잡아놨던 환자분은 급한 일이 생겼다며 예약을 취소하셨고, 요즈음 분위기를 보아서는 신환이 줄줄이 들 것 같지도 않다.
불편한 적막감.. 치과란 본디 위잉~하는 날카로운 기계소리와 꾸룩꾹꾹 하는 석션 소리가 쉬지 않고 들리며 발소리를 내지 않고도 뛰어다니는 신기한 사람들이 어른거려야 살아있는 느낌이 드는 곳이 아니던가. 환자가 아예 없는 시간은 겉으로는 고요하고 평온해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누구 하나 편하지 않은 시간이다.
뭐라도 좀 하라는 눈치싸움. 누군가는 갑자기 기구를 닦고, 누군가는 장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누군가는 밀렸던 리콜 전화를 할 시간이다.
치과에서의 일반적인 리콜은 6개월을 기본으로 한다. 그건 꼭 치과의 영업방식 때문만은 아니다. 실제로 구강상태가 나빠지지 않게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기간이 6개월이기 때문이다.정기검진은 심지어 비용도 들지 않는다. 그래서 꽤 관리를 잘하시는 분들은 3개월 주기로도 방문을 하신다. 그럼에도 도무지 오지 않으시는 분들은 병원 차원에서 어느 정도의 '닦달'을 해 드려야 한다. 치과라는 곳의 특성상 일부 몇몇 분들을 제외하고는 일부러 찾게 되는 곳이 아니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오시게끔 하는 게 리콜 전화의 목적이다.
이러한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리콜 전화는 그리 환영받지 못한다.가벼운 문자 한 통 띠링~ 날리는 것으로 병원으로서의 소임을 다 했다고 생각하면편하기는 하다. '우리는 할 만큼 했으니 관리하지 않고 내원하지 않아 더 상태가 나빠진 건 당신 탓입니다' 하고 발을 뺄 수도 있다. 하지만 병원의 '영업'과 '구강건강 유지 증진' 그 중간 어디쯤의 이유로 또 그리 환영받지 못할 전화기를 들게 된다.
거의 대부분의 분들은 이런 전화에 비슷한 반응이다. 아예 받지 않거나, 어색한 지인의 '언제 밥 한번 먹자~'와 비슷한 맥락의 '네, 갈게요~'라는 무의미한 외침만 남기고 끊어버리거나.
차트를 넘기고 또 넘기며 리콜봇이 되어가고 있을 즈음.. 전화를 받으신 건 한 어르신이었다.어쩐 일인지 차분하게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어르신 덕분에 이전 차트를 넘겨보며 더 꼼꼼히 안부를 여쭐 수 있었다. 이러저러하니 꼭 오셔서 체크 한 번 받으시라는 말씀에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말씀을 하신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전화해주어 고마워요. 지금은 아프지 않아요. 걱정해줘서 고맙습니다. 전화 고마워요..
반복되는 낯선 감사 표현에 꼬고 있던 다리는 풀어지고 비뚜룸하게 앉아 있던 자세는 곧게 펴졌다. 아니라고 제가 더 감사하다고 진심을 담뿍 담아 멋쩍은 인사를 드리고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수화기를 내려놓고도 한동안 그대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알 수 없는 감정에 잠시 생각이 필요했다. 그 감정은 단순한 슬픔이나 기쁨은 아니었다. 처음 겪는 감사 표현에 대한 낯섦이었던 건지 의미 없는 전화 한 통마저 반가우셨던 어르신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던 건지 내 전화를 항상 기다리시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었던 건지..
무엇 때문이었는지 정확히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그 전화 통화를 마지막으로 그 날은 더 이상 리콜 전화를 돌릴 수 없었다. 그 어르신이 남겨 주신 감정의 여운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서였달까..
차트에는 지금도 빨간 별표 세 개와 '리콜은 꼭 전화드리기'라는내글씨가 선명히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