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한 문장 때문에 첫 시작부터 느낌이 영 찜찜했던 '치위생과 학생'으로서의 내 대학 시절은 역시나 예상대로였다.
학과 전공서적에 빼곡히 적혀 있던 글자들은 아직도 내 역할이 무엇인지 인상적으로 알려주지 못했고 매 수업마다 페이지를 넘기고 깨알 같은 필기를 하면서도 먼 나라의 역사책을 보는 듯 현실감이 없었다. 그저 책이 무거웠고 비쌌으며 지독히도 재미없을 뿐이었다.
뚜껑을 열기도 전에 김이 빠져버린 콜라처럼 무언가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흥미를 잃어버렸던나는 그걸 위해 이렇게까지 내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야 하는 것인지 의심까지 들 지경이었다.
설레기만 해야 했을 대학 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안 그래도 스스로 확신이 없던 그 의심에 쐐기를 박는 일이 또 벌어졌다.
충치 치료가 필요해 인근의 치과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집 근처 아주 작은 치과였던 그곳은 원장님 한 분과 친절한 직원 한 분이 근무하시는 단출한 곳이었는데 여느 치과와는 다르게 치과 특유의 지오이(Z.O.E.) 냄새보다는 항상 밥 냄새가 더 많이 나는 신기한 곳이었다.
친근한 분위기에서 이것저것 근황을 이야기하다가 그 이야기는 내가 치위생과에 진학하게 되었다는 데까지 도달했고 그 직원분은 역시나 몹시도 반겨주셨다.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물으시는 친근한 관심 표현에 '치주학'이나 '치위생학 개론'같은 것들을 배운다고 답했던 것 같다.
그에 대한 친절한 직원분의 대답은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런 거 왜 배워요? 어차피 나오면 다 필요 없는 건데?
세상 친절하시던 그분의 지극히 불친절한 반응에 나는 또 할 말을 잃었다. 나 역시 확신이 없었던 상태였기에 반박할 수도 변명할 수도 없었으며 심지어 수긍했던 것도 같다. 맞다고 그게 뭔지도 모르겠고 왜 배워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제 때 질풍노도의 시기를 끝내지 못했던 몸만 컸던 아이는 그렇게 또 일방적으로 '치위생'에 마음을 닫았다. 고모의 말씀에 이미 한 번 마음을 다쳤던 소심했던 아이는 친절하기 그지없는 치과 직원분의 대답에 같은 곳을 한 번 더 세게 맞은 느낌이었다. 그때 당시의 나는 그랬다.지금의 나였다면 치주학과 치위생학개론이 무엇인지, 잘 알고 행하는 것과 모르면서 흉내만 내는 것이 얼마나 다른지, 치과위생사의 사명과 직업윤리에 대해 쉬지 않고 '다다다다' 해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나는습관처럼 학교에 다니고 수업을 들었지만 치과에서의 여러 직종과역할의 차이, '간호사, 간호조무사, 치과위생사, 치과기공사,무면허자' 뭐 그런 개념조차 하나도 정립이 되어 있지 않았던 상태였나 보다. 그래서 너무도 당연히 그분이 치과위생사라고 여겼으며 실제로 임상에 계시는 그분이야 말로 어떤 게 필요하고 그렇지 않은지(학과의 오래된 교수님들보다) 제일 잘 알고 있는 게 아니겠냐며 단단히 믿는 큰 실수를 하고야 말았던 것이다...
꼰대 치과위생사는 첫 시작부터 이토록 역경이 많았더랬다. 계속 방해하는 마냥 흔들어댔고 그것들은 나를 더욱 집중할 수 없게 했다. 수업은 재미없었고 공부는 하기 싫었으며 노란안경을 쓴 파란 펭귄처럼 노는 게 제일 좋은 시간들이었다.
한참이 지나고 난 지금은 친구와 웃으며 서로 장난도 치는 이야기들이지만 그때 당시의 어린-심지어 아무것도 모르는- 치위생과 학생에게는 치과위생사를 좋아하지 않을 만한 아주 타당한 이유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부터 시작할 이야기는 새드엔딩(sad ending)은 아니다. 주변에서 흔드는 대로 하릴없이 흔들렸지만 부러지거나 뽑히지 않고 그 시간을 지나왔다. 특별히 이기려 한 것도 아니고 버티려 노력한 것도 아니다. 그저 나는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치위생에 대한 생각과 주변 환경, 내 사명감까지도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