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빠들은 맨날!!
한껏 썽이 난 목소리
“왜 아빠들은 맨날 새엄마를 데려오는 거야?!!!!”
그렇다.
콩쥐네 아빠도
신데렐라 이빠도
백설공주 아빠도
심지어 봉사라던 심청이네 아빠도…
한 자리에 누워 책을 쌓아놓고 줄줄 읽어대던 아이가 갑자기 큰소리를 냈다.
“씨익씨익. 엄마엄마!!
왜 자꾸 아빠들은 새엄마를 데려오는 거야?!! “
하긴 신데렐라 새엄마는 렐라에게 온갖 집안일을 다 시키고 낡은 옷가지를 입히며 '신데렐라'라고 이름까지 바뀌게 했고, 콩쥐의 새엄마는 깨진 독에 물을 채워놓으라는 세상 쓸데없는 일을 시키는 심술을 부렸으며, 백설공주 새엄마는 자기보다 더 이쁘다며 시기하고 쫓아내기까지 했다. 심지어 집 나가 잘 살고 있는 아이를 찾아내 독사과를 먹이는 정성을 보이니 이 정도면 괴롭히려는 노력이 가상하기까지 하다.
이쯤이면 그 새엄마도 나쁘지만 그 새엄마들을 데려온 아부지가 더 미워지는 것도 당연했다. 새엄마는 남이라 그렇다지만 엄마 다음으로 믿고 의지하는 피붙이인 아빠가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하필이면 하나같이 사람 보는 눈도 없고, 아이와 함께해 줄 시간은 더 없었던 그 몹쓸 아빠들 같으니라고. 전래동화에 제법 감정이입을 한 꼬맹이는 그 못되게 그려진 '새엄마'보다 그 몹쓸 상황에 아이를 내버려 둔 '아빠'를 더 탓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원래 기대 없는 사람한테 맞는 열대보다 보다 믿었던 이에게 맞는 한 대가 훨씬 더 아픈 법이다
나 역시 어려서 다 읽었던 책이고, 들었던 이야기고, 봐 왔던 만화들이다. 몇 번이고 반복해 보고 듣고 느끼면서도 한 번도 자꾸 등장하는 새엄마에 대해 이상하다는 걸 느끼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뻔하디 뻔한 이야기의 흐름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나에게 '새엄마는 못됐어. 는 기정사실이 되었고, 이야기의 바깥 언저리에 있던그 아버지는 아예 안중에도 없었던 거다.
우습고도 신기한 아이의 통찰력이란.
어릴 땐,
새엄마는 모두 나빴고, 부자는 욕심쟁이에 못돼 처먹었으며, 빠르고 능력 있는 토끼는 게으르기 짝이 없었다.
어른이 된 지금,
새엄마라고 모두 전래동화에 나오던 그이들처럼 나쁘지 않다는 걸 안다. 친엄마라 한들 동화 속 그이들처럼 모두 다 자애롭고 희생적이지 않은 것도 물론이다. 부자는 나쁘고 가난한 사람은 착하다는 것도 이젠 그리 수긍하지 않는다. 가난하고 안쓰러운 가운데에 아이들만 줄줄이 낳아두고 책임지지도 못하는 흥부가 정말 착한 것일까 나는 그 무책임함에 '착하다'는 프레임을 씌워줄 수 있는 사람은 못된다. 나무그늘 아래에서 낮잠을 자다가 거북에게 패배한 토끼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뛰고 잠깐 쉰 그 시간이 엄청 꿀 같았을지도 모른다. 그 토끼가 그만큼 뛰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지는 더더욱 진짜 아무도 모르는 거다.
조금 더 일찍 그 무수한 이야기들을 비틀어 볼 줄 알았더라면 내 삶은 조금 달라졌을까. 다른 건 몰라도 조금 더 다채롭고 재미있었을 거라는 생각은 든다. 그날 밤 우리는 흥부와 토끼와 옹고집과 발톱을 먹은 생쥐까지 여러 이야기들을 뒤집고 비틀고 쪼개보느라 잘 시간을 한참이나 지나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