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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치과위생사의 시작 (2)

그런 거 왜 배워요?

by 글짓는써니

"에에~? 그거 침 빠는 거?"...


저 한 문장 때문에 첫 시작부터 느낌이 영 찜찜했던 '치위생과 학생'으로서의 내 대학 시절은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학과 전공서적에 빼곡히 적혀 있던 글자들은 아직도 내 역할이 무엇인지 인상적으로 알려주지 못했고 매 수업마다 페이지를 넘기고 깨알 같은 필기를 하면서도 먼 나라의 역사책을 보는 듯 현실감이 없었다. 그저 책이 무거웠고 비쌌으며 지독히도 재미없을 뿐이었다.


뚜껑을 열기도 전에 김이 빠져버린 콜라처럼 무언가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흥미를 잃어버렸던 나는 그걸 위해 이렇게까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야 하는 것인지 의심까지 들 지경이었다.


설레기만 해야 했을 대학 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 그래도 스스로 확신이 없던 그 의심에 쐐기를 박는 일이 또 벌어졌다.




충치 치료가 필요해 인근의 치과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집 근처 아주 작은 치과였던 그곳은 원장님 한 분과 친절한 직원 한 분이 근무하시는 단출한 곳이었는데 여느 치과와는 다르게 치과 특유의 지오이(Z.O.E.) 냄새보다는 항상 밥 냄새가 더 많이 나는 신기한 곳이었다.


친근한 분위기에서 이것저것 근황을 이야기하다가 이야기는 내가 치위생과에 진학하게 되었다는 데까지 도달했고 그 직원분은 역시나 몹시도 반겨주셨다.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물으시는 친근한 관심 표현에 '치주학'이나 '치위생학 개론'같은 것들을 배운다고 답했던 것 같다.


그에 대한 친절한 직원분의 대답은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런 거 왜 배워요?
어차피 나오면 다 필요 없는 건데?



세상 친절하시던 그분의 지극히 불친절한 반응에 나는 또 할 말을 잃었다. 나 역시 확신이 없었던 상태였기에 반박할 수도 변명할 수도 없었으며 심지어 수긍했던 것도 같다. 맞다고 그게 뭔지도 모르겠고 왜 배워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제 때 질풍노도의 시기를 끝내지 못했던 몸만 컸던 아이는 그렇게 또 일방적으로 '치위생'에 마음을 닫았다. 고모의 말씀에 이미 한 번 마음을 다쳤던 소심했던 아이는 친절하기 그지없는 치과 직원분의 대답에 같은 곳을 한 번 더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그때 당시의 나는 그랬다. 지금의 나였다면 치주학과 치위생학개론이 무엇인지, 잘 알고 행하는 것과 모르면서 흉내만 내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치과위생사의 사명과 직업윤리에 대해 쉬지 않고 '다다다다' 해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나는 습관처럼 학교에 다니고 수업을 들었지만 치과에서의 여러 직종과 역할의 차이, '간호사, 간호조무사, 치과위생사, 치과기공사, 무면허자' 뭐 그런 개념조차 하나도 정립이 되어 있지 않았던 상태였나 보다. 그래서 너무도 당연히 그분이 치과위생사라고 여겼으며 실제로 임상에 계시는 그분이야 말로 어떤 게 필요하고 그렇지 않은지(학과의 오래된 교수님들보다) 제일 잘 알고 있는 게 아니겠냐며 단단히 믿는 큰 실수를 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꼰대 치과위생사는 첫 시작부터 이토록 역경이 많았더랬다. 계속 방해하는 마냥 흔들어댔고 그것들은 나를 더욱 집중할 수 없게 했다. 수업은 재미없었고 공부는 하기 싫었으며 노란 안경을 쓴 파란 펭귄처럼 노는 게 제일 좋은 시간들이었다.


한참이 지나고 지금은 친구와 웃으며 서로 장난도 치는 이야기들이지만 그때 당시의 어린-심지어 아무것도 모르는- 치위생과 학생에게는 치과위생사를 좋아하지 않을 만한 아주 타당한 이유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부터 시작할 이야기는 새드엔딩(sad ending) 아니다. 주변에서 흔드는 대로 하릴없이 흔들렸지만 부러지거나 뽑히지 않고 그 시간을 지나왔다. 특별히 이기려 한 것도 아니고 버티려 노력한 것도 아니다. 그저 나는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치위생에 대한 생각과 주변 환경, 내 사명감까지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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