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써니 Jun 23. 2021

산후우울증이 없었던 이유

"산후 우울증이 없었다고?"

"응, 크게 못 느끼고 지나간 거 같아~~"

"에이~그럴 리가~ 다들 한 번씩은 오는 건데~"

"나.. 아무 정신이 없었어~ㅎ"





나는 이렇다 할 산후우울증이 없었다.

특별히 슬프지도 않았고 외롭지도 우울하지도 않았다는 내 대답에 친구가 말도 안 된다며 난색을 표하는 이유는 그 나름 힘든 시기를 보냈던 탓일 게다.


 


제 몸도 못 가누는 갓난쟁이의 탈구된 다리를 꽁꽁 잡아 묶어놓았던 보조기를 맞추고 오던 날 교수님께서 딱 한 가지 당부를 하셨다.


"절대 임의대로 장치 풀어주면 안 됩니다. 아이 힘들어한다고 엄마들이 울면서 맘대로 풀어놓는 경우가 있어. 절대 안 돼요~"


물론 나부터도 눈앞에서 당장 저 몹쓸 보조기를 풀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자유로운 움직임을 제한하는 그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장치는 아이는 물론이고 보고 있는 사람에게도 곤욕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는 말씀에 한 번 더 의지를 다졌다. 다행이라면 결코 마음이 약해져 풀어놔버릴 엄마는 아니었던 게 다행일까.



집에 온 아이는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댔다. 

똥을 싸고 울어도 장치 때문인 것 같았고, 배가 고파 울어도 장치 때문인 것 같았고, 졸려서 칭얼대는 것마저 장치 때문인 것 같았다. 

똥을 싸고 울어도 미안했고, 배가 고파 울어도 미안했고, 졸려서 칭얼대도 내가 미안했다.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미안하다가는 아이가 내 '미안함'을 닮을 것이 뻔했다. 함께 하는 사람의 감정을 고대로 가져갈 것이 뻔한 아기에게 미안한 표정과 미안한 말소리와 미안한 제스처를 닮게 한다는 건 너무나 슬픈 일이지 않은가. 나는 이 원인조차 알 수 없는 아이의 아픔에 대해 더 이상 그만 미안해해야 했다. 



특이하게도 옆으로 누워 자는 걸 편안해하던 아가는 장치 덕에 다시는 옆으로 누울 수 없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모로 반사로 가슴팍을 속싸개로 눌러주어야 안정을 느낄 시기에 온몸을 벌린 채로 묶여있는 상태라니.. 온 가슴을 휑하니 하늘로 드러내고 다리를 벌려 들고 버텨야 하는 아기는 얼마나 허전하고 많이 힘들었을까. 수시로 오는 모로 반사를 그대로 겪어야 했던 아이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안고 있는 것뿐이었다. 낮시간은 물론이고 밤에도 아이 위에 내 몸을 반쯤 얹은 채로 시간을 보냈다. 잤다는 표현이 어색할 정도로 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나날들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뱃속에 있을 때만큼이나 찰떡같이 붙어 지냈다. 대부분의 시간 서로 얼굴을 보며 웃고 또 웃었다. 아이가 자기의 상황을 슬퍼할 겨를이 없도록 더 많이 웃었다. 그림책을 봤고, 동요를 들었고, 장난감을 흔들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으니 행복해진다는 말처럼 우리가 함께 웃는 동안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했다.


한 몸처럼 붙어 지낸 덕에 그때의 아이의 기분 표정 냄새 소리 뭐하나 흘러 보내지 않고 고대로 담을 수 있었다. 아이의 무의식에도 엄마의 표정 눈빛 냄새 목소리 그 모든 게 고대로 담겨 있으리라..




배려 없고 자비 없는 보조기의 거칠은 질감에 아이의 연한살이 뜯기고 갈릴까 제일 부드럽고 도톰한 천을 골라 자르고 꼬맸다. 여러 개의 벨크로와 벨트가 복잡하게 발을 잡아야 했기에 항상 맞지도 않는 긴 양말을 이리저리 잘라 신겼다. 그 덕에 그 예쁘고 귀한 시기 아가의 작고 연한 발을 만져본 기억이 거의 없다. 지금도 다른 아가들의 작은 발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 아기의 작았던 맨발이 너무나 보고 싶어 그 아쉬움에 괜시리 목 깊은 곳 어딘가가 꾸욱 막혀온다. 


유독 눈물이 많고 감상에 잘 젖는 엄마는 그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긴 긴 시간 한 번도 울지 못했다. 내 인생의 어느 순간보다 많이 웃었고 어느 시간보다 많이 즐거웠다. 시간이 흘러야 끝나는 일이라는 걸 알기에 하루가 일 년 같고 한 달이 백 년 같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우리는 분명 행복했다.


혹독하기만 했던 장치도 어느 순간 귀여운 멜빵 같아 보였다. 어깨의 버클마저 꽤나 귀여웠다.

아가는 장치를 하고도 내가 부르는 노래에 맞추어 다리를 까딱이며 춤을 추곤 했고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행복하다는 표정은 여전했다.






주먹을 꼬옥 쥐고 있던 아이의 손도 어느새 많이 풀어졌다.

장치를 푸르던 날 유독 눈물이 많던 엄마는 드디어 울기 시작했다. 슬펐고 억울했고 힘들었어서 나는 눈물은 아니었다. 그저 너무 기뻐서 너무 행복해서 너무 다행이어서...


그 뒤로 원 없이 옆으로 누워 잤고 부쩍 커버린 맨발을 고대로 내놓고 있어도 되었다. 걱정들이 무색하게 얼마 지나지 않아 뒤집고 앉더니 기저귀 찬 빵빵한 엉덩이를 하늘 높이 치켜들기도 했다.


한참이 지나 아무거나 잡고 일어서기 시작했고 이내 걸음을 걸었다. 

아이의 첫걸음은 누구에게나 대견하고 기쁜 일이지만 나에게 그것은 남들보다 몇 곱절은 더 큰 기쁨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누군가에겐 당연한 일이지만 나에게 그 걸음은 감격이었고 감동이었다.






나는 지금도 그 시절의 사진을 보면 눈물부터 주르르 흐른다. 탁하고 진한 눈물이 아니고 묽고 가벼운 눈물이 양껏 떨궈진다. 아마도 이 눈물은 그 시절 못 울었던 울음을 다 갚을 때까지 계속되지 싶다.


안타깝고 안쓰럽기 그지없었던 그 시간들. 우리는 그 시간 안에서도 우리의 시간을 살았다. 우리의 행복을 쌓았다. 지금도 세상을 밝힐 정도로 환히 웃을 수 있는 아이의 웃음은 분명히 그때 만들어졌다.



아무것도 몰랐던 반쪽짜리 엄마는

이렇게 정신없이 '진짜 엄마'가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대신 우는 아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