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별난 시댁에 시집와 유별난 남편과 살면서도 '힘들다 밉다 싫다' 한 번을 징징거리지도 도망치지도 않았던 사람.
그 유별난 남편을 먼저 보내고 땅이 꺼지는 아픔도 그저 묻어버렸던 사람.
무던히 겪고 무던히 흘려보내는게 그저 습관이자 자기 몫이 되어버린 사람.
그런 엄마가 아픈 것도 잘 본 적이 없었다. 감기에 걸려도 하루 이틀이면 이겨버리곤 했고 배탈이 나도 염소똥 같은 알약 몇 알이면 괜찮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다 괜찮다며 별 것 아닌 일로 만들어 버리는 사람이었고, 극단적으로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덕에 항상 그 중간 어디 즈음에서 안정적일 수 있었다.
항상 살이 찌지도 빠지지도 않는 비슷한 체형을 유지했고 비슷한 짧은 머리스타일을 고수하며 매일을 한 날처럼 살아오신 엄마였다.
그랬던 엄마가 아팠다.
평생 사는 동안 마음이 너무 데이고 까이고 부딪히고 깨지고 닳아 결국은 그 마음이 버티지 못하고 아팠다.
이제야 조금 편안해지려나.. 싶을 즈음 일부러 누가 방해라도 하려는 듯 아팠다.
마음은 결국 몸과 이어지기 마련이다.
마음이 아팠던 엄마는 곧 몸도 약해졌다.
밥을 먹어도 먹는 것 같지 않았고 자려 누워도 잘 수가 없었다. 평생이 한 날처럼 같았던 머리스타일은 생전 처음 덥수룩 길어졌고 아무도 그 나이로 보지 않았던 얼굴도 빠르게 힘이 빠졌다. 표정을 지을 힘조차 내기 어려워 안 그래도 회색 즈음에 서 있던 엄마는 더욱더 옅어졌다.
다 큰 딸과 어색하게 같이 간 병원에서 엄마는 더 이상 코를 찔찔 거리는 딸아이의 손을 잡고 병원에 가던 듬직하고 단단했던 엄마가 아니었다.
작았고, 작았으며, 작았다...
의사 선생님도 간호사 선생님도 많은 것들을 나에게 질문하고 설명했다. 앞으로 어떨지 경과는 어떤지 약은 어찌 먹어야 하며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까지...
그런 건 전혀 어렵지 않았다. 이미 옆의 유모차에 타서 쨍알거리는 꼬맹이의 보호자가 되었던지라 누군가의 보호자로서 나를 대하는 것에는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다.
식사를 챙기고, 잠자리를 챙기고, 약을 챙기고, 경과를 묻고, 걱정을 하고, 마음을 쓰는 일 정도는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다만 내 뒤에 옅은 표정으로 힘없이 앉아있는 엄마가 내 가슴에 무겁게 앉았다.
'슬펐다'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그 단어가 가진 가벼움에 화가 날 정도로... 그래, 난 슬펐다. 아주 깊게 슬펐다.
처음 알았다.
누구나 인생을 살다 보면 언젠가 보호자가 뒤바뀌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
딸, 아내, 엄마, 그리고 또다시 딸...
누군가의 딸이라는 건 평생 동안 누군가의 보호를 받기만 할 수만은 없는 자리라는 것.
마냥 어린 딸이고만 싶었지만 사람의 욕심은 그토록 바로 앞도 내다볼 줄 모른다는 것.
작디작은 우리엄마는 역시나 강했다.
이기기 어렵다는 그것과의 싸움에서도 결국 지지 않았다. 완전한 승리는 아닐지라도 무던히 겪고 또 무던히 안고 간다. 다시 예전의 짧은 머리로 돌아온 엄마는 예전보다 적당히 살이 쪄 허리가 앞뒤로 둥글어진 모습도 제법 잘 어울린다. 티브이를 보다가도 꾸벅꾸벅 눈이 감기는 엄마는 "엄마 자?"라는 물음에 또 "아냐 아냐~안 잤어~"라는 티 나는 거짓말을 하며 멋쩍게 웃는다. 몇 날을 잠에 들지 못해 까칠하게 눈이 벌게졌던 엄마의 얼굴을 기억하는 나는 이 단잠에서 깬 노곤노곤한 엄마의 표정이 그저 고맙고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