빳빳한 질감을 좋아한다기보다는 따가운 햇볕 냄새가 가득 담긴 특유의 수건 냄새를 좋아한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건조기를 들인 지 여러 해가 지났다. 쓴 지 몇 년이나 되었다고 이게 없을 땐 어떻게 살았더라.. 잘 기억나지도 않는다. 30년 이상을 그리 살아놓고 벌써 다 잊어버리다니 사람의 적응력이란 이토록 이기적이다.
처음 건조기를 접하고 먼지통 가득한 먼지와 수건의 보드라움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나 만족스러운지 옷 한두 벌 줄어드는 것쯤이야 크게 아깝지도 않았다. 못 입게 된 옷들이 징징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지만 두 눈을 감고 두 귀를 막았다.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오롯이 건조기 편이었다. 이토록 편파적인 인간이라니... 어느새 줄어들 걸 예상하고 옷을 조금 크게 사기 시작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처럼 내 삶의 일부를 건조기에 맞출 정도로 건조기를 애정 했다.
빨래 너는 걸 지극히 싫어하던 나였기에 지금도 건조기는 나의 애장품 중 하나이다. 여기서 확실히 할 것. 물론 빨래 너는 것만 싫어하는 건 아니다. 하기 싫은 집안일 순위에서 2위 정도 되려나...?(그 순위는 내가 아는 것만도 10개는 훌쩍 넘는다.) 덕분에 귀하디 귀한 건조기는 우리 집에서 거의 혹사당하고 있는 지경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돌아가기 일쑤고 잠시 쉬나 싶으면더 큰 빨랫더미가 기다릴 뿐이다.
물을 잔뜩 먹어 무거운 빨래 더미를 1시간 40분 만에 보송하게 만들어버리는 기계라니... 예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하기사 개울가에 쭈그려 앉아 방망이질하던 시절에는 커다란 통이 빨래를 해준다는 것도 상상도 못 할 일이었을 테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닌가. 조만간 벗어만 놓으면 저절로 세탁, 건조, 다림질까지 되는 최첨단 기계가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최첨단 기계의 상용화를 열렬히 바라는 1인이면서도 마음 한편 빨랫줄에 걸려 쨍쨍한 바깥에서 햇볕을 그득 담았던 수건을 그리워하는 나는... 이 무슨 이중인격인가 싶다.
햇볕이 쨍쨍한 날 파삭파삭 말랐던, 한가운데 빨랫줄 자국이 길게 남았던, 담뿍 젖어 무거웠던 이전과는 사뭇 달라진, 무게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가벼워진 수건들을 차곡차곡 왼팔에 쌓아 올리며 맡았던 냄새가 가끔 생각이 난다.
생각난 김에 일부러 수건 몇 장을 베란다에 널어볼까 보다. 누군가의 옥상만큼은 못되겠지만 창을 활짝 열어 최대한 볕이 들를 수 있도록 하면 내 수건에도 오랜만에 햇볕을 담아 놓을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평소 애정 하는 파우더리 한 향의 섬유유연제도 넣지 말고 식초로만 헹구어 담백하게 빨아 보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