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맥주 그리고 오렌지주스

by 글짓는써니

맴맴맴매~~~앰~~맴맴맴매~~앰~

매미 소리는 여름을 더욱 뜨겁게 만드는 최고의 BGM이다. 땅 위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매미도 처음 겪는 더위에 놀랐는지 소리마저 게으르다.




“엄마~ 빨리 와~”

“아오, 더워~천천히 가~”


뙤약볕 아래에서 지치지도 않는지 해보다 맑은 얼굴을 한 아이는 또 뛰기 시작한다. 밖에만 나오면 목적지야 어디이든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일단 뛰기 시작한다. 내가 낳았지만, 망아지가 분명하다.


집 앞 공원은 애초부터 아이를 뛰게 하려고 만들어진 양 아이 발과 몸에 꼭 맞는 모양새다. 좁은 길을 사이에 둔 빽빽한 잔디밭은 볕을 받아 더 진한 녹빛을 뿜어내고 듬성듬성 심어진 나무가 만든 느슨한 그늘은 정신없이 뛰다가도 잠시 뒤돌아보는 여유를 선사한다. 그늘에 서서 흐르는 땀은 닦지도 않고 까매진 이마와 벌게진 얼굴로 엄마를 부르는 아이는 그 자체로도 그림이다. 이제야 따가운 볕에 한껏 찌푸렸던 얼굴이 해사하게 풀어지며 순한 눈매가 더 휘어진다. 가만히 그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든 이내 같은 얼굴이 되어 버리고 만다.


정수리부터 맺혔던 땀방울이 뒷목을 타고 또르르 흐르는 게 느껴진다. 날씨만큼 무거운 발걸음이지만 조금 더 속도를 내어 본다. 바람 한 점 없는 날 내가 만든 미풍이 땀에 닿는 느낌에 제법 기분이 좋다. 앞선 아이와 똑 닮은 눈매의 커다란 남자 사람은 이 더위에도 뭐가 그리 즐거운지 만면에 장난끼가 가득하다.

“잡았다!!”

와다다다 달리다 드디어 셋이 발을 맞춘다. 하나같이 똑같아진 벌게진 얼굴에 번갈아 마주 보며 웃음이 난다. 항상 그렇듯 여름날의 웃음은 조금 더 선명하다.





공원의 끝자락 작디작은 맥줏집.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쏘냐. 냉큼 들어가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곧바로 제 자리를 찾아 앉은 아이는 이미 한두 번 와본 솜씨가 아니다. 뜨거워진 살갗에 닿는 차가운 에어컨 바람이 꽤나 상쾌하다.


“사장님, 여기 500 두 잔에 오렌지 주스 하나요.”


커다란 냉동고 안에 어찌나 오래 있었는지 꽝꽝 얼어 뿌옇게 된 500잔 두 개를 꺼내셨다. 살짝 기울여 맥주를 따르면 잔과 만나자마자 얼어버린 맥주가 몽글몽글 구름이 되어 둥실둥실 떠오른다.

뽈뽈뽈뽈뽈.

커다란 잔에 비뚜름하게 서서히 맥주가 들어찬다. 노랗고 투명한 맥주 위에 도톰하게 올라간 하얀 거품의 비율까지 실로 완벽하다.


테이블 위에 올라온 맥주 두 잔과 오렌지 주스 한 잔. 지금은 지체하지 말고 부딪혀야 할 때다.


“쨘~~!“ (‘챙!!!‘)


유리잔이 부딪히는 청량한 소리에는 무거운 여름 더위도 맥을 못 춘다. 제 손 보다 큰 잔을 통통하고 작은 두 손으로 꼬옥 쥐고 있는 아이의 얼굴에는 설렘이 가득하다. 지금까지 흘린 땀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 급히 입에 대어 본다. 입에 닿는 차디찬 감각마저 짜릿하고 선명하다. 뜨겁게 흘린 땀 대신 차가운 맥주가 채워진다.



그래, 바로 이거다. 여름이라 맥주가 맛있고, 맥주가 맛있어 이 여름이 더 충만하다. 반대되는 것들은 이처럼 묘하게 서로를 끌어당긴다. N극과 S극이 그렇듯 Harry와 Sally가 그랬듯. 뜨겁고 무겁고 찐득하고 쨍한 여름과 차갑고 가볍고 산뜻하고 뿌연 맥주 또한 그렇다. 너와 나도 그렇다.






공원 가득한 찐한 풀냄새, 시끄럽고 나른한 매미 소리, 느슨한 그늘, 잠깐씩 불어오는 미지근한 바람, 사랑하는 이들의 까만 이마와 벌건 볼, 뙤약볕에 잔뜩 찌푸린 눈매, 선명한 웃음소리, 거기다 몽글몽글한 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차가운 맥주까지...이 사소한 것들이 하나 둘 모여 이 여름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아주 특별한 이유가 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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