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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써니 Mar 25. 2021

출산 직후 내 아이가 낯설었나요?

아픈자리

"우선 빨리 대학병원 예약부터 해요. 예약이 쉽지 않을 거야.

여기 OO병원이랑 XX병원이 유명하니까 일단 전화해봐요."




열달을 함께 먹고, 자고, 숨쉬던 아이는 하루아침에 한 몸이던 엄마와 타인이 되었다.

아이는 세상이 낯설었고 엄마는 아이가 낯설었다.



낯선 병원에서도 잘도 잤다.

이틀간의 유도분만으로 피를 많이 쏟은 탓에 철분 수치가 급격히 떨어져 수시로 쓰러지기 일쑤였지만 그럼에도 노곤노곤 누워 지내는 터라 크게 힘겹진 않았다.


병실에서 남편과 담당 간호사 선생님이 무슨 이야기를 나눴다. 나만 모르는 얘기.

약기운에 몽롱한 상태였는지 이제 아이를 낳았으니 내 할 일은 다 했다는 생각에 열심히 들어볼 의지도 없었는지 그리 심각하게 묻지도 듣지도 않고 넘겼던 기억이다.



아이 다리가 빠졌단다. 

어이쿠, 출산 중 쇄골이 부러지고 뼈가 다치는 아이들도 있다더니 우리 아이는 다리가 빠졌나 보다. 그래도 잠시 빠진 관절은 넣으면 되고 부러지거나 크게 다친 건 아니니 별일 아니라고 여겼다. 이때 까지는..



병원에 딸려있는 소아과 원장님께서 설명해 줄 것이 있다며 찾으신단다. 이제야 ' 뭔가 심각한 일인가?!' 조금 걱정스럽기 시작한다.


"선천적으로 고관절이 빠져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선천성 고관절 탈구라고 하는데 사실 의심만 되는 거지 대부분 별 일 아니에요~ 일반 소아과에서는 정확히 진단할 방법이 없어서 딱히 드릴 말씀이 없네요~근데 아마 괜찮을 거예요~"


대체 그렇다는 건가, 아니라는 건가, 괜찮다는 건가, 안 괜찮다는 건가.


그럼 다른 병원을 가봐야 하냐는 질문에도 원장님은 그저 두루뭉술 뭐 나중에도 계속 의심이 되시면 큰 병원에 가보시라는 도무지 말의 저의를 알 수 없는 말들만 횡설수설 이어가셨다.


신랑에게도 전화로 원장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했다.

"선천성 고관절 탈구라는 게 있대~근데 아마 아닐 거라고는 하시는데.. 처음엔 의심이 좀 되셨었나 봐~"


조리원에 올라와서 할 수 있는 건 검색뿐이었다.

'고관절 탈구' '선천성 고관절 탈구' '고관절 이형성증' '아기 고관절 진단' 내 검색 이력에는 온통 고관절, 고관절이었다. 자칫 평생 다리를 절거나 치료중 고관절부위가 괴사되는 경우도 있다는 무섭고 너무나 멀게 느껴지는 이야기들. 하지만 이렇다 할 속 시원한 내용은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마침 조리원 원장님이 또 급히 찾으신다. 바쁘다 바빠.

오랜 경력의 신생아실 간호사셨던 조리원 원장님은 소아과 원장님보다 훨씬 부드럽게, 쉽게, 하지만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이건 초기 대처가 중요해요. 대학병원 예약도 쉽지 않으니 빨리 전화부터 해서 빠른 날짜로 예약부터 잡아요~"

도무지 상황판단이 되지 않던 나도 이 즈음되니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거.. 괜찮은 게 아니구나.'


방에 돌아와서 유명하다는 소아정형외과를 싹 찾았다. 원장님께서 추천해주신 병원들부터 전화를 돌리기 시작하는데 짧게는 한 달부터 길게는 삼 개월 이상까지 대기해야 첫 진료를 볼 수 있었다. '오래 지체하면 안 된댔는데...' 일단 가능한 예약은 잡아놓고 중간에 변경이 되는 자리에 들어가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대학병원 예약 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계속 무한 검색을 반복하고 아이의 다리를 눈여겨보고 기저귀를 3개씩 빵빵하게 채우는 일뿐이었다. 이런저런 글들을 찾아보며 아침에는 괜찮을 것 같았다가 또 저녁때는 걱정스러웠다가를 반복하면서 남몰래 탓할 거리들을 생각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선천성 고관절 이형성증은 아직 원인이 불분명하다.

첫째 아이, 여아, 왼쪽 다리에서 많이 발견된다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원인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이 탓은 아닌 게 확실하니 아이가 아니라면 내내 함께였던 내 탓인 게 분명했다. 아이가 큰 데 비해 배가 충분히 더 커지지 못해 갑갑하게 했던 내 탓이었고 매일 갈비뼈를 밀어대는 통에 밀어대는 발바닥을 고만 밀라며 손가락으로 꾹꾹 누른 내 탓이었다.


조리원 생활내내 신생아실의 '아픈 아이' 전용 특별관리 자리에 붙박이로 자리할 수밖에 없었고 나에게 그 자리는 보기만 해도 '아픈 자리'가 되었다.




열 달 동안 핏길을, 숨길을 공유하며 소통하고 교류했던 아이는 출산 후 조금의 낯섦을 느꼈던 내 마음마저 눈치채고 있었는지 낯설어할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그 어색한 감정은 이미 아픈 아이에 대한 모성애와 미안함이 범벅되어 없어진 지 오래였고 미안함은 얼굴만 봐도 가슴이 쩌릿 거리는 사랑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었다.




치카쌤써니의 블로그

고관절탈구 엄마의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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