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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써니 Jul 18. 2021

근사한 엄마의 비밀

결함마저 사랑해주는 사람

엄마의 자존감은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누군가에게 온전한 지지를 받고 흔들림 없이 애정을 받은 사람은 자존감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자존감'은 타인의 인정이나 개입 없이 자기 스스로 자신을 존중하게 되어야 한다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중요한 첫 베이스는 분명 주변 관계, 타인이다. 타인의 정서적 지지 없이 스스로에 대한 존중만 강하다면 그건 자존이 아닌 오만이지 않을까.


아이를 낳고 사회와 멀어지면서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여성들은 한 둘이 아니다. 남 이야기가 아니다. 나부터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캄캄한 곳으로 곤두박질칠 때가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는 원동력 또한 결국은 '아이'다. 세상에서 나를 가장 가치 있게 만들어 주는 사람. 의심할 여지없이 순수하게 사랑하고 온전히 의지하고 끊임없이 그것을 표현해주는 사람.


태어나서 이렇게 깊은 애정을 받아 본 일이 있었던가? 내 기억에는 없었다. 있었다고 할지라도 나는 몰랐다는 것이 더 정확한 말이려나...





티브이나 책이나 영화 음악 온갖 매체들에서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비할 곳이 없는 사랑이고 가늠할 수 조차 없으며 심지어 신이 한 명 한 명한테 올 수 없어서 엄마를 보낸 거고... 맞다. 분명히 가슴 뜨겁도록 사랑한다. 그럼에도 나는 가끔 내가 아이를 사랑하는 정도와 아이가 나를 사랑하는 정도를 비교하곤 한다. 굳이 의미도 없는 비교. 내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비교의 결과는 역시 아이의 사랑이 몇 곱절은 더 크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 내 사랑이 가볍고 비루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저 아이의 그것이 훨씬 더 진하고 묵직할 뿐.  


아직 어린, 세상에 나온 지 몇 해 되지 않은 아이에게 엄마는 세상이고 우주고 신이다. 사랑하지 않는 것이 온전히 사랑하는 일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다. 작디작은 사람이 어찌 세상을, 우주를, 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가끔 뉴스나 기사에서 싫어하는-싫다는 가벼운 말로는 표현이 안될 정도로 경멸하는-사건, 사고들이 나오곤 한다. 부모에 의한 아이의 고통에 대한 것이 그것이다. 특히나 요즘 같은 때에는 하루 걸러 하나씩은 눈에 보여 마음을 어지럽힌다. 사건들은 누가 더 사악할 수 있는지 내기라도 하는 듯 인간의 한계를 넘고 또 넘는다. 그것들을 보며 다시금 절절한 '부모의 사랑'에 대한 회의가 들곤 한다.


무책임하기 그지없는 뉴스는 항상 사건만을 이야기한다. 그 이후는 없다. 나의 상상 속 그 수많은 사건들의 마지막은 항상 새드엔딩이다. 자신을 고통스럽게 한 부모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또 그 부모를 용서하고 그 부모를 그리워하며 선한 타인보다도 악한 부모 안에서 안정을 느낀다. 같은 상황은 반복되고 그럼에도 아이는 벗어나지 '않는'다...


아이에게 부모는 그런 존재다. 끔찍한 결함이 있더라도 그 자체로 가치 있고 순수히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있다. 그게 그저 아이를 순수히 사랑하기 때문에 나오는 에너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엄마의 에너지의 원천은 결국은 '아이'다. 어떠한 결함이 있건 간에 있는 그대로 온전히 사랑해 주고 어떠한 모습이건 푸석한 얼굴을 쓸어주는 '작은 사람'이 엄마의 자존감 씨앗에 끊임없이 물과 비료를 퍼다 날라 주기 때문이다. 그 물과 비료가 영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분명 그러할 것이다. 언젠가 그의 세상이 커질 때 즈음 다른 누군가에게도 그것들을 나눠 주어야 할 테니까 말이다.



나의 역할은 그날이 올 때까지 열심히 사랑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받은 사랑을 양분 삼아 싹을 틔우고 가지를 뻗는 것이다. 계속 자라다 보면 아이보다 조금 먼저 조금 높이 자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 그때는 조금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될 수 있을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나를 키운다.

'엄마'라는 자리는 나를 더 근사한 사람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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