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써니 Feb 17. 2021

나는 아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20대의 새파랗게 젊던 시절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식당에 갔을 때였다. 평일 낮시간이라 그런지 여기저기 아기와 함께 한 엄마들이 많았고 친구는 여지없이 불편함을 드러냈다.


"조만간 전쟁통이 되겠구만."

"응? 왜."

눈빛으로 아기들의 존재를 알리는 친구를 보며

"아..." 바로 이해하고는 눈을 맞추고 우리끼리만 알 수 있는 웃음을 웃었다.




...

이때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지금은 같은 자리에 다른 입장으로 앉아있는 나는 그 아기들에게, 엄마들에게 조금 더 따뜻한 눈길을 주지 못했던 게 그저 미안할 뿐이다.


나는 아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우연히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에게도 미소 한 번 나누어주지 못하는 사람이었고 직장에서 자주 마주치는 아기들에게도 곁을 내주지 않았다. 지인이나 친구들이 결혼해서 주변 여기저기 아기들이 많아졌을 때에도 잠깐 안아주는 것도 만지고 예뻐하는 것도 어려웠던 사람이었다.


그랬던 나도 결혼을 하고 계획했던 둘만의 시간을 다 보낼 즈음 아기가 있었으면.. 싶었던 것 같다. 그저 순리 인양, 결혼 이후의 당연한 수순 인양 특별한 계획도, 책임감도, 사명감도 없었던 채로 말이다. 그런 내 마음을 들켰는지 아이는 쉽게 와 주지 않았다. 인생의 대부분의 일들을 계획 하에 해 나가던 나였는데 인생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서 하고 싶었던, 하려 했었던 모든 것들이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밀땅의 효과인가? 싶을 만큼 점점 아이가 간절해졌다. 어느새 다른 계획들이야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신랑을 닮은 예쁜 아기 하나면 아무래도 다 좋을 것 같았다. 

이 시기를 통해 아이는 자기가 올 자리를 견고히 만들었다.


그즈음 이제 되었다며 이런 나엄마로 인정해주겠다는 듯 나를 품어줄 만한 아기가 내게로 왔다.  생각보다 조금 늦은 시기에 밀땅하듯 한참 나를 애태우더니 천사 같은 아이가 나에게도  주었다.




기다림을 겪다가 찾아온 아이여서였는지 배에서 뚱땅뚱땅 집을 지을 시기부터 아이가 온 걸 알아버렸다. 낯선 감정이었지만 좋았다. 임신이라는 걸 시작한 내 몸에 대해 아주 예민하게 느끼고 있었고, 아직은 심장밖에 뛰지 않는 5mm짜리의 배아마저도 이미 하나의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실 나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가족에 대한 애정, 내 사람에 대한 애정이 워낙 큰 나였던지라 내 아이가 생기고 나면 아마 누구보다 깊게 사랑 빠지게 될 것이라는 걸 말이다. 나는 아기들을 싫어했던 게 아니라 무서워했던 모양이다. 그 작고 소중하고 연약한 생명을 어찌하지 못하는 그 상황을 말이다.



길고도 짧던 임신 기간 동안 신랑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종종 있었다. 지방 발령을 받은 신랑과 함께 내려가서 생활했었지만 임신한 이후로는 편의가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 생활할 수가 없어 홀로 다시 원래의 집으로 올라와서 지내고 있던 참이었다. 신랑은 먼 길도 마다하지 않고 오고 가며 자신의 귀한 시간을 출퇴근길에 내어 주곤 했지만 가까운 곳에 있는 부부들처럼 항상 함께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짐에도 불구하고 혼자인 것 같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전혀 외롭지 않았다. 도서관, 집, 마트, 공원을 다니며 뱃속의 아이와 항상 이야기했다. 누가 봤으면 '저 여자 왜 저래~'라고 했을 만큼.. "책 보러 갈까?", "뭐 먹고 싶어? 뭐 사러 갈까?", " 산책하러 가자~" 

뱃속에서 딸꾹 거릴 때도 발로 갈비뼈를 부서져라 밀어재낄 때에도 우리는 항상 말을 주고받듯 소통하고 공감했다.

 


...

아이가 막상 나오면 처음엔 낯설고 어색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말도 안 돼~"라고 이야기했지만 한편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도 생각했다. 탯줄이라는 구조물을 통해 한 생명 인양 붙어 있다가 어느새 나와 별개가 되어 버린 타인이 된다니 어색할 수도...


아이가 나오는 날까지 "우리 곧 만나, 힘내!!"라며 서로(사실 나 혼자였지만) 응원을 한껏 한 후에 대면했지만 나 역시도 내 일부가 아닌 내 몸 밖의 아이에게는 약간의 낯섦을 느꼈던 것 같다. 

이때까지는 알지 못했다. 이 낯섦마저도 아이 스스로 깨뜨려 나를 진짜 '엄마'로 만들어 줄 거라는 걸 말이다. 




세상에 태어난 이레 가장 행복했던 날. 

그 날의 사진을 보면 산발된 머리에 쉰 목소리, 몰골이 말이 아닌 상태에서도 아이를 품에 안은 표정만은 세상 다 가진 행복한 표정이다.


한때 나였던, 내 일부였던 타인.

그렇게 너를 처음 만났다.



매거진의 이전글 데자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