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냄새로 기억하는 것 같아
"엄마엄마, 사람은 냄새로 기억하는 것 같아.
나는 눈을 감아도 엄마가 엄마인지 알아.
엄마 냄새는 마음이 편안해져. 노곤노곤해지거든."
캄캄한 밤 뒹굴거리던 침대에서 네가 눈을 꼭 감고 하던 말.
곯아떨어지기 직전 옹알옹알 하던 말.
'연애의 목적'이라는 영화가 있다. 한창때의 강혜정과 박해일이 나오는 제법 진한 영화다. 호불호가 강한 그 영화를 티브이도 아니고 영화관에서 봤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명동인가 강남의 어느 CGV에서 함께 봤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뭔지 모를 찜찜함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보고 나와 친구와 이런저런 감정들을 공유했다. 많은 여자들이 '불호!! 끔찍!!'을 외치기도 하는 그 영화이지만 나는 그 영화를 제법 '호' 했다. 여전히 그러하다.
나는 그 영화의 그 어떤 자극적이고 진한 장면보다 유독 한 장면을 오래 기억한다.
극 중 교생 선생님으로 나오는 강혜정은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그런데 유독 박해일과 함께면 잠이 쏟아졌다. 그냥 잠이 드는 정도가 아닌 그간 못 잔 잠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듯 잠이 쏟아지는 그 여주인공을 보며 참 의아하면서도 인상에 깊이 남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저 상대가 되게 편안한 사람인 건가? 가장 나다운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인 건가? 정도의 생각이었다.
나는 유독 잠이 오지 않는 밤 오빠(남편)에게 나를 재우라 명한다. 나를 가장 잘 재울 수 있는 사람이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부러 다가가 냄새를 맡겠다며 킁킁대기도 한다. 진저리 치며 나를 밀쳐내지만 웃는 얼굴을 보면 내심 싫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그래, 나는 남편의 냄새를 맡으면 잘 자는 아내다. 그 아름답지도 깔끔하지도 청량하지도 않은 남편의 쿰쿰한 냄새는 나에게 수면제와 안정제, 딱 그거다.
꼬맹이는 마음이 울적하거나 힘이 빠질 때 나에게 안겨 힘을 비축한다.
"엄마! 킁킁!"
엄마 냄새를 잔뜩 저장하고 다시 제 길로 떠난다. 잠을 잘 때도 그렇다. 쏟아지는 잠에 빠지기 직전까지 엄마 품에서 끊임없이 조잘거리다가 기절하듯 잠들어버린다. 눈을 감은 채로 그저 엄마 냄새만 잔뜩 킁킁거릴 때도 있다. 뭐가 좋은지 입가에 미소는 물론이다.
"엄마엄마, 사람은 냄새로 기억하는 것 같아. 나는 냄새를 맡으면 생각이 나거든."
나 역시 특정한 냄새가 휙 지나가면 생각나는 장면이나 사람이 있다. 이 꼬맹이도 그걸 알게 된 모양이다. 나중에 나아중에 엄마 냄새를 맡으면서 뭘 기억해 낼지는 모르겠지만 매번 웃고 있는 걸 보면 그 기억이 나쁘진 않을 것 같아 다행이다.
나는 이제 내가 '연애의 목적'을 왜 '호'하는지 조금은 안다.
내가 의아하면서도 인상적이게 본 그 장면은 나에게 '사랑'으로 이해되었다. 그 장면을 사랑의 한 모양으로 받아들인 나는 그 외의 어마어마한 것들을 조금 흐린 눈으로 볼 수 있었던 거다. 남자주인공이 박해일이었던 것도 신의한수였겠지.
내가 남편 옆에서 꿀잠을 자는 것도, 아이가 내 품에서 곯아떨어지는 것도 나에겐 다 '사랑'이다. 아이가 냄새로 사람을 구별하듯 나는 냄새로 '사랑'을 구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