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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엔 Oct 18. 2021

(자작소설)지옥의 재발견 03

지옥의 재발견 3회

5. 알 수 없는 시선 (궁마마 각도)

오늘은 오후 수업이 비교적 일찍 끝이 나서 집에 일찍 왔다.
옷을 갈아입고 씻으니 좀 살 것 같다. 그냥 밥이나 먹고 운동이나 갔다가 쉬었으면 좋겠지만 오늘은 성훈이한테 오랜만에 동창회에 나가겠다고 했다.

한국에 들어와서 몇 번 참가했지만 다들 나 와는 인생의 길이 다른지라 시간이 흘러가면서 점점 가지 않았다. 회사원이나 사업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학교에 있는 나와도 생각하는 부분이나 공감대 형성이 어려웠고 그저 같이 유학하던 시절의 추억 팔이 하는 것도 매번 하니 지겨웠다.


또 내가 아직 정식 전임교원이 아니다 보니 점점 낮아지는 자존감에 일부로 멀리했다. 다들 결혼 생활을 하는지라 미혼인 나와는 공감대가 없어지다 보니 더더욱 멀어졌다.

가장 짜증 났던 건 얼굴만 보면 결혼할 여자는 있냐는 이야기가 제일 듣기 싫었다.
물론 그들이 잘못한 건 아니다. 그들의 나를 향한 과도한 관심이 부담스러웠고 대처하기 힘들고 부질없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번엔 성훈이가 직접 연락도 오고 보고 싶기도 하고 또 다들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나랑 가장 친한 성훈이와 동미 누나에게 나가겠다고 했다.

나는 외출 준비를 하고 택시를 잡아 약속 장소로 향했다.



#동창회 모임, 신사동의 이자카야 


다들 오랜만에 만나는 거다 보니 가벼운 인사와 식사를 하고 사케를 시켰다.
다들 나에게 첫인사가 여자친구 생겼냐고 물었고 나는 “알아서 만나고 다녀”라고 대답했다. 주위의 이러한 끊임없는 질문이 짜증이 나지만 워낙 이런 질문이 일상인지라 그냥 넘어갔다. 그런데 그때 항상 나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상현이가 큰소리로 지껄였다

“그럼 사진 좀 보여줘 바”

“사진?”


“그래 사진 좀 보여줘 봐, 인물값 하고 다니나 보자”

"됐어 너 결혼 준비나 잘해”

“없는 거 아냐? 혹시 너 뭐 문제 있냐?”

난 순간 상현이를 흘겨 보았고 나의 사정을 아는 동미 누나가 나의 안색을 살피더니 적재에 말을 치고 들어왔다


“마마 알아서 잘 만나고 다녀~ 걱정들 안 해도 돼."

“그럼 왜 사진 안 보여줘요?”

“여자들 그런 거 안 좋아해, 남자친구가 아무 데나 자기 사진 보여주는 거”

“……..”

급기야 웅성 거리더니 열댓 명 넘는 남녀들이 내가 뒤에서 여자를 얼마나 만나는둥 토론이 이어졌다.


맞다, 오늘도 괜히 나왔다…
나는 이런 부질없는 자리가 싫어서 가고 싶다고 성훈이와 동미 누나에게 눈빛을 보이려는 찰나, 나의 유학시절 동아리 동기인 진영이가 이번엔 자기가 hq 전자 과장으로 승진을 했다며 자랑을 시작했다.

“야 그럼 연봉도 더 올랐겠네~ hq 전자 들어가기도 힘든데, 이렇게 빨리 과장이 되다니… 나중에 임원 별 다시는 거 아닙니까~”

나에게는 말 한마디 한마디 부정적이던 상현이는 진영이에게 웃으며 상냥하게 축하를 건넸고 진영이는 무척 자신이 자랑스러운 듯 웃어 보였다. 진영이를 필두로 다들 입이 터졌는지 자신들의 연봉이 얼마고, 사업 매출이 얼마이며 으스스 대기 시작했고… 대학교 임시직인 대학강사인 나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곤 무작정 걸었다.
앞으로 그냥… 나의 목적지가 어디로 가는지… 발이 가는 데로 걸었다.
내가 저딴 년, 놈들보다 못난 게 없는데… 나도 취직이나 할걸…왜 하필 힘든 길을 택해서는… 이런 자리에서 말 한마디도 못하냐


순간 청춘을 받쳐 공부했던 나 자신이 싫어졌고 잘못된 선택들은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을 때.. .. 나는 세미에게 무의식적으로 문자를 했다.


-세미야? 잘 지내지 ~ 혹시 선생님이 부탁한 거 빨리 알아줄 수 있다면 아는 대로 문자로 알려줘도 돼-"

불현듯 스쳐 오르는 초록 고아원…
이번엔 반드시 내가 교수가 돼야 한다.
오늘의 수모는 내가 반드시 갑아 주리…




다음날

임 교수님의 퇴임으로 교수 자리 티오 하나가 비어서 조만간 후임 인사를 할 거라는 조짐이 좀 더 명확해지는듯하다.

학교엔 점점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날락했고, 학과장방에는 수많은 박사 출신 강사들이 찾아왔다. 물론 나랑 같은 목적으로 말이다.
역시 교수는 실력으로만 되지 못한다는 현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을 때 우리 문과대학 교직 원인이신 김 팀장님이 커피나 한잔하며 문과대학 옥상으로 나를 불렀고, 우리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마시며 캠퍼스를 내려다보았다

“궁 선생… 이번에 꼭 돼야지…"

“네 …그러면 좋겠어요”

“궁 선생 학력이랑 논문 실적이면 돼야 맞는 건데 아직 나이가 어리긴 하지만 요즘은 어린 박사 선생님들도 자격은 다들 갖추었으니”

“저도 노력은 하고 있는데… 그나저나 요즘 어디서 냄새들 맡았는지 학과장실에 불이 나요”


“그러게 다들 손에 한 뭉텅이씩 사들고와서 알랑방귀들 끼니… 그래서 말인데 궁 선생 저번에 우리 아들 과외해서 내신 올려준 것도 너무너무 고맙고, 또 여러모로 도와준 것도 있어서 내가 알려주는 정보인데”

“네네 “

“이번에 교수 채용말이야, 물론 학과장 쪽 입김도 중요하지만, 최 교수님 쪽이 더 중요해, 이번에 부총장으로 취임한 박 교수 최측근이거든”

“아 그래요??”
“웅 이 정보는 아직은 다들 모르는 거 같더라고, 최 교수님이 워낙 과묵하고 말이 없다 보니… 학과장 쪽이야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까 천천히 작업 들어가 보고 최 교수 초록색 브랜드 신발 좋아하는데 거기서 구두 좀 사서 가는 게 어때?"

“아 그래요? 거기 구두 즐겨 신으세요?”

“그럼… 꼰대니까 복장이 매일 양복이잖아… 아무튼… 난 빛 갚았어"

“알겠어요. 어차피 오후 수업까지 시간 있으니까 제가 지금 사서 한번 찾아 뵈여야겠어요”

"웅웅 그래…"라며 김팀장님은 내게 최 교수가 가지고 싶다는 브랜드의 상품 번호와 최 교수님의 신발 사이즈가 적힌 메모를 적어주고 가셨다


나는 곧장 학교로 나와 강남의 백화점으로 향하여 구두를 사서 최 교수님 연구실을 두드렸고 선한 인상의 최 교수님은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았다

“궁 선생 웬일이야 잘 지내지?”

“네 교수님~ 잘 지내셨죠?

“그럼 나야 매일 똑같지… 그나저나 궁 선생 이번에 학생들 수업 평가가 좋던데~"

“다 학생들이 잘 따라와 줘서 그렇죠… 다른 학생들 이야기 들어보니 요즘 최 교수님 수업 너무 좋다고 해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어서 찾아뵀어요"

천진난만한 얼굴로 웃는 최 교수를 나 역시 미소를 띠며 바라보았고 자연스레 신발을 건넸다

“교수님~ 제가 신발 하나 큰마음 먹고 사려다가 사이즈를 잘못 골라서…바꾸려 가다가 교수님 생각이 나서 그냥 가지고 와보았는데… 혹시 여기 신발이 취향이신지 모르겠어요”


“어? 이게 뭐야 궁 선생”

“그냥 지나가다 하여~ 사이즈가 맞으시려나”

순간 당황한듯하더니 아무렇지 않읔듯 구두를 자신의 발에 가져다 대는 최 교수
그리곤 금세 아이처럼 좋아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딱 맞는데?이야… 근데 이거 너무 비싼 거 아냐, 내가 그냥 이 신발을 궁 선생한테 사는 게 어때, 원래부터 가지고 싶던 건데”

“하하 교수님 아니에요, 신발 신으신 거 보니까 너무 잘 어울리시셔서 제가 돈을 받기가 그래요, 딱 교수님 신발 같은데~”

:”하하 이 사람 참… 이거 내가 미안해지는데”

“아니에요~ 이 정도야~ 교수님 마음에 드시면 그걸로 됐어요 “라고 말하며 속으론 당신 나한테 미안하고, 어색하고, 부담스러워해야 해라고 생각했다

“이거 참 같이 저녁이라도 먹으면 좋은데.. 근데 내가 지금 선약이 있어서. 다음 주 화요일 어떤가? 같이 초밥이나 먹지 이 앞에 잘하는 데 있는데”


“아 오사카 말씀하시는 거죠? 네 교수님 제가 예약해 둘께요”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최 교수 연구실을 나왔을 때 문 앞에서 누군가가 날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어? 구 선배”

“어 한 선생”

“어쩐 일이에요 여기는”

“그냥 최 교수님 뵈러”

“저도… 전 약속하고 지금 시간이 되신대서요~”

나의 라이벌이자 최대의 적인 한명환이 내 앞에 있다.
그러고는 나는 자연스레 한 명환의 오른손을 바라봤다. 역시나 그의 손엔 무언가가 들려있었다.

아… 이 인간은 어떻게 냄새를 맡은 거야… 최 교수님 제자라 그런가


“그래 들어가 봐”

“네네 최 교수님 아무도 잘 안 찾는데…”

“본인은 약속까지 하고 와놓고선”

“전 최 교수님과 여기서 학 석박사 다했잖아요, 제 지도 교수님이셨고 ~ 제가 챙겨야죠”

“그 그래”

“그럼 가세요”

“응”


나는 한명환의 마지막 한마디에서 바로 느꼈다. 한명환이 난 경계하는 하는 눈빛으로 바라본다는 것을… 그리고 동시에 또 눈길이 갔다 한명환의 손에 들린 쇼핑백을 보니 보석 유명브랜드인 “황천”이라는 것을…


저기선 가장 싼 황금열쇠가 최소 천만 원인데… 순간 나는 얖이 깜깜해졌다.
순간 큰마음을 먹고 산 나의 명품 구두가 초라해질 것 같았고, 몇 분 즐거웠던 마음은 좌절로 바뀔 것 같았다. 최 교수님은 천진난만한 얼굴이었지만 기꺼이 신발을 신었고, 거절은 하는듯했지만 신발을 신고는 신발에서 발을 빼지 않았다.


또 한 명환이는 국내파지만 최 교수의 최애 제자이자 왕성의 학,석,박 출신이다. 나는 해외파고 그보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나랑 그 녀석도 다 같은 박사인데 누가 더 잘났다고 어떻게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으랴…

안되겠다. 계획보다 더 빨리 내가 직접 그 아이를 찾아야지..






6. 댓가 지불 (사준수 각도)

눈을 뜨고 일어나니, 나를 맞아주는  집안에서 일하시는 이모님이다. 아들은 그토록  엄마가 보내고 싶어 하는 미림유치원에 갔다. 아내는 아침부터 어딜 갔는지  보였다.
 필라테스 아니면 피부과에 갔겠지

 샤워를 하고 이모님이 차려준 밥을 먹었다. 오늘도 역시 아침은 빵과 콤프러스트, 그리고 베이컨 구이와 샐러드 야채였다 솔직히 나는 아침에 밥에 된장찌개를 먹는게 좋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아침부터 된장 냄새가 나는  싫다는 아내 때문에 강제로 이렇게 먹고 있다.

어쩌면 결혼  나의 인생은 내가 좋아하지 않는 빵과 쨈이 간접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른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내는 일상들… 나는 아내와 처가에서 요구하는 대로 행동하고 그들의 요구에 거절 한번 한 적이 없다. 내가 아무리 서울대 치대 출신이라지만 내가 가진 배경으론 이 나이에 강남 한복판에서 대형치과를 운영할 수 없었다. 좋은 배경을 가진 처가의 힘이었고, 나는 그 힘을 택했다. 어쩌면, 마음대로 사는 아내보다, 내가 더 속물인 게 아닐까?

나는 빵을 쨈에 발라 먹고 식탁에 앉아 이모님이 주는 커피를 마셨고 거실에 누군가에게 보여주는듯하게 크게 걸린 나와 아내 그리고 아들의 가족사진이 보였다. 그리곤 불현듯 일주일 전 아내의 연락을 받고 미림유치원에 간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 전

아내의 연락을 받고 치료를 부하 닥터에게 급히 맡기곤 차를 타고 달려 미림 유치원 앞으로 갔다. 차에 내려보니 유치원 정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는 아내가 눈에 들어왔고 아내는 나를 보자마자 쇼핑백 하나를 건넸다.



“당신 이걸로 갈아입어”

“어?”

‘이걸로 입어 지금 입은 거보다 이게 나아, 이게 더 고가 브랜드란 말이야"

“그게 무슨 상관이야”

“잔말 말고 좀 입어!!! 다시 차로 들어가서 입고 온다 실시”

“어….”

항상 그렇듯 나는 아내가 시키는 대로 옷을 환복을 하곤 아내와 함께 유치원의 원장실로 들어갔다

원장과의 면담 자리에서 아내는 미리 적어간 입학원서와 자기소개서를 원장에게 내보였고 원장은 자신의 책상 앞에 놓인 안경을 끼고 아내가 건넨 믿음이의 원서를 살피다가 무미건조한 얼굴로 말을 건넸다

“뭐 저희가 이번에 티오가 갑자기 나서, 자율이 어머니 전화받고 믿음이 어머님께 오늘 면접 전화를 드린 건 맞습니다만…”



아내는 원장이 말끝을 흘리자마자 무섭게 원장의 말을 잘랐다

“원장님~ 저희 믿음이 4살 때부터 영국인, 미국인 두 명한테 원어민한테 영어 배웠고요 피아노랑 바이올린, 과학교실, 승마도 배우고 있어서 … 좋은 아이에요

좋은아이?
나는 아내의 믿음이 소개를 듣자 헛웃음이 나왔다
기껏 6살짜리 애기가 영어가 유창하고 승마를 배우면 좋은 아이인 걸까?
좋은 아이라는 단어가 이럴 때 쓰이는 건지, 아내의 단어 선택이 참으로 우스웠다
그리곤 순간 얼굴이 빨개지려 하는 나 자신을 느꼈다

그러자 아내의 말을 들은 원장은 다시 무미건조한 얼굴로 아내에게 답했다

“믿음이 어머니 … 그 정도는 저희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지니고 기본적인 겁니다. 어머니가 말씀하신 그것이 믿음이를 뽑아야 하는 장점이라면 저희 쪽에서는 믿음이를 굳이 뽑아야 하는 이유가 없는 거 같은데요.”

“원장님… 우리 믿음이… 더 부족한 게 있다면”

“어머니~ 아버님이 서울대 치대 나오시고 어머님이 한국 예대 무용 전공하셨죠? 아버님 직업란에는 강남에서 치과 운영하신다고 적혀 있는데 맞나요?”

“네 ~ 맞아요 전 결혼 전에는 국립발레단에 있다가 결혼하면서 전업주부가 되었고요, 가정에 집중해야 저희 아이한테 더 좋을 것 같아서요. 물론 돌봐주시는 전문 케어 선생님이 있지만요…소개받은 자율이 엄마, 그 언니가 저랑 대학 동창이거든요, 그래서 한 동네에 살면서 자율이랑 우리 믿음이랑 다 똑같은 선생님에 똑같은 프로그램으로 배웠는데요 원장님 ~”

“솔직히 말씀드리면 … 어머니 말씀대로 믿음이는 어린 나이에 훌륭한 교육을 받은 아이지만… 다른 학부모님들이 반대할 것 같습니다.

“네???”

“더 솔직히 말씀드리면 여긴 자리가 나서 돈만 낸다고 들어올 수가 없거든요”

“그럼요? 자율이랑 우리 믿음이랑 별반 다를 게 없는데…”

자율이는 친할아버지가 이기태 오성쥬류 회장님…”



하… 이런 속물 같은 인간… 여기서 할아버지 직업이 왜 나온단 말인가…
순간 원장의 말을 듣고는 욱하는 마음에 나는 원장의 말에 대답했다.

“그게 무슨 뜻인가요?”

“아버님, 속된 말로요, 까놓고요 강남치과병원 원장님 가지고는 못 들어 오신다는 말이에요. 믿음이가 들어간 반 15명 아이들 부모님들 모두, 대한민국에서 알만한 대형 로펌 자제님이시거나, 지금 반장을 맡고 있는 아이는 영학 제약 아드님 손자, 학부모회 총무를 맡고 있는 분은 영제생명 장남의 아내 되는 분이시고… 또 전 국무총리 자제를 포함해서~”

“원장님… 그게 이 유치원이 돈을 싸 들고도 들어갈 수 없는 이유인 겁니까. 제가 어디 가서 도둑질하는 것도 아니고 저도 열심히 돈 벌고, 집사람도 아이 잘 케어하면서…어떻게 교육자라는 분이 이런 식으로 아이들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생각하지는 지… 전 전혀 이해할 수 없고 저희 믿음이 이런 곳에 보낼 마음도 없습니다”


나는 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화가 났다. 뼛속까지 검은 속내인 원장을 쳐다보니 더 헛구역질이 날것 같았다. 하지만 아내가 나의 허벅지를 꼬집더나 나의 말을 끊고 이어받았다.

“원장님~자율이 엄마한테 정말 우리 믿음이 이름만 소개받으셨나 봐요~ 그런 조건이라면 진작 말씀하시지~ 할아버지 할머니 적는 칸은 없길래 안 적었는데 그럼 우리 믿음이를 이렇게 설명드리면 어때요? 우리 믿음이 일개 강남치과병원 아들이 아닌 대민 의료원 민길준 이사장 첫 외손자라고 하면 문제없는 거죠?”

하… 아내의 필살기가 나왔다.
솜이 검다 못해 시커먼 원장 앞에서 더 검은색 형체를 하곤 특유의 미소를 짓는 아내를 보니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아내의 말에 그 무미건조하던 원장의 얼굴은 갑자기 얼굴이 미소를 띠며 태도 변했고 다리를 꼬고 앉았던 자세는 다리를 공손히 모으고 아내와 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그렇게 다른 절차 없이 우리 믿음이는 그날로 미림유치원에 들어갔다.

난 아무 말 없이 유치원을 나왔고 이내 아내가 나에게 한마디를 날렸다.

“여보 그러니까 그딴 저소득층인가 뭔가 그런 무료진료 하지 말고 병원을 키워… 믿음이 생각하란 말이야. 우리 아빠 아니었으면 우리 믿음이 어쩔 뻔했어”

“여보…. 내가 어디서 도둑질해? 치과 가격이 얼마나 비싼데 이가 아파도 가격 때문에 진통제로 버티는 어려운 사람들 마음을 알기나 해? .”

“그렇게 좋은 일 하면 기자 찾아서 신문 보도라도 내던가!!! 그럼 나중에 국회의원이라도 생각해 볼 수 있잖아!!! 아님 우리 아빠 병원에 그냥 들어가던가. 내 동생 나나 제 남편이랑 결혼하자마자 제부 아빠 병원에 바로 들어간 거 몰라? 당신은 그런 거 보고 아무것도 안 느껴?”


“내가 뭘? 각자마다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게 있는 거야… 난 우리 믿음이 저런 곳에 보내고 싶지 않아, 저기서 아무리 좋은 선생님들이 교육해 주고 지식을 알려줘도 난 솔직히 보내기 싫어 … 여보 세상은 돈, 위치 그런 것만으로…”

“아 됐어 또 착한 사람이 들려주는 인생 설교는 듣기 싫어, 병원이나 가봐 나는 우리 믿음이 유치원 정보 알려준 언니 만나서 인사 좀 해야 해. 오늘 늦을 거야. 언니 만나서 사달라는 거 좀 사주고 밥도 먹고 그러다 보면… 그리고 내일 아침에 모임에서 골프여행 간다고 해서 제주도 가서 며칠 있다가 올 거니까 당신 좋아하는 그 무료 충치인가 뭔가 그 거나해 ”

“여보 내일모레 엄마 생신이신 거 몰랐어?”

“아 그래? 어머 까먹었네 당신 혼자가”

“아니 어떻게 매번 이때가 되면 까먹어 …”


“짜증 나게 왜 이래 내가 당신 엄마 생일 챙겨주려고 결혼한 거야? 어머님은 당신이 챙겨…내가 언제 우리 엄마 아빠 생일에 당신 꼭 데려갈려고 해? 왜 이래 진짜”

아내는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쳐다보고는 차를 몰고 내 앞을 떠나버렸다



2일 후

#엄마 집

엄마가 끓여놓은 미역국을 먹으며 나는 고개를 푹 숙었다

"어미가 바쁘지? 그렇겠지”

“네 믿음이 엄마가… 처가에 일이 있다고 해서 못 왔어요”

“그래 우리 며늘아기 바쁘지… 그래도 이런 날이나 명절에는 믿음이라도 데리고 왔으면 좋겠구먼…"

“다음엔 꼭 데려올게요 어머니”

“아니다 괜히 바쁜 사람 … 뭐 나야 너 얼굴만 봐도 좋고”

웃고 계시지만 뭔가 씁쓸하신 듯 미역국을 뜨는 엄마를 보니 내가 이 결혼은 왜 했는지 싶다.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가 난 후 집안의 가세가 기울어졌고 엄마는 남의 집 파출부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 가셨다. 아버지는 매일 술에 취해 계시다가 알코올중독으로 빛만 남겨놓으시고 한겨울에 길에서 동사하셨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도 우리 집은 장례비를 걱정해야 했고 어머니는 장례를 치른 후 바로 일을 가셨으며 나는 눈물도 흘릴 틈 없이 가난에서 벗어노려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한국에서 제일 좋은 치과 대학에 들어갔다.

공부를 맞추고 치과의사라는 직업을 가졌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사업 실패로 남겨놓은 빛을 청산하기 위해선 일개 대학병원이나 페이 닥터는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아내와 결혼을 했다.


“엄마… 미안해 내가… 좀 더 좋은 사람을 엄마 며느리로”

‘"아이고 됐어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냐, 준수야 큰일 날 소리 하지 마, 믿음 어미가 부족함 없이 자라서 철이 없어서 그렇지 너 이렇게 기반 잡아주고 엄마 이 정도 살만한 것도 믿음 어미 때문인데… 무엇보다 엄마는, 난 네가 잘 된 게 너무 좋아, 엄마도 나도 이렇게 편안하게 살잖아”

“………..”

"얼른 먹어. 국 식겠다…. 아 참 엄마 얼마 전에 교회에서 봉사활동을 갔는데 봤어, 개가 거기 있더라, 하나도 안 변했더라고~"

“……………?”

“웅 우연히 봤는데… 나는 모르는척하려고 고개를 돌렸는데 나보고는 얼마나 반갑게 인사를 하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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