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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써니 Jun 03. 2021

엄마 대신 우는 아기


으스러질 것 같아 품에 꼬옥 안을 수도 없었던 작은 아기를 억지로 카시트에 얹었다.

신생아 시트와 둘둘 말은 담요, 혹시 몰라 챙겨 온 수건까지 함께였지만 그럼에도 남는 공간을 보니 오히려 더 마음이 애렸다.




잔병치레는 많았으나 큰 병은 없었던 대학병원 경험은 전무했던 촌스런 엄마는 수시로 베드가 지나다니고 모두가 분주한 병원이 낯설기만 했다.


가 할 수 있는 건 봇짐 싸서 서울에 갓 올라온 깡촌 꼬마 아이처럼 불안한 눈빛으로 두리번거리는 일뿐이었다. 다만 내 품엔 봇짐 대신 조금만 힘을 줘도 부서질 것 같던 작은 아이가 있었다는 게 달랐다면 달랐을까.


대학병원이니 당연한 일일 테고 소아정형외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냥 스치듯 보아도 아파 보이는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아이도 내 아이고 저 아이내 아이인 양 괜스레 마음이 려와서 일부러 비겁하게 눈의 초점을 흐렸다.


괜찮을 거라는 믿음과 안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가슴은 계속 콩닥거리기만 했다.


대기가 길어지며 눈도 귀도 제 역할을 못하고 있을 즈음 이름이 호명됐다.

콩닥콩닥.

마음 졸인 시간이 무색할 만큼 진료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약간 있네~심하지 않아요~괜찮아~이 정도는 일단 뭐.. 기저귀 3개씩 차고 다음에 와서 사진 봅시다."


다른 일이었다면 정확한 진단 없이 기본검사만 하고 돌려보내는 대학병원의 방침에 욕을 하고 또 했겠지만 이때 나에게는 그런 것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괜찮아~"라는 세 글자만 인상 깊게 들어와서 다른 거야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역시 소문대로 명의 시구나!'


집에 오는 마음이 어찌나 가뿐한지  불과 몇 시간 전 가슴 애리던 카시트의 휑한 공간마저 더 이상 별 것 아닌 것으로 느껴졌다.


다음 예약까지는 또 한참 기다려야 했다. 초기 진단과 치료가 가장 중요하다는 고관절 이형성증이 이렇게 예약이 어렵다면 대체 어느 누가 초기에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일단 괜찮을 거란 말을 들었다.

'그래, 초기 진단도 치료도 난 필요 없을 테니 상관없지 뭐'

진심으로 안심하고 있었던 건지 의식적으로 안심하고자 노력했었던 건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혹시 몰라 인근의 다른 대학병원에도 예약해뒀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취소를 하려다가 워낙 어렵게 예약한 곳이라 그냥 가볼까 싶어 졌다.


'그래, 한 군데 더 가서 괜찮다 듣고 오면 훨씬 더 안심되겠지'



가벼운 마음으로 준비하며 병원 방문 이후의 동선까지 계획했다.

"여보, 아주대 갔다가 ○○도 들렀다 오자~"


이때 대학병원은 그저 잠시 들르는 경유지일 뿐이었다.





역시나 분주한 병원

아픈 사람들

오래 걸리는 대기시간


새로운 장소였음에도 이번엔 그리 낯설지도 불안하지도 않았다.


역시나 호명되고 조심히 아이를 눕혔다.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다리를 들었다 내렸다 벌렸다 오므렸다를 반복한다.

생각보다 길어지는 검사에 이제야 싸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아아.. 고관절 탈구된 거 맞고. 심각한 정도는 중간보다 더 안 좋은 상태예요. 바로 엑스레이 촬영하고 초음파 부터 봅시다.





삐이------

머릿속에서 삐 소리가 들렸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초음파와 엑스레이에서도 누가 봐도 틀어져 보일 만큼 제자리를 한참 벗어난 다리뼈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는 나 대신 울기 시작했다.

하얗고 단단한 벨트를 가슴팍부터 꽁꽁 묶어 아직 채 펴지지도 못한 다리를 잡고 감아 벌리는 자비없는 장치를 맞추는 내내 병원이 떠나가도록 울어댔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낯설고 불안한 아이에게 계속 내 손길을 목소리를 대어주는 것뿐이었다.


"괜찮아~응응~많이 놀랐지? 엄마 여깄어. 괜찮아~괜찮아질 거야~"


대체 뭐가 괜찮다는 건지 목적지가 어디인지도 모르겠는 소리만 계속 흘러나왔다.


얼굴이 벌게지도록 우는 아이를 다시 꼬옥 안았다. 온몸을 옥죄는 단단한 장치의 촉감이 얼마나 낯설지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세상에  나온 이래 이렇게 우는 건 본 적이 없었다. 아이가 대신 우니 엄마는 울 필요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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